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내랍니다
주인이 부시워킹을 하다 중심을 잃고 뒤로 벌러덩 넘어지면서 잘못 손을 짚어 소지(小指)인 내가 크게 다쳤다. 금방 붓고 시꺼멓게 멍이 들었지만 당신 신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몇 달째 아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뼈를 다쳐 뼈마디가 붓고 통증이 심해 구부릴 수가 없다. ‘괜찮겠지’ 하고 하루하루 지난 것이 거의 일년이 됐다. 이제 후회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아무래도 치료하기에는 시기를 놓친 것 같다. 작은 나 때문에 전문의를 찾아야 하고 내가 없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나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생각이 달라졌다. 요리를 하다 깨를 집는 순간 주먹 밑으로 주르르 쏟아져 버렸다. 새끼손가락인 내가 꽉 쥐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부리려고 해도 절반 밖에 접히지 못하는 나를 보고 후회하지만 어쩌랴.
제일 키 큰 중지 언니가 퇴행성 관절로 등이 휘어졌어도 아무 불만 없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한 번도 주어진 일을 거부한 적이 없고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내 몫을 못하는 나는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중지 언니도 붓고 통증이 있지만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지내는데 내가 참아야 되지 않을까. 나에게는 넷 언니가 있다. 제일 큰 언니 엄지는, 키는 작아도 굵직한 몸집으로 우리를 제압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는다. 아무리 최고라는 표현으로 손가락을 치켜 올려도 우리는 통하지 않지만 큰 언니가 ‘엄지 척’ 할 때는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듬직한지 우리도 알고 있다. 키 큰 중지 언니가 자신 있게 치켜 올렸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사람들이 욕할 때 중지 언니를 치켜 올리기 때문이다. 나도 어깨가 으쓱 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약속을 하려면 내 몸을 이용해 새끼손가락 끼리 걸어야 하고 마지막 엄지 언니가 도장을 찍어야 한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럴 때면 중요한 일을 맡은 내가 대견스러워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주인은 어린 손자와 ‘좋아하는 장난감 차 사줄게’ 하며 나를 이용해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 얼마나 흐뭇한지… 야들야들한 손자 손이 내 몸에 감길 때는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주인이 고희(古悕)를 넘길 때까지 나는 온 몸이 굽어지도록 도와주며 살았는데, 글쎄 아들에게 창피해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가 없구나 하는 게 아닌가. “엄마, 우리를 키우느라 그랬잖아. 그게 뭐가 창피해.” 아들 말에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주인이 섭섭했다.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면서 우리에게 관심도 없이 살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엉뚱한 생각을 한다. 이제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고 중요한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어떤 때는 내가 고추장 독에 빠진 때도 있다. 맵고 짜지만 맛을 보기 위해 나를 독 속에 밀어 넣었다가 따뜻한 입으로 깨끗하게 닦아 주기도 하고 간장독, 된장독에 빠졌을 때도 항상 닦아주기 때문에 입 속의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을 모두 녹여준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하는 역할이 많은 것 같다. 때로는 양념할 때 우리들이 손맛을 내야 하는데 일회용 장갑으로 비옷 씌우듯 뒤집어 씌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비닐 속에서 오 자매가 온 정성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완성된 요리 접시를 보면 얼마나 흐뭇하던지. 내가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지금까지 희로애락을 주인과 함께 했고 같이 늙어가니 어찌 감히 목에 힘을 줄 수 있으랴. 이번 기회로 작은 어느 부분이라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챙겨 주니 최선을 다해 막내 역할을 다하리.
나이봉 / 호주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