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슈퍼마켓 구상
콜스(Coles)와 울워스(Woolworths)가 장악하고 있는 식료품 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공공 슈퍼마켓 체인을 구축하는 $251억 규모의 계획이 제시됐다.
전직 호주 녹색당(Greens) 연방 하원의원이자 현재 녹색연구소(The Green Institute) 의장을 맡고 있는 맥스 챈들러-매더(Max Chandler-Mather)가 주도한 이 계획은 연방정부가 콜스와 울워스의 기존 슈퍼마켓 200곳을 강제 인수하고, 224개 매장과 13개 유통센터를 새로 건설해 ‘페어 고 그로서스(Fair Go Grocers)’라는 정부 소유 슈퍼마켓 체인을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획은 미국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추진한 정부 소유 식료품점 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맘다니 시장은 뉴욕에 정부 소유 식료품점 5곳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챈들러-매더 전 의원은 공공 소유 슈퍼마켓을 통해 콜스와 울워스의 과점 구조를 깨고 우유, 빵, 달걀, 육류 등 필수품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계획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녹색연구소가 제시한 계획에 따르면 생필품 가격은 30% 낮추고, 그 밖의 상품에도 최소 22%의 가격 인하를 적용한다. 녹색연구소의 모델링에서는 이 계획을 이용하는 4인 가족의 연간 식료품비가 $3,134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앞서 계획 설명에서는 평균적인 4인 가족이 연간 약 $3,100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제시됐다.

$251억 투입
계획에는 향후 5년간 총 $251억의 정부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기존 콜스와 울워스 매장 200곳을 강제 인수하고, 전국에 224개 슈퍼마켓과 13개 유통센터를 추가로 건설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포함된다. 녹색연구소는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운영 6년째부터는 사업이 완전히 비용 중립적인 구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페어 고 그로서스는 기존 대형 슈퍼마켓이 판매하지 않기로 한 식용 농산물을 위한 ‘최후의 선택지(last resort)’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또 농민과 생산자를 위해 공정한 최소 도매가격을 설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챈들러-매더 전 의원은 호주 국민이 슈퍼마켓으로부터 “부당하게 돈을 뜯기고 있는 데 지쳤다”며 “캔버라의 정치인들은 손을 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수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윤을 없애고 공공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의료와 교육처럼 식품도 삶에 필수적이다. 메디케어(Medicare)와 공립학교가 있는 것처럼 이제 식품에도 공공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료품 부담 가중
이번 계획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여론을 배경으로 제시됐다. 유고브(YouGov)가 1,5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4%가 식료품 비용을 우려하고 있었으며, 61%는 “매우 우려한다”고 답했다. 또 79%는 12개월 전보다 현재 슈퍼마켓 식료품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별도의 같은 유고브 조사에서는 88%가 연방정부가 식품과 식료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14%는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선구매 후결제(Buy Now, Pay Later)’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부모 응답자의 20%는 비용 문제로 자녀에게 평소보다 적은 양의 음식을 보내거나 점심을 아예 보내지 않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84%가 정부 소유 슈퍼마켓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원네이션(One Nation) 지지자의 절반 이상도 포함됐다. 유고브는 2025년 연방선거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여론조사기관으로 평가받았다.

가격 7% 상승
소비자단체 초이스(Choice)의 최근 분석에서도 호주의 4대 주요 슈퍼마켓 체인인 콜스, 울워스, 알디(Aldi), IGA의 식료품 가격이 모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이스는 올해 5월부터 6월까지 이들 4개 슈퍼마켓 체인의 식료품 가격이 7%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녹색연구소는 호주의 슈퍼마켓 대기업들이 가격폭리(price gouging)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최근 통과시킨 ‘가격폭리 방지(anti-price gouging)’ 법이 식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챈들러-매더 전 의원은 “호주 국민은 이익에 굶주린 콜스와 울워스에 의해 계속 바가지를 쓰는 데 지쳤다”며 “캔버라의 정치인들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배고픈 채 학교에 가고, 가족들이 식사를 거르고, 사람들이 필수품 구매를 줄이고 있다”며 이를 정부가 콜스와 울워스가 추가 이익을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 “세부사항 중요”
그러나 시드니대학교(University of Sydney) 슈퍼마켓 산업 전문가 리사 애셔(Lisa Asher)는 계획의 실제 실행 가능성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애셔는 콜스와 울워스 매장을 강제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와 생필품 이외의 식료품까지 정부가 보조해야 하는지 등을 주요 쟁점으로 꼽았다. 그는 대형 공공 슈퍼마켓을 직접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애셔는 “그렇게 큰 매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매장 규모가 커지면 운영비도 증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필품을 직접 판매하는 대형 공공 슈퍼마켓을 만드는 대신 정부가 식품 필수품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셔는 “식품 필수품을 일종의 식품 PBS와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며, 그것은 더 빨리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우유 전쟁’ 재현 우려
애셔는 공공 슈퍼마켓이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할 경우 콜스와 울워스가 자체 이익을 활용해 상품 가격을 더 낮추는 가격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소비자는 낮은 가격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가격 경쟁의 부담이 농민과 생산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 발생한 이른바 ‘1달러 우유 전쟁’을 사례로 들었다. 애셔는 당시 콜스가 가격 인하를 시작하고 울워스가 뒤따르면서 낙농업계의 마진이 크게 압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것은 콜스가 시작했고 울워스가 뒤따랐다”며 “결국 그 비용을 누가 부담했는가? 농민이었다”고 말했다.
녹색당 공식정책 아냐
이번 계획은 아직 호주 녹색당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 녹색당 대표인 데이비드 쇼브리지(David Shoebridge)는 슈퍼마켓 가격에 대한 불안이 유권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쇼브리지 대표의 발언은 노동당 정부가 남긴 정책적 공백을 녹색당이 메우겠다는 보다 광범위한 약속의 일부로 나왔다. 녹색연구소의 이번 계획은 이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생활비 부담과 식료품 가격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세운 것이다.

슈퍼마켓업계 반박
콜스와 울워스는 가격폭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두 대형 슈퍼마켓 업체는 지금까지 진행된 8건의 별도 조사에서 가격폭리 행위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콜스는 특히 매출 1달러당 이익이 3센트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에서는 맘다니 시장의 공공 슈퍼마켓 구상에 대해 기업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단체들은 정부 소유 매장이 민간 경쟁업체와의 경쟁에서 불공정한 우위를 갖게 되고, 민간업체가 공공 매장의 저렴한 가격을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경쟁업체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주의 계획 역시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슈퍼마켓을 통해 민간업체와 직접 경쟁할 경우 어떤 법적·경제적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당별 대응 달라
국민당(Nationals)은 슈퍼마켓의 중대한 위법·부당행위가 발생할 경우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에 사업체를 강제로 분할·매각할 수 있는 ‘분할매각(divestiture)’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정부는 원격지역 주민들의 식료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25개 매장에서 보조금이 적용된 식료품을 판매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녹색연구소의 계획은 이 같은 기존 정책에서 더 나아가 연방정부가 직접 슈퍼마켓을 소유하고 운영함으로써 식료품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51억에 달하는 초기 비용과 콜스·울워스 매장의 강제 인수에 따른 법적 문제, 공공 슈퍼마켓과 민간업체 간 경쟁, 농민과 생산자에게 미칠 영향 등은 계획의 실제 추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