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개 농산물 표본 분석
호주 주요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과일과 채소를 대상으로 한 독립 잔류농약 검사에서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유럽연합(EU)에서 사용이 승인되지 않은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딸기 한 팩에서는 법적 잔류 허용 기준의 10배에 가까운 농약이 확인됐다는 보고도 나왔다.
농약 사용과 식품 안전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조사단체는 정부와 유통업체에 검사 확대와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호주 농약 관련 시민단체 PAA(Pesticide Action Australia)는 콜스(Coles), 울워스(Woolworths), 알디(ALDI)에서 구입한 과일과 채소 13종, 총 78개 표본을 독립적으로 검사했다. 검사 대상은 애들레이드(Adelaide), 브리즈번(Brisbane), 시드니(Sydney), 퍼스(Perth), 멜번(Melbourne)에서 판매된 제품이다.
54종 농약 검출
7뉴스(7NEWS)에 따르면 검사 결과 전체 표본에서 200건이 넘는 잔류농약이 확인됐으며, 검출된 농약 성분은 54종이었다. 조사단체는 이 가운데 12개 표본에서 농약 잔류 기준을 초과하거나 사용이 금지된 성분과 관련된 문제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PAA(Pesticide Action Australia)의 엘리너 데이비스(Eleanor Davis)는 검사 표본의 거의 절반에서 과불화화합물(PFAS) 계열 농약 잔류물이 발견됐으며, 절반이 넘는 표본에서 유럽연합이 사용을 승인하지 않은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PFAS 잔류 확인
보고서에 따르면 딸기와 블루베리, 포도, 피망, 토마토 등에서 PFAS 계열 농약 잔류물이 확인됐다. PFAS는 환경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로 불린다. 일부 PFAS 물질은 체내에 축적될 수 있고 암을 비롯한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번 검사 결과만으로 특정 농산물의 섭취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농약 규제 논쟁
데이비드 포콕(David Pocock) 연방 상원의원은 호주의 농약 규제 체계를 살펴보기 위한 상원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사 대상인 파라콰트(paraquat)는 여러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된 제초제다. 7뉴스는 파라콰트가 70개국에서 금지돼 있다고 보도했다.
포콕 의원은 호주에서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농업에 계속 사용되고 있다며 현행 규제 체계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와 규제기관이 농약 관리 문제를 더 심각하게 다뤄야 소비자들이 식품 안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연합에서 사용이 승인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호주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잔류 기준을 초과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번 보고서에 언급된 모든 농약이 호주에서도 금지돼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형마트 자체 검사
대형마트 3사는 식품 안전 기준을 준수하고 있으며 자체 검사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콜스는 신선 농산물 공급업체가 호주의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인증을 받은 재배업체로부터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신선 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울워스는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FSANZ-Food Standards Australia New Zealand)이 정한 법적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요 공급업체와 재배업체의 잔류농약 검사도 호주 소매업체 농산물 통합관리제도(HARPS-Harmonised Australian Retailer Produce Scheme)에 따라 감사받는다고 설명했다.
알디는 신선 농산물 공급업체에 세계식품안전협회(GFSI-Global Food Safety Initiative) 인증 등 인정된 식품 안전 기준을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업체의 정기 검사 외에도 자체 식품 안전 및 품질 보증 프로그램에 따라 위험도를 고려한 검사를 실시한다고 덧붙였다.
규제기관의 입장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은 이번 보고서의 전체 분석 자료와 결과를 확보하지 못해 구체적인 논평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식품기준청은 농약 잔류 허용 기준(MRL-Maximum Residue Limits)을 초과했다는 사실이 법적 허용치보다 높은 농약 잔류물이 존재한다는 의미이지만, 반드시 공중보건상 위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식품기준청은 호주 국민이 섭취하는 식품의 농약 잔류 수준을 호주 총식이조사(Australian Total Diet Study) 등의 활동을 통해 평가하고 있다. 농산물 업계 단체들은 소비자 우려를 진정시키는 데 나섰다. 호주 채소재배자협회(AusVeg)는 호주에서 재배한 채소가 세계적으로 안전한 수준에 속한다고 밝혔으며, 베리즈 오스트레일리아(Berries Australia)는 딸기에서 검출된 잔류물이 인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세척만으로 제거 어려워
농산물을 먹기 전에 씻는 것은 기본적인 위생 관리 방법이지만, 세척만으로 모든 농약 잔류물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미다클로프리드(imidacloprid)가 블루베리와 브로콜리, 피망, 상추, 록멜론 등 9개 표본에서 검출됐다. 이 성분은 식물의 관다발을 통해 이동해 작물 내부에서도 해충 방제 효과를 낸다. 유럽연합에서는 사용이 승인되지 않았지만, 호주 농업 관련 법령에는 작물별 잔류 허용 기준이 마련돼 있다.

상추 잔류 기준
호주 기준에 따르면 상추의 이미다클로프리드 잔류 허용량은 1kg당 5mg이다. 그러나 이번 잔류농약 보고서에는 각 농산물에서 검출된 개별 농약의 구체적인 양이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표본이 법적 허용 기준을 얼마나 초과했는지, 또는 실제 섭취에 따른 위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보고서에 제시된 정보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PAA(Pesticide Action Australia)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상추를 재배할 때 어린 모종에 이미다클로프리드를 처리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재배 과정에서 잎에 직접 농약을 살포하지 않더라도 식물이 자라는 동안 성분이 내부로 이동해 잔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약 사용 관행도 도마에
농약은 작물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고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된다. 재배업자들은 해충 피해로 수확량이 급감하면 경제적 손실이 커질 수 있어 농약 사용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번 보고서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농업 관계자들의 증언도 담겼다. 한 농업 과학자는 일부 재배업자가 실제 해충 피해가 없는데도 기존 관행에 따라 며칠 간격으로 농약을 살포하며, 해당 농약의 독성이나 자신과 작물, 소비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호주 농산물 재배업자는 소비자들이 식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은 당연하다며, 슈퍼마켓이 농약 사용 감축 목표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AA(Pesticide Action Australia)는 유통업체와 정부가 농산물 검사를 확대하고 결과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포콕 의원 역시 정부와 규제기관이 농약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