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소비 감소
호주에서 주류 소비가 감소하면서 와이너리와 맥주 양조장 등 주류업계의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생활비 상승으로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이 줄어든 데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를 줄이는 흐름이 확산하면서 와인 수출과 주류 판매도 위축되고 있다. 반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맥주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논란 속에 호주 고유의 펍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류 세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확산하고 있다.
매출 급감
헌터밸리(Hunter Valley)에서 약 5년 전 와이너리를 연 한 사업자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특히 손님이 많은 날이면 하루 최대 220명가량이 와이너리를 찾았지만, 올해는 방문객이 한 명도 없는 날까지 있었으며, 주간 매출이 약 $20,000에서 $2,000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구서를 내는 데 필요한 금액의 10분의 1밖에 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타즈매니아주의 한 유명 맥주 제조업체는 지난주 문을 닫았다. 또 지난 6월 발표된 무역 통계에서는 호주 와인 수출 실적이 2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 부담으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는 현상이 주류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피치 솔루션스(Fitch Solutions)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와인 소비량은 거의 10년 동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에서도 2024년까지 3년 동안 전체 주류 소비량이 약 10% 줄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비스월드(IBISWorld)의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 선임 애널리스트는 2024 회계연도의 감소 폭이 기록상 가장 컸다고 밝혔다.
주류 소비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는 젊은 호주인들의 음주 감소, 생활비 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 무알코올 대체 음료의 인기 상승 등이 꼽힌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헌터베리의 이 와이너리도 인력과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그는 올해 생산량이 약 20t으로, 과거의 60~70t보다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새로 조성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생산할 계획이며, 지난해와 올해에는 와인 숙성용 오크통도 구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계 전반 타격
주류 소비 감소는 와인업계뿐 아니라 맥주 제조업체와 주류 소매업체, 펍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주독립맥주협회(Independent Brewers Association)는 2023년 6월 이후 80곳이 넘는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타즈매니아주 호바트(Hobart)에서는 올해 초 호텔 바 7곳이 자발적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대형 유통업체의 주류 판매도 부진했다. 콜스(Coles)의 주류 판매는 지난 회계연도에 3.3% 감소했으며, BWS와 댄 머피스(Dan Murphy’s)를 소유한 엔데버 그룹(Endeavour Group)의 소매점 매출 증가율은 0.7%에 그쳤다.
호주 포도·와인업계 대표 단체인 오스트레일리안 그레이프 앤 와인(Australian Grape and Wine)은 현재 상황을 업계가 여러 세대에 걸쳐 겪은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표현했다. 이 단체의 최고경영자는 호주 포도 재배 농가와 와인 제조업체에 미칠 영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무알코올 대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무알코올 성장
호주에서 무알코올 맥주 판매량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4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판매량은 1억5,000만L에서 약 3억L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알코올 맥주는 주류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음료 부문으로, 2023년 호주 전체 무알코올 음료 판매의 45%를 차지했으며, 전체 맥주 판매량 가운데서도 약 10%를 차지했다.
한 무알코올 맥주 제조업체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는 자사 제품의 판매량이 매년 약 20%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맥주를 마시는 경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선택할 수 있는 제품에 시장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소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무알코올 맥주를 병이나 캔으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펍과 음식점 등 매장에서 생맥주 형태로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는 무알코올 맥주를 생맥주로 공급하는 것이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을 마시고 매장에서 교류하는 방식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펍 맥주값 논란
주류 소비 감소와 함께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데 드는 비용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맥주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져 평범한 외식과 음주조차 부담스러워졌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빅토리아주 질롱(Geelong)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최근 자신이 자주 찾는 펍에서 도수가 낮은 미드스트렝스(mid-strength) 맥주 스쿠너(schooner) 3잔을 마시고 $30 이상을 지불했다.
스쿠너는 호주에서 맥주를 판매할 때 사용하는 잔 용량 단위다. 미드스트렝스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제품이다.
