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중 긴급사태
두바이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흉기로 공격한 뒤 항공기가 급격히 하강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조종실로 진입해 공격자를 제압하고 항공기 통제권을 되찾으면서 대형 사고를 막았다.
174명이 탑승한 플라이두바이(flydubai) FZ1073편은 30일 오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국제공항(Dubai International Airport)을 출발해 텔아비브(Tel Aviv)로 향하던 중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타부크(Tabuk)의 프린스 술탄 빈 압둘아지즈 국제공항(Prince Sultan bin Abdulaziz International Airport)으로 긴급 회항했다. 탑승객 대부분은 이스라엘 국민으로 알려졌다. 항공기는 타부크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으며, 승객들은 이후 대체 항공편을 통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조종실서 흉기 공격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는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한 안보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비행 중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를 흉기로 찌른 뒤 항공기를 추락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에 따르면 항공기가 급격히 하강하자 승객들과 승무원 한 명이 조종실로 진입했다. 이들은 조종실에서 공격을 받은 조종사와 다른 조종사가 있는 상황을 발견했으며, 공격자로 지목된 조종사가 항공기 조종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승객과 승무원들은 공격자를 제압했고, 이후 해당 항공기에 승객 자격으로 탑승하고 있던 다른 플라이두바이 조종사들이 항공기 통제권을 확보해 사우디아라비아 타부크공항까지 운항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은 현재까지 이스라엘 당국과 승객들의 설명에 근거한 것으로, 플라이두바이는 조종실에서 “충돌(altercation)”이 발생했다고 확인하면서도 사건의 원인과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공식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30초 만에 급강하
항공기 비행 자료에서도 당시 상황의 심각성이 나타났다. 비행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에 따르면 FZ1073편은 비행 중 약 3만 피트 이상의 고도에서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했고, 한 지점에서는 30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약 1만4,000피트(약 4,300m)를 급격히 내려갔다. 항공기는 당시 요르단 상공 인근을 비행하고 있었으며,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방향으로 이동했다. AP통신은 항공기가 약 1분 동안 3만3,000피트(약 1만m)에서 1만7,000피트(약 5,200m)까지 하강했다고 전했다. 항공기는 이후 불규칙한 비행 경로를 보이며 방향을 바꿨고, 사우디아라비아 타부크공항으로 향했다.
타부크공항 관제당국은 현지시간 오전 8시44분 FZ1073편으로부터 긴급 착륙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항공기는 약 한 시간 뒤 타부크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항공기는 비상 상황을 알리는 7700 코드를 전송한 뒤 이후 불법 개입 상황을 의미하는 7500 코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항공기 납치 가능성에 대비해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이후 이번 사건이 납치로 판단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친 조종사도 대응
흉기에 찔린 조종사는 인도 국적의 스밋 마치차르(Smit Machchhar) 기장으로 확인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마치차르 기장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조종실 문을 열어 승객과 승무원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에 따르면 마치차르 기장은 조종실 바닥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으며, 그가 조종실 문을 열 수 있게 되면서 승객들이 안으로 들어가 공격자를 제압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인도대사관은 마치차르 기장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타부크공항 측은 사건 이후 두 조종사가 모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승객들 조종실 진입
당시 기내에 있던 승객들은 갑작스러운 급강하와 조종실 앞에서 벌어진 혼란을 직접 경험했다. 한 승객은 항공기 착륙 직전 촬영한 영상에서 칼을 든 남성이 조종사 한 명을 찔렀으며 자신과 다른 승객들이 조종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다른 승객은 온라인에 게시한 영상에서 “우리가 비행기를 통제했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승객은 로이터통신에 항공기가 20~30초 동안 하강한 뒤 다시 안정되고, 또다시 하강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후 승객들이 항공기 앞쪽으로 몰려가 조종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한 승객은 조종실에 들어간 뒤 공격자를 제압하는 데 힘을 보탰다. 네타냐후 총리실이 공개한 영상에는 그가 피가 묻은 셔츠를 입은 채 네타냐후 총리와 포옹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스라엘 당국은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공격자를 제압한 뒤 추가로 탑승해 있던 플라이두바이 조종사들이 항공기를 다시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테러 여부 조사
이스라엘 당국은 이번 사건을 테러 공격 시도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카츠(Israel Katz)는 이번 사건을 “지하드 테러 시도”라고 규정하면서 이스라엘 승객들의 대응으로 저지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의 정확한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당국은 공격자로 지목된 부기장이 오만 국적이라고 밝혔으며, 네타냐후 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그를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이두바이 역시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와 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며 공식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성급한 추측을 자제해 달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로 운항하는 항공편 조종사에 대한 보안 확인을 강화할 방침이다. 네타냐후 총리실 대변인은 앞으로 이스라엘로 운항하는 조종사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일정 수준의 보안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서 발 묶여
비상착륙 이후 승객들을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발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이스라엘이 직접 항공기를 보내 승객들을 데려오는 데 제약이 있었다. 이후 플라이두바이가 타부크공항으로 대체 항공편을 보내 승객들을 이송했다. 승객들은 사건 발생 후 10시간 이상 지난 뒤 이스라엘 벤구리온공항(Ben Gurion Airport)에 도착했다. 벤구리온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일부 승객들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항공기가 추락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형 참사 막아”
항공 전문가들은 당시 항공기의 급격한 고도 하강이 기체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전직 상업항공기 조종사 테리 토저(Terry Tozer)는 항공기가 짧은 시간에 급격히 하강하면서 기체가 큰 힘을 받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공기가 설계 한계를 넘는 힘을 받을 경우 기체가 공중에서 파손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착륙한 항공기의 꼬리 부분에서 방향타(rudder)가 크게 손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공개됐지만, 손상이 정확히 언제 어떤 과정에서 발생했는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토저는 급강하하는 항공기의 기수를 다시 들어 올린 사람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조종하지 않은 것도 중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종장치를 너무 강하게 당겼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승객과 승무원들의 대응을 거듭 평가하며 “많은 생명을 구했고 큰 재난을 막았다”고 말했다.
한편 플라이두바이는 에미리트항공(Emirates)의 자매 항공사로, 두바이와 텔아비브를 정기 운항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정확한 경위와 공격 동기, 조종실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현재 공식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