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불이 붙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 흙이 마르기 시작할 때부터 산불이 확산되기 쉬운 조건은 만들어진다. 호주는 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산불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나라다. 기온이 올라가고 비가 줄어들면 숲과 초원이 건조해지고,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최근에는 태평양의 해수온 변화와 엘니뇨(El Niño) 발생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산불을 이야기할 때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산불이 발생하기 전부터 숲과 식물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토양의 수분이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중부와 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고 대기 순환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기후현상이다. 호주에서는 일반적으로 엘니뇨가 발생하면 동부와 북부 일부 지역에서 봄철 강수량이 감소하고 기온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엘니뇨가 발생했다고 호주 전역에 반드시 가뭄이나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양의 해수온 변화와 지역별 기상조건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니뇨가 건조하고 더운 날씨와 맞물린다면 산불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비가 줄어들면 토양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토양은 단순히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장소가 아니다. 비가 내리면 물을 흡수하고 저장했다가 식물이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자연 저장고다. 그런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높은 기온이 지속되면 토양에 저장된 수분이 점차 줄어든다. 토양 표면에서는 증발을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식물은 뿌리로 흡수한 물을 잎을 통해 대기로 내보낸다. 결국 토양이 건조해지면서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물도 부족해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문제는 땅속에 물이 부족해지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토양수분이 줄어들면 식물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식물은 물이 부족해지면 기공을 닫아 수분 손실을 줄이지만, 그 과정에서 광합성과 생장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가뭄이 지속되면 일부 식물은 잎을 떨어뜨리거나 가지가 마르고, 심한 경우 죽기도 한다. 이렇게 건조해진 낙엽과 잔가지, 풀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불에 탈 수 있는 연료가 된다. 물론 토양이 건조하다고 반드시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산불에는 점화원과 바람, 기온, 습도, 연료의 종류와 양 등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토양수분은 식물의 수분 상태와 연결되어 있어 산불 위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환경정보가 된다.
우리는 산불 뉴스를 접할 때 주로 불길의 높이와 바람의 속도, 피해 면적에 집중한다. 그러나 토양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산불이 발생하기 전 숲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토양수분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식물이 얼마나 건조해졌는지를 살펴보면 산불 위험이 높아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인공위성과 기상관측, 토양수분 자료를 이용해 이러한 변화를 넓은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다. 산불에 대비한다는 것은 불이 어디에서 시작될지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불이 번지기 쉬운 환경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많은 사람은 검게 탄 나무와 사라진 식물만 떠올리지만, 산불은 토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산불의 강도와 지속시간에 따라 토양 표면의 유기물과 낙엽층이 타거나 감소하고, 토양 속 생물과 미생물 활동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토양을 보호하던 식물과 낙엽이 사라지면 빗방울이 토양을 직접 때리면서 토양입자가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산불 이후 비가 내렸을 때 토양침식이 증가할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산불이 지나간 일부 토양에서는 높은 열의 영향으로 물이 토양 속으로 잘 스며들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심해질 수 있다. 빗물이 땅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지표면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산불이 이런 현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토양의 특성과 화재 강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식물과 낙엽이 사라지고 토양의 물 흡수 능력까지 감소한다면 강한 비가 내렸을 때 지표 유출과 토양침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결국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가뭄과 산불이 문제가 되고, 산불 이후에는 다시 비가 왔을 때 토양침식과 홍수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토양탄소 역시 중요한 문제다. 토양은 지구의 중요한 탄소 저장고 중 하나이며, 식물의 뿌리와 낙엽, 미생물의 활동을 통해 탄소가 공급된다. 산불이 발생하면 식물과 낙엽, 유기물 일부가 연소하면서 탄소가 대기로 배출될 수 있다. 화재 강도가 높으면 표층 토양의 유기탄소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산불 이후 토양침식으로 탄소를 포함한 토양입자가 이동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산불이 토양탄소를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일부 탄소는 숯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장기간 저장될 수 있고, 식생 회복에 따라 토양탄소가 다시 증가할 수도 있다. 산불은 단순히 나무를 태우는 사건이 아니라 토양 속 탄소의 저장과 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후변화와도 연결된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높은 기온과 증발산 증가로 토양과 식물이 더 빠르게 건조해질 수 있다. 호주에서는 극심한 화재기상 조건이 장기적으로 증가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역에 따라 산불 위험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엘니뇨와 같은 자연적인 기후변동이 겹치면 특정 계절에는 건조한 환경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산불을 기후변화나 엘니뇨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기후변화는 장기적인 위험을 높이고, 엘니뇨는 특정 시기의 기후조건에 영향을 주며, 실제 산불의 발생과 확산은 당시의 날씨와 연료 상태, 지형과 점화원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가장 먼저 산불을 단순히 여름철의 문제가 아니라 연중 관리해야 하는 환경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산불 위험이 높아지기 전부터 토양수분과 식생 상태를 관찰하고, 지역별 연료의 축적과 건조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 산림과 초원의 특성에 맞는 연료 관리도 필요하다. 산불 이후에는 토양침식 위험을 평가하고, 필요한 곳에서는 지표면 보호와 식생 회복, 유출수 관리 등의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경사가 급하거나 강한 비가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토양과 물의 이동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산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불이 타오르는 순간에만 집중되지 않았으면 한다. 산불이 발생하기 전 토양이 얼마나 건조해졌는지, 식물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산불 이후 토양이 얼마나 건강하게 회복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토양은 산불을 막아주는 방어막이 아니다. 하지만 토양의 수분과 상태를 이해하면 산불 위험을 평가하고, 산불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환경피해에 대비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산불이 발생하면 하늘을 바라본다. 연기가 얼마나 퍼졌는지,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언제 비가 내릴지를 걱정한다. 그러나 산불을 더 잘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하늘이 아니라 발밑의 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산불은 불씨에서 시작되지만, 불이 얼마나 쉽게 번질 수 있는지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만들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다가오는 호주의 여름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숲의 나무뿐 아니라 그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토양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필자 장호준은 시드니대학교에서 토양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양과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토양지도, 분광학, GIS,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 연구를 이어가며 국내외 다수의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토양 교육과 지역사회 봉사에도 깊은 애정을 쏟고 있으며, 다방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와 봉사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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