그는 1990년 멜번에서 같은 양의 맥주를 마셨다면 약 $5.70이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와 비교하면 약 $25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실 때마다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에 지쳤다”며 “외식하면서 맥주 두 잔을 즐기는 일도 어려워졌다. 음식과 맥주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만은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맥주 소비세 체계를 개편하자는 요구가 담긴 청원(Change.org)에는 8개의 개별 청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지지자는 8,000명을 넘어섰다. 청원 내용에는 맥주 소비세 전면 폐지, 세금 인상 영구 동결, 경영난을 겪는 펍의 재정 부담 완화 등이 포함돼 있다.
펍 문화 쇠퇴
이 주민은 맥주 가격 상승이 호주 펍 문화의 쇠퇴를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방의 펍은 거의 과거의 유물이 됐다”며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음악을 듣고 서로 어울리는 지역사회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모든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맥주 가격까지 이렇게 오르는 것은 지나치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맥주 세금 부담을 줄이면 사람들이 지역 펍으로 돌아오고, 업소의 매출 회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것이라며, 맥주에도 다른 음식이나 음료와 비슷한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소비자가 무엇을 구매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60세인 그는 과도한 음주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말했다.

맥주 세금 구조
호주에서는 맥주와 증류주에 일반적으로 알코올 함량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된다. 반면 와인은 별도의 과세 체계를 적용받으며, 도매가격의 29%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과된다.
맥주 소비세는 통상 물가상승률에 맞춰 매년 두 차례 인상된다. 이에 따라 맥주 제조업체와 펍, 소비자 모두 세금 인상의 영향을 받아왔다.다만 정부는 생맥주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2025년 8월부터 생맥주 소비세의 물가연동 인상을 2년 동안 동결했다. 이 조치는 펍과 기타 업소에서 케그(keg-맥주 저장용 통)에 담긴 맥주를 따라 판매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반면 병맥주와 캔맥주는 이 동결 조치에서 제외됐다. 이들 제품에 적용되는 소비세는 기존과 같이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상되고 있다.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는 정책 발표 당시 생맥주 소비세 동결이 맥주 소비자와 양조업체, 펍 모두에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업계 전환 모색
주류 소비 감소와 가격 부담이 동시에 커지면서 업계는 변화하는 소비자 선호에 맞춰 사업 구조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오스트레일리안 그레이프 앤 와인은 앞으로 와인업계의 규모와 구조가 지금과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단체의 최고경영자는 기존 수출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영국 등 기존 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점유율을 되찾는 한편,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호주 와인 수출에 여전히 큰 가능성이 있는 시장을 개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주류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호주알코올음료(Alcohol Beverages Australia)의 사무국장도 업계가 소비자 선호에 맞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품 종류를 다양화하고 저알코올 및 무알코올 제품을 확대하는 등 업계의 혁신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업체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도 나온다. 그는 어려움을 겪는 포도 재배 농가와 와인 제조업체가 업계를 떠나거나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가가 와인용 포도 재배를 중단하고 다른 작물을 재배하거나, 토지를 활용해 다른 사업을 시작하는 방안 등 다양한 전환 경로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과 전망
높은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부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류 소비 감소세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일 아이비스월드 선임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주류 구매에 돈을 쓰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1인당 주류 소비량이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호주 농업·수산·임업부(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Agriculture, Fisheries and Forestry)의 줄리 콜린스(Julie Collins) 장관은 최근 몇 년간 포도·와인업계가 직면한 어려움을 인정했다. 콜린스 장관은 정부가 포도·와인 부문을 지원하기 위해 1억5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지원에는 와인 균등화세 환급(Wine Equalisation Tax rebate)과 와인용 포도 구매에 적용되는 새로운 의무 행동강령이 포함됐다. 그는 정부가 앞으로도 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주류업계는 소비 감소와 가격 부담, 수출시장 변화라는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무알코올 제품 확대와 해외시장 개척이 새로운 성장 기회로 떠오르고 있지만, 기존 사업체의 폐업과 농가의 업종 전환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맥주 소비세 개편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면서 호주 주류업계는 사업 구조 조정뿐 아니라 세금 정책과 소비문화 변화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