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처음으로 치명적인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야생 조류에서 확인되면서 당국이 대규모 야생동물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이번 발견은 서호주주의 외딴 해변에서 한 지역 수의사가 우연히 감염 의심 조류를 발견하면서 이뤄졌다.
남극해 인근 허드섬(Heard Island)에서 야생동물을 초토화하고 코끼리물범 새끼 1만3000마리 이상을 폐사시킨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호주에 도달한 사실이 22일 공식 확인됐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질병 유입에 대비하기 위해 총 $1억1300만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줄리 콜린스(Julie Collins) 연방 농업부 장관은 “H5N1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며 “우리는 이 바이러스를 영원히 막아낼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 왔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며, 정부는 이를 위해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도 바이러스 유입에 우려를 표명했다. 알바니즈 총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항상 이러한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왔으며, 이에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정부 대응체계
연방 농업부와 환경부, 보건부가 공동으로 이끄는 국가 전담 태스크포스가 현재 대응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까지 바이러스가 가금류 농장이나 농축산 생산 시스템으로 확산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콜린스 장관은 향후 농장 동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피오나 프레이저(Fiona Fraser) 멸종위기종 담당 위원은 멸종위기종인 호주바다사자(Australian sea lion)와 호주물개(Australian fur seal)를 포함한 해양 포유류 역시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프레이저 위원은 검은백조(Black swan)와 같은 비교적 흔한 종도 멸종위기종 목록에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많은 해양 조류와 물새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조류독감이 호주 전역으로 확산되더라도 동시에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지역은 감염이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감염 확인경위
바이러스는 지난 14일 서호주주 에스퍼런스(Esperance) 동쪽 약 56km 지점에 위치한 케이프 르 그랑 해변(Cape Le Grand Beach) 인근에서 발견된 이동성 갈색스쿠아(Brown skua)에서 처음 확인됐다.
해당 조류는 심하게 탈수된 상태로 해조류 더미 속에 쓰러져 있었으며, 스완스 수의병원(Swans Vets)의 수의사 토니 하울렛(Toni Howlett)이 발견했다.
하울렛 수의사는 약 2km를 이동해 해당 조류를 차량으로 옮긴 뒤 지역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 로리앤 시비시(Lori-Ann Shibish)에게 인계했으며, 시비시는 격리용 보온·보습 장비인 휴미디크립(Humidicrib)에 새를 수용하고 당국에 즉시 신고했다.
며칠 뒤 같은 외딴 지역에서는 또 다른 이동성 바닷새인 자이언트 페트렐(Giant petrel)이 건강 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검사에서 예비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 현재 질롱(Geelong)에 위치한 호주질병대응센터(CSIRO Australian Centre for Disease Preparedness)가 해당 개체에 대한 최종 확인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체감염 우려
호주질병통제센터(ACDC-Australian Centre for Disease Control)는 이번 바이러스가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건강 위험은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FSANZ-Food Standards Australia New Zealand)은 적합하게 취급·조리된 닭고기와 계란은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연방 수석수의관 베스 쿡슨(Beth Cookson)은 21일 열린 긴급동물질병협의위원회(Consultative Committee for Emergency Animal Disease) 회의에서 시민들에게 아프거나 폐사한 야생 조류와의 접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쿡슨 수석수의관은 “우리는 질병 징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며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강력한 생물보안 체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심 개체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공방
한편 호주녹색당(Australian Greens)은 22일 주요 환경보호단체들과 함께 연방정부에 $2억 규모의 긴급 대응 기금 조성을 촉구했다.
녹색당 환경 담당 대변인 세라 핸슨영(Sarah Hanson-Young) 상원의원은 노동당 정부가 2년 전부터 제기된 경고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핸슨영 의원은 “호주에서 조류독감이 확인된 것은 코로나19 이후 호주가 직면한 가장 큰 국내 위기 중 하나”라며 “정부는 이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국민들은 노동당 정부가 그 기간 동안 실제로 대비했는지, 아니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랐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2024년 환경부 장관에게 관련 서한을 보낸 사실도 언급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보면 이번 조류독감 변종은 호주의 야생동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며 “태즈메이니아데블(Tasmanian devil), 검은백조, 바다사자와 같은 상징적인 종들이 멸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야생동물 구조단체와 환경보호단체, 과학자, 정부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려면 최소 $2억 규모의 긴급 대응 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