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명의 법칙
곧 오십을 바라보는 한 중년 여성이 필자를 찾아왔다.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을 배운 뒤 한국에 돌아가 사주카페를 차리고 싶은데 잘 나가는 역술가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염치 불구하고 방문했노라고 했다. 과거 수년 간 ‘레이키’(일본에서 유래한 에너지 힐링 요법의 하나) 수련과 ‘타로’ 리딩같은 서양의 신비주의에 빠져 살아왔지만 최근엔 동양 철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단다. “한 십 년 이론을 공부하면서 최소 2만 명의 사주를 직접 보시면 프로로 입문하게 됩니다.”라고, 역술업계에서 정석으로 통하는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녀는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바람처럼 달아나 버렸다.
일부러 먼 길을 찾아와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하는 방문객들이 종종 있다. 외국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끝에 인생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바가 있거나, 노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철리를 마주하고 싶을 때 문득 명리학이 떠오르는가 보다. 이생의 정점을 넘어선 후 종교나 철학에 귀의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이다. 이럴 때면 무조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 주고 싶지만, 심오한 우주의 법칙과 인간사의 변화무쌍함을 논하는 이 학문에 대해 적당히 거짓말을 보탤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역술인이 되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재능이다. 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직관력과 추리력, 그리고 한 사람의 생애를 단 몇 초 만에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비범함은 애초에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스승과 도반들이다. 이런 인연들은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상당수가 어떤 불가항력적 이유로 인생이 바닥을 쳤을 때 ‘내 운명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리학에 입문한다. 물론 재능과 인연이 부족하면 1, 2년쯤 고생하다 허망하게 접기도 하고, 몇 년 뒤 재기에 성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도 한다. 진득하게 이끌어주고 힘들 때마다 손 잡아주는 스승과 도반이 있으면 십 년 정도 노력한 끝에 꽤나 이름을 날리는 역술가로 성공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마지막은 노력과 실습이다. 경영사상가인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Outliers)를 보면 전문가가 되는 데 대략 1만 시간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역술계에는 ‘2만 명의 법칙’이 있다. 2만 명 정도의 팔자를 보려면 한 사례를 연구하는데 1시간쯤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10시간 즉 10명의 사주를 분석하며 꼬박 6년 이상을 매달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훨씬 초과하는 노력이다. 물론 엉뚱한 사주풀이를 해서 손님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자칫 말을 잘못하면 욕설이나 원망을 듣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더럭 겁이 나는 과정을 장장 6년간 쥐꼬리 만한 수입으로 버티며 완수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프로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원래 프로의 세계는 비정하다.
다만 특별한 예외는 있다. 글문신장이 내려 공부를 깊이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 술술 나오는 경우이다. 글의 신, 또는 문장의 신과 통한 것을 서신통(書神通)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특출한 경우는 단순한 노력을 넘어 정신세계의 어떤 신과 접하였을 때만이 가능하다. 가령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그런 케이스이다. 그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써 놓은 소설만 수 백 편에 이르는데 대개 밤에 자면서 꾼 꿈을 아침에 기록해 놓았다가 그것으로 소설의 기본 뼈대를 구성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자고 나면 꿈을 거의 잊어버리는데 그토록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베르나르는 확실히 일종의 서신통을 한 것 같다.
김태련 /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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