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률 하락
호주 곳곳에서 영유아 예방접종률이 집단면역 유지에 필요한 수준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일부 백신 반대 부모들이 온라인에서 보육시설 백신 의무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전국 300여 개 지역 가운데 만 2세 아동의 완전 예방접종률이 집단면역 목표치인 95%를 달성한 지역은 단 6곳에 불과했다. 대부분 지역은 홍역(Measles)과 백일해(Whooping cough) 등 전염성이 매우 높은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호주의 아동 예방접종률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025년에는 만 1세 아동의 완전 접종률이 90.5%, 만 2세는 88.4%, 만 5세는 92.5%로 떨어지며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뉴스코프(News Corp)의 취재 결과 일부 부모들은 온라인에서 보육시설의 백신 접종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원 수가 4만3000명이 넘는 유명 백신 반대 부모 커뮤니티를 비롯한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백신을 맞지 않은 자녀를 보육시설에 입소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번 조사와 함께 실시된 추가 분석에서는 NSW주의 리치먼드밸리 코스털(Richmond Valley Coastal)이 전국에서 만 2세 아동 예방접종률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에서는 생후 24개월 아동의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였다.
호주예방접종등록부(Australian Immunisation Register)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의 만 2세 아동 완전 예방접종률은 73.05%에 그쳤다. 그 다음으로 접종률이 낮은 지역은 퀸즐랜드(Queensland)주의 누사 힌터랜드(Noosa Hinterland) 73.89%, 골드코스트 힌터랜드(Gold Coast Hinterland) 74.49%,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A)주의 가스코인(Gascoyne) 74.76% 순이었다.
예방접종률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은 대도심뿐 아니라 외곽과 원격 지역까지 전국적으로 확인됐다.

지역별 현황
이번 통계는 호주를 통계지역 3(Statistical Areas Level 3) 단위로 구분해 집계했다. SA3는 대체로 지방자치단체 경계와 비슷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만 2세 아동의 완전 예방접종률이 목표치인 95% 이상을 달성한 SA3 지역은 단 6곳뿐이었다.
빅토리아(Victoria)주의 로던-엘모어(Loddon-Elmore), 타즈매니아(Tasmania)주의 호바트-노스이스트(Hobart-North East)와 브라이턴(Brighton), 뉴사우스웨일스(NSW)주의 매릭빌-시드넘-피터셤(Marrickville-Sydenham-Petersham), 어퍼 머리(Upper Murray), 라이드-헌터스힐(Ryde-Hunters Hill)이 이에 해당했다.
집단 면역
호주 머독아동연구소(Murdoch Children’s Research Institute) 수석연구원인 제시카 카우프먼(Jessica Kaufman) 박사는 예방접종으로 막을 수 있는 질병이 접종률 하락과 함께 다시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카우프먼 박사는 “예방 가능한 감염병이 그 어느 때보다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호주가 속한 지역에서는 홍역 유행이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지역에서는 소아마비(Polio) 전파 사례도 있었고, 백일해는 원래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감염 규모가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질병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카우프먼 박사는 “예방접종률이 95% 아래로 떨어지고 특히 90% 미만으로 내려가면 일부 질병이 지역사회에 자리 잡아 다시 확산되기 시작하는 상황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집단면역(Herd immunity)은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비율의 사람들이 면역을 갖게 되면 바이러스가 사람 간 전파되기 어려워져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들까지 보호받는 효과를 말한다. 질병마다 필요한 집단면역 수준은 다르지만 홍역과 백일해처럼 전염력이 매우 강한 질병은 지역사회 면역률이 약 92-94%(질병별 차이 존재) 이상 유지돼야 확산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접종률 하락 원인
카우프먼 박사는 호주의 아동들이 대체로 만 5세가 되기 전에는 뒤늦게라도 예방접종을 완료하는 경우가 많지만, 접종 시기가 늦어지는 어린 연령층의 상황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예방접종률이 떨어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코비드19(COVID-19) 팬데믹 이후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고, 온라인상에서 허위 정보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에서 제기된 백신 반대 수사와 일부 반(反)백신 담론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지방 지역에서는 일반의(GP) 부족으로 예방접종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 역시 접종률 하락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카우프먼 박사는 기존의 홍보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의 의사소통 방식은 이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두려움을 조성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며 “부모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우려를 이해하고 이를 해소하는 한편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들 꼼수 확산
