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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길라드, 성차별법 개정 입장 선회 “그땐 다른 시대였다”

03/07/2026
in 정치
줄리아 길라드, 성차별법 개정 입장 선회 “그땐 다른 시대였다”

줄리아 길라드는 “그때는 다른 시대였다”고 말했다. 사진: Tumisu

질문과 답변

호주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가 자신이 집권하던 2013년 단행한 호주 성차별금지법(Sex Discrimination Act) 개정에 대해 사실상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발언을 내놨다.
길라드는 지난 수요일 저녁 영국 맨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Manchester)에서 열린 ‘콕크로프트 러더퍼드 강연(Cockcroft Rutherford Lecture)’을 마친 뒤 질의응답 과정에서 “그때는 다른 시대였다(It was a different time)”며 당시 입법 당시와 현재의 사회적 논의 환경은 크게 달랐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길라드에게 성정체성(gender identity) 문제와 길라드 정부가 성차별금지법을 개정한 이후 호주에서 법적으로 여성이 생물학적 성별에 의해 정의되지 않게 된 점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길라드는 처음에는 이 문제가 영국 청중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닐 것이라고 말한 뒤, “2012년 해당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을 당시에는 누구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오늘날처럼 공적 담론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때는 다른 시대였다”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지금의 사회적 논의를 그대로 14년 전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길라드가 총리 재임 시절 개정된 성차별금지법의 영향에 대해 최근 공개적으로 언급한 첫 사례다. 사진: PublicDomainPictures

첫 공개 언급

이번 발언은 길라드가 총리 재임 시절 개정된 성차별금지법의 영향에 대해 최근 공개적으로 언급한 첫 사례다. 이는 최근 한 달 동안 영국에서 여성 권리 단체들이 길라드 정부의 법 개정과 그에 따른 여성 권리 침해를 문제 삼으며 잇따라 시위를 벌인 가운데 나온 발언이기도 하다.
길라드는 수년 동안 ‘여성이란 무엇인가(What is a woman?)’라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며 이를 ‘함정 질문(gotcha question)’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태도는 2023년 호주 상원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상원의원 클레어 챈들러(Claire Chandler)는 길라드가 질문을 회피한 것은 “결코 게임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챈들러 의원은 길라드 정부가 성차별금지법에서 여성에 대한 정의를 삭제한 결과, “호주 역사상 가장 왜곡된 정책 결정들 가운데 일부가 직접적으로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법 개정 논란

2013년 법 개정 당시 호주 정부는 법안 해설서를 통해 성차별금지법에 명시돼 있던 ‘남성(man)’과 ‘여성(woman)’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는 대신,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정체성(gender identity), 인터섹스(intersex status)를 새로운 보호 대상 속성으로 추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기준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명시적 정의가 삭제되면서 이후 법원은 생물학적 성보다 성정체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해 왔다.

법원 판결 논란

이 문제는 현재 연방항소 절차가 진행 중인 ‘틱클 대 기글(Tickle v Giggle)’ 사건의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호주 연방법원(Federal Court of Australia)은 성차별금지법상 성(sex)의 법적 개념은 생물학적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여성을 위한 플랫폼으로 설계된 기글(Giggle) 운영사 대표 샐 그로버(Sall Grover)가 외모를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 록산 틱클(Roxanne Tickle)을 차별했다고 판결했다. 길라드는 현재 항소가 진행 중인 사건인 만큼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줄리아 길라드가 자신이 집권하던 2013년 단행한 호주 성차별금지법 개정에 대해 사실상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발언을 내놨다. 사진: 방송캡쳐

영국 시위 확산

강연이 열린 맨체스터대학교 낸시 로스웰 빌딩(Nancy Rothwell Building) 밖에서는 약 12명의 여성 권리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며 “줄리아 길라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Julia Gillard is no feminist)”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길라드 정부가 호주 법률에서 생물학과 성(sex)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여성 보호 장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행인들에게 배포한 전단에서는 현재 호주에서는 여성이 여성 전용 공간(single-sex spaces)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레즈비언들이 여성만을 위한 공개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자신을 여성이라고 정체화하는 남성을 배제하면 위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으로 정체성을 밝힌 남성을 여성 대상 서비스나 공간에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항의 이어져

지난달 영국 헤이온와이 문학축제(Hay Festival Hay-on-Wye)에서는 길라드가 참석한 토론회 도중 두 명의 참석자가 ‘줄리아 길라드, 여성 권리의 파괴자(Julia Gillard Destroyer of Women’s Rights)’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한 여성은 호주 여성들의 성별 기반 권리에 대해 길라드에게 질문하려 했지만 사회자인 카티아 애들러(Katya Adler)가 “행사는 여기까지”라며 발언을 중단시켰고, 일부 청중은 이에 박수를 보냈다.
이 시위는 이보다 이틀 전 영국 런던(London)의 주영호주고등판무관실(Australian High Commission in London) 앞에서 열린 집회에 이어 진행됐다.
당시 약 100명의 참가자들은 샐 그로버를 지지하며 호주의 여성 전용 공간 관련 법적 현실을 알렸고, 성별은 생물학적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판시한 영국 대법원(UK Supreme Court)의 판단과 유사하도록 호주 성차별금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영국의 문학축제에서는 길라드가 참석한 토론회 도중 두 명의 참석자가 ‘줄리아 길라드, 여성 권리의 파괴자’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사진: OpenIcons

정치 조언

길라드는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Wellcome Trust) 의장 자격으로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열린 권위 있는 콕크로프트 러더퍼드 강연을 진행했다. 웰컴 트러스트는 맨체스터대학교의 과학 연구 활동에 1억1,100만 파운드를 지원하고 있다.
강연 말미에서 길라드는 차기 정치 지도자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그는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맨체스터 시장 앤디 번햄(Andy Burnham)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정을 채우는 일은 매우 쉽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치고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일정으로 가득 차있어도, 실제로 영향력을 만들거나 자신의 정책 목표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을 냉정하게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한다는 것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지를 결정하면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달성하고자 하는 소수의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며 “정치에 얼마나 오래 몸담든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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