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드니에 짧은 시간 강한 비가 내리면서 도심 곳곳에서 물이 차오르는 모습이 나타났다. 도로에 물이 차고 자동차 바퀴가 물에 잠기는 영상도 빠르게 공유됐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보통 “비가 많이 왔으니 물이 찼다”고 생각한다. 물론 집중호우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토양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 다른 질문도 해보고 싶다.
같은 비가 내렸을 때 왜 어떤 곳은 물을 비교적 잘 받아들이고, 어떤 곳은 순식간에 물이 차오를까?
문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양뿐 아니라 그 비를 받아줄 땅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에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의 땅에 비가 내리면 물의 일부는 식물의 잎과 지표면에 머물고, 일부는 경사를 따라 이동하지만 상당 부분은 토양으로 스며든다. 토양 속 작은 공간을 따라 내려간 물은 저장되었다가 식물이 이용하기도 하고,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토양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빗물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공원이나 숲처럼 식물과 토양이 살아 있는 공간에서는 이러한 자연적인 물의 이동이 가능하다.하지만 도시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도시를 만들면서 토양 위에 건물을 세우고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그 위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었다. 이러한 표면을 불투수면(impervious surface)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물이 쉽게 통과하지 못하는 표면이다. 도시화로 도로와 지붕 같은 불투수면이 증가하면 빗물이 토양으로 스며드는 양은 줄어들고, 반대로 지표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가는 물은 증가한다.
여기에서 도시와 자연지역의 중요한 차이가 만들어진다. 숲이나 공원에서는 비가 내리면 토양이라는 또 하나의 배수공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서는 물이 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된다. 결국 빗물은 도로를 따라 흘러 배수구와 파이프로 집중된다. 평소에는 이러한 도시 배수시설이 물을 처리하지만, 짧은 시간에 처리능력을 넘어서는 비가 내리거나 낙엽과 쓰레기 등으로 배수구의 흐름이 방해받으면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그 순간 도로와 낮은 지대가 일종의 임시 저수지처럼 변하면서 침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도시의 홍수를 단순히 ‘배수관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더 큰 관점에서는 도시 전체가 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져 있는가를 봐야 한다. 우리가 토양을 콘크리트로 덮을수록 빗물은 자연스럽게 땅속으로 들어갈 기회를 잃는다. 도시의 배수 시스템에 더 많은 부담이 집중되는 것이다. 토양을 덮는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물을 흡수하고 저장하던 자연의 기능 하나를 함께 덮는 일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홍수를 막기 위해 도시의 콘크리트를 모두 걷어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도로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며 병원과 학교, 상업시설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도시 안에서도 물이 들어갈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공원과 도시숲을 확보하고,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투수성 포장을 사용하며, 빗물정원(rain garden)과 식생수로(bioswale), 습지와 같은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천천히 흘려보내거나 토양으로 스며들게 해 배수시설에 한꺼번에 몰리는 물의 양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을 나는 도시가 자연의 기능을 다시 조금씩 되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빗물을 최대한 빨리 파이프로 보내는 대신, 비가 내린 곳에서 일부를 토양과 식물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공원 하나, 가로수 주변의 흙 한 조각, 작은 빗물정원 하나가 도시 전체의 홍수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이 도시 곳곳에 연결되어 충분한 규모로 존재한다면 물의 흐름을 늦추고 도시 배수시설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포함할 수 있고, 이는 강한 강우가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특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불투수면이 많은 도시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렸을 때 물이 토양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빠르게 한곳으로 모이면서 침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다만 최근 시드니에서 발생한 특정 집중호우가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개별적인 집중호우에는 당시의 기상조건과 자연적인 기후변동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장기적인 방향이다. 기후변화로 강한 강우의 위험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도시 역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에 맞게 도시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토양을 연구하다 보면 흙이 얼마나 많은 일을 조용히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토양은 식물을 키우고 탄소와 영양분을 저장할 뿐 아니라 비가 내릴 때 물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천천히 이동시키는 역할도 한다. 평소에는 그 기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흙 위를 콘크리트로 덮으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쉽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고 도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 그동안 토양이 무료로 해주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에서는 건물을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토양을 살아 있는 상태로 남겨둘 것인가도 중요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 공원과 나무, 토양, 빗물정원과 투수성 공간은 도시를 예쁘게 꾸미기 위한 장식만이 아니다. 폭염에는 그늘을 만들고, 비가 내릴 때는 물이 머물고 스며들 공간을 제공하며, 동시에 사람과 다른 생물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주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비가 내릴 때마다 더 큰 배수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닐 것이다. 자연은 오랫동안 토양과 식물을 이용해 물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천천히 흘려보내 왔다. 도시가 커질수록 우리는 자연을 완전히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도시 안으로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강한 비에 대비해야 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더 많은 콘크리트만이 아니라 비가 들어갈 수 있는 더 많은 흙일지도 모른다.

※필자 장호준은 시드니대학교에서 토양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양과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토양지도, 분광학, GIS,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 연구를 이어가며 국내외 다수의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토양 교육과 지역사회 봉사에도 깊은 애정을 쏟고 있으며, 다방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와 봉사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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