전국적으로 아동 예방접종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일부 부모들은 온라인 백신 반대 커뮤니티에서 ‘노 재브, 노 플레이(No Jab, No Play)’ 정책을 피하는 방법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보육시설의 유예기간(grace period)이나 추가 접종 일정(catch-up schedule)을 이용해 여러 보육시설을 옮겨 다니며 백신을 맞지 않은 자녀를 입소시키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었다. 일부 부모들은 제도를 회피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했지만, 해당 내용을 확인한 뉴스코프는 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관련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 부모는 온라인 게시글에서 “나는 이 방법을 두 번 사용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 원하면 사용할 수 있는 편지 양식(letter template)도 갖고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들은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의 입소를 승인해 줄 의료진을 찾거나, 미접종 아동도 받아주는 보육시설 명단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호주에서는 자녀가 예방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부모는 정부의 보육비 지원금(Child Care Subsidy)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을 경우 하루 평균 약 $14.50만 부담하면 되는 보육료를, 지원 대상이 아닐 경우 하루 평균 약 $145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뉴사우스웨일스(NSW), 빅토리아(Victoria),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에서는 백신을 맞지 않은 아동은 원칙적으로 정식 보육시설 이용 자체가 제한된다. 이 때문에 일부 부모들은 예방접종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드롭오프 플레이그룹(drop-off playgroups)이나 비공식 가정형 보육시설(informal family day care) 등을 우회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있었다.

유가족 분노
생후 32일 된 아들 라일리(Riley)가 2015년 백일해에 감염돼 예방접종을 받을 나이가 되기도 전에 숨진 뒤 호주예방접종재단(Immunisation Foundation of Australia) 을 설립한 캐서린 휴스(Catherine Hughes)는 이러한 움직임에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휴스는 “사람들이 제도를 의도적으로 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으니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 것은 부모의 선택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를 의도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이 있는 보육시설에 보내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 경고
멜번대학교(University of Melbourne) 소아감염병 전문의인 짐 버터리(Jim Buttery) 교수는 보육시설처럼 감염 전파가 활발한 환경에서는 집단면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버터리 교수는 “신생아 형제자매를 비롯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집단면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신을 맞고 싶어도 접종할 수 없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저질환이 있는 아이들이나 암(Cancer), 관절염(Arthritis), 중증 습진(Severe eczema) 등으로 면역억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들은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휴스는 최근 호주 전역에서 아동 예방접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라일리가 세상을 떠난 이후 내가 바랐던 것은 가족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이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방접종을 거부해 질병이 다시 퍼질 수 있도록 만드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고 실망스럽다”며 “이 상황을 반드시 되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아기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부모 증언
호주 키즈연구소(Kids Research Institute Australia) 전략적 파트너십 담당자인 카트리나 앨런(Katrina Allen)은 실제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영유아를 잃은 부모들을 직접 만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 29주 만에 조산으로 태어난 쌍둥이 아처(Archer)와 프레야(Freya)를 위해 예방접종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앨런은 “아이들은 삶의 시작부터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백신은 우리 손으로 아이들에게 보호막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등록시키기 위한 여러 우회 방법이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앨런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당신의 아이만이 아니다”라며 “지역사회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아이들도,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도, 조부모들도, 거리나 상점에서 마주치는 면역저하자들도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입장
호주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 대변인은 의료진이 허위로 예방접종 기록을 작성해 줬다는 사실이 확인된 사례는 현재까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특히 아동 예방접종률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인이 예방접종 기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행위는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한 신고나 의혹이 제기될 경우 해당 사안을 담당하는 관계 기관이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예방접종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백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정부는 국가예방접종전략 2025-2030(National Immunisation Strategy 2025–2030) 을 통해 예방접종 접근성을 개선하고, 백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며, 적기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대변인은 정부의 ‘노 재브, 노 페이(No Jab, No Pay)’ 정책이 영유아 교육·보육시설에서 감염병 전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부모들의 예방접종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노 재브, 노 페이’ 정책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제공함으로써 유아교육 및 보육시설에서 감염병 전파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The Daily Telegraph에 게재된 다시 피츠제럴드(Darcy Fitzgerald)와 세라 부스(Sarah Booth)의 ‘Anti-vaxxers dodging childcare vaccination rules are destroying our herd immunity – see the jab rate for your area’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