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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도 창업도 이사도 멈춘 호주인들, 불안한 경제 속 ‘안전 선택’ 늘었다

25/05/2026
in 부동산/경제
이직도 창업도 이사도 멈춘 호주인들, 불안한 경제 속 ‘안전 선택’ 늘었다

호주 경제 지표 분석 결과, 호주인들이 과거보다 이동성과 역동성은 낮아지고 위험 회피 성향은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TomasHa73

호주 경제 지표 분석 결과, 호주인들이 과거보다 직장을 옮기지 않고 창업에도 나서지 않으며 주(州) 간 이동도 줄어드는 등 과거보다 이동성과 역동성은 낮아지고 위험 회피 성향은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의 확산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 위축되는 고용시장, 높은 주거비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경제 활동 전반이 경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직장 불안 확산

비즈니스 전략가 케이트 맥크레디(Kate McCready)는 “현재 직장 내에는 상당한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불안감의 원인으로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글로벌 불확실성, 그리고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 시장을 꼽았다.

맥크레디 씨는 “사람들은 현재 직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으며, 만약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한다”며 “현재 경제 환경에서는 이런 불안감이 사람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과거 자영업과 급여 생활을 오가며 일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대형 건강보험사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다시 리더십 코칭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에 만족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쉽게 직업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맥크레디 씨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시간의 자유와 내가 언제, 어떻게, 왜 일할지 그리고 누구와 일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시기로, 경제 상황도 불안정하고 해외 정세와 전쟁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 tookapic

이직률 감소

통계 역시 호주인들의 이동성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89년에는 노동 인구 5명 중 1명 가까이가 1년 안에 직장을 바꿨다. 그러나 2005년에는 직장 이동률이 11%까지 하락해 사실상 10명 중 1명 수준으로 줄었다.

2025년 2월 기준 최신 자료에서는 약 110만 명이 직장을 옮긴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직률은 7.7%로 떨어졌다. 이는 13명 중 1명 정도만 직장을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싱크탱크 이식스티원 연구소(e61 Institute)의 연구 이코노미스트 레이철 리(Rachel Lee)는 “이러한 요소들은 호주인들이 현재 직장에 사실상 붙잡혀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평균 약 70만 달러 규모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부담이 사람들의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 씨는 “주택 비용과 대출 위험이 직장 변경이나 지역 이동 자체를 고민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전략가 케이트 맥크레디는 “현재 직장 내에는 상당한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PixelWanderer

커지는 안정선호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주거 비용만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리 씨는 전통적인 임금 노동의 안정성과 복지 혜택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퇴직연금(superannuation)과 유급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확대되면서 임금 노동자의 혜택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고용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식스티원 연구소(e61 Institute)에 따르면 자영업 비중은 최근 20년 사이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는 호주 노동시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2002년 전체 고용의 20%를 차지했던 자영업 비율은 현재 14%까지 떨어졌다. 개인사업자(sole trader) 비율 역시 2002년 12%에서 현재 9% 이하로 감소했다.

리 씨는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려는 의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는 임금 노동을 선호하게 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금 노동이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진 반면, 직원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사업을 시작하는 비용과 복잡성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사업가의 핵심 역량이었던 의사결정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등이 이제는 기업 임금 노동 안에서도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며 “퇴직연금과 유급휴가 같은 복지 혜택 역시 임금 노동을 더욱 안정적이고 재정적으로 안전한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 막는 규제벽

전문가들은 또 다른 문제로 과도한 규제를 지목했다.

컨설팅업체 에미넌스 어드바이저리(Eminence Advisory)의 경제학자 디미트리 버슈타인(Dimitri Burshtein)은 현재 제도가 젊은 세대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자산은 시간과 기술, 그리고 이를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소득세율과 창업을 어렵게 만드는 규제가 젊은 층의 성장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슈타인 씨는 “현재 제도는 젊은 세대가 자산을 축적하고 혁신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결국 이동 자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규제를 ‘레드테이프(red tape)’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이는 기업이 각종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행정 부담을 의미한다.

버슈타인 씨 역시 규제에 비판적이다. 그는 현재 규제를 “몸을 짓누르는 젖은 삼베 자루(wet burlap sack)”에 비유했다. 그는 새로운 규제가 기존 기업보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에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버슈타인 씨는 “이런 규제는 혁신을 억제하고 이동성을 떨어뜨린다”며 “현재 규제는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결국 기존 체제를 보호하는 대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사람들의 경제 활동 전반이 경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 Dele_o

둔화되는 주간 이동

주(州) 간 이동 감소 역시 호주 사회의 이동성 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 캐머런 쿠셔(Cameron Kusher)는 타 주 이주 자체가 매우 큰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주 경계를 넘어 이동하도록 만들 만큼 충분한 유인이 없다”며 “사람들은 여전히 이사를 하고 있지만 다른 주로 이동하기보다는 현재 거주 중인 주 안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급등한 부동산 가격과 인지세(stamp duty) 같은 거래 비용 역시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쿠셔 씨는 “특히 금리가 상승하는 환경에서 높은 주거비는 사람들이 직장을 바꾸지 않고 창업하지 않으며 다른 주로 이동하지 않는 주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집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며 “이사에는 인지세 부담이 따르고, 집을 팔 때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중개 수수료도 더 많이 내야 한다.

결국 현재 경제 환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안정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전략가 케이트 맥크레디는 자영업의 장점으로 독립성, 수입 제한이 없다는 점, 자율성, 그리고 삶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을 꼽았다. 사진: Pexels

정부의 주택 대응

정부는 최근 예산안을 통해 과열된 주택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정책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주택 가격과 임대료 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아온 여러 제도를 손보겠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으로 네거티브 기어링(negative gearing)과 양도소득세 할인(capital gains discount) 같은 투자자 세제 혜택 축소가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투자 목적 주택 구매의 매력을 낮춰 실수요자(owner-occupier)가 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집값 자체가 하락하지 않더라도 상승 속도만 둔화돼도 사람들의 주택 구입 여건은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와 함께 규제 완화 필요성도 일부 인정했다. 정부는 최대 1600달러에 달하는 호주 의무 기준 접근 비용을 폐지하고 금융 규제기관과 관련된 전자 기록 관리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사람들이 다시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일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Gam-Ol

흔들리는 안정 신화

현재 맥크레디 씨는 자신처럼 안정적인 급여 생활을 떠나 자영업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영업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점으로는 독립성, “수입 제한이 없다는 점”, 자율성, 그리고 삶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을 꼽았다. 반면 단점으로는 스스로 퇴직연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잃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경제 상황 변화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호주는 지난 40년 동안 1990-1991년 ‘겪어야 했던 경기침체(recession we had to have)’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큰 경기 침체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맥크레디 씨는 현재 호주의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대규모 경제 변화와 노동시장 충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동안은 좋은 일을 하고 흥미로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내 경력을 다시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시기”라며 “경제 상황도 불안정하고 해외 정세와 전쟁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연료 수입이 끊기는 상황 하나만 발생해도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주택 위기 역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정책 선택과 구조 변화의 결과였던 만큼, 호주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사람들이 다시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일 역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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