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쟁이나 기후변화, 가뭄과 홍수로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물안보(Water Security)’도 마찬가지다. 깨끗하고 충분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이제 한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양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5% 이상이 육상에서 생산된다. 우리가 먹는 쌀과 밀, 채소와 과일이 토양에서 자라고, 가축이 먹는 사료 역시 상당 부분 토양에서 생산된다. 토양은 단순히 식물의 뿌리를 붙잡아주는 흙이 아니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물과 영양분을 저장하고 공급하며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을 제공한다. 식량안보를 이야기하면서 토양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물안보 역시 토양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비가 내리면 물의 일부는 토양 속으로 스며들고 저장되며, 일부는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토양은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여러 물질을 붙잡거나 변화시키는 일종의 자연적인 필터 역할도 한다. 물론 깨끗한 물을 만드는 데에는 습지와 하천, 지하수, 수처리 시설 등 여러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토양만 있으면 깨끗한 물이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강한 토양이 물을 저장하고 여과하며 물순환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Food Security와 Water Security 아래에는 Soil Security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반이 놓여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토양안보(Soil Security)’란 무엇일까. 토양안보라는 개념은 단순히 흙을 보호하자는 환경운동의 구호가 아니다. 2014년 호주 시드니대학교의 Alex McBratney, Damien Field 교수님들이 토양안보를 체계적인 개념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미래 세대도 식량과 섬유, 깨끗한 물을 생산하고 기후 안정과 생물다양성,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토양이라는 자원을 보호하고 그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다.
토양안보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섯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영어로 모두 C로 시작하기 때문에 흔히 ‘5C’ 라고 부른다.
첫 번째는 Capacity, 즉 ‘이 토양은 원래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모든 토양이 똑같지는 않다. 어떤 토양은 물을 많이 저장할 수 있고, 어떤 토양은 농업에 적합하며, 어떤 토양은 자연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Condition은 ‘그 토양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다. 침식되지는 않았는지, 유기물이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산성화나 염류화, 다짐과 오염이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Capital, 즉 ‘그 토양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제공하는가’이다. 우리는 땅의 가격은 쉽게 계산하지만 그 안에 있는 토양이 물을 저장하고, 식량을 생산하고, 탄소를 저장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가치는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 Connectivity는 사람과 토양의 연결이다. 농민과 토지관리자가 자신이 관리하는 토양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일반 시민이 토양의 중요성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과학자들이 가진 지식이 사회에 얼마나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마지막 Codification은 정책과 제도다. 아무리 좋은 연구결과가 있어도 토양을 보호할 법과 정책, 관리기준이 없다면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쉽게 정리하면 Soil Security의 5C는 다섯 가지 질문이다.
이 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 건강한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이 흙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킬 제도는 있는가? 토양안보는 단순히 토양의 pH나 탄소를 측정하는 과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와 교육, 사회 그리고 정책까지 연결하는 개념인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앞으로 ‘안보’라는 말을 조금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가안보라고 하면 군대와 국경을 먼저 떠올리고, 식량안보라고 하면 충분한 음식을, 물안보라고 하면 충분하고 안전한 물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식량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면 식량안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토양이 물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기능을 잃고 침식과 오염이 심해진다면 물안보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토양의 변화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불은 연기가 보이고, 홍수는 물이 넘치는 모습이 보이며, 가뭄은 말라버린 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토양 유기물이 조금씩 감소하고, 토양이 조금씩 다져지고, 침식으로 표토가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토양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FAO가 설명하듯 우리가 의존하는 몇 센티미터의 토양은 형성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릴 수 있는 반면, 잘못 관리하면 훨씬 짧은 기간 안에 훼손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양안보는 토양과학자나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농업을 하고, 도시를 개발하고, 물을 관리하고, 토지를 평가하고, 학교에서 환경을 가르치며, 정부가 어떤 정책을 만드는지가 모두 토양안보와 연결된다. 인공위성과 드론, 토양 센서, 분광학, 디지털 토양지도와 AI 같은 새로운 기술도 토양의 상태를 더 빠르고 넓게 파악하고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토양을 보호한다는 것은 과거의 농업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가진 토양을 더 현명하게 관리하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오랫동안 Food Security를 이야기해 왔다. 이제는 Water Security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아래에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는 Soil Security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식량안보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면, 물안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토양안보는 그 식량과 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지탱하는 땅의 기능을 다음 세대까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의 문제다. 음식이 필요하다면 토양을 지켜야 한다. 물을 지키고 싶다면 토양도 함께 지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싶다면, 이제는 토양안보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필자 장호준은 시드니대학교에서 토양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양과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토양지도, 분광학, GIS,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 연구를 이어가며 국내외 다수의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토양 교육과 지역사회 봉사에도 깊은 애정을 쏟고 있으며, 다방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와 봉사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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