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가격 다른 가치
호주 슈퍼마켓과 식당, 체육관은 물론 가정에서 사용하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에서 소비자들이 같은 돈을 지불하고도 이전보다 적은 가치를 얻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격이나 제품 크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재료의 품질을 낮추거나 서비스 내용을 축소하는 이른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 때문이다.
호주 소비자들은 가격 폭리(price gouging)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과 같은 교묘한 가격 인상 수법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한 경제 전문가는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또 다른 방식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렌스대학교 경영대학원(Torrens University Business School)의 경제학자 크리스 아이어(Kris Iyer)는 스킴플레이션으로 인해 호주 소비자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구매해 온 상품과 서비스에서 실제로 얻는 가치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제품을 구매하고 크기도 똑같으며 가격도 그대로지만, 그 제품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제품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방식인 반면, 스킴플레이션은 포장이나 가격표, 제품의 물리적인 크기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수 있어 소비자가 알아차리기 훨씬 어렵다는 설명이다. 아이어는 “겉보기에는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지만 품질이 달라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킴플레이션 방식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에 스킴플레이션을 적용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제품에 들어가는 고품질 원재료를 더 저렴한 대체재로 바꾸거나 기존보다 원재료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둘째,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능 또는 제공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셋째, 구매 가격에 포함돼 있던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일부 혜택을 없애는 것이다.
일상 곳곳에 확산
아이어는 스킴플레이션이 식료품부터 보험, 은행 서비스, 식당, 숙박시설, 엔터테인먼트 구독 서비스, 체육관 회원권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갑자기 가격은 그대로이고 제품도 똑같지만, 그 제품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조금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어는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 식료품점에서 특정 요구르트 제품이 전지우유(full-cream milk) 대신 탈지유(skim milk)를 사용하도록 바뀐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호주 소비자단체 초이스(CHOICE)는 한 업체의 어린이용 요구르트 파우치 제품인 딸기·바닐라·블루베리 맛 제품에 과거 눈에 잘 띄는 유기농 인증 표시가 붙어 있었으나, 원재료가 바뀐 지 몇 달이 지난 뒤 해당 제품들은 가격과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유기농 인증 표시를 없애고 대신 ‘천연 원료(all natural)’라는 문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 이 업체의 모회사는 비영리 소비자 권익단체인 초이스에 원재료 변경은 요구르트의 지방 함량을 더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일부 소비자들이 유기농 인증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많은 소비자에게는 요구르트를 선택하는 핵심 요인이 아니었다”며 해당 표시를 삭제한 이유를 밝혔다. 초이스는 이 밖에도 시리얼과 치약 등 여러 브랜드 제품에서 더 저렴한 원재료로 대체한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소비자도 방심 금물
아이어는 소비자들이 청구서나 구매 내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스킴플레이션의 피해를 보는 상황을 ‘DIY 스킴플레이션(do-it-yourself skimpflation)’이라고 표현했다.
전기화와 전기차 보급을 지지하는 한 활동가는 자신의 가족이 과거 전력 사용량을 바탕으로 같은 전력회사의 다른 요금제로 변경해 연간 1,200달러를 절약했다 소개했다. 그는 “이들 기업은 소비자들이 바쁘다는 점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어도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사례로 스트리밍 서비스와 체육관 회원권을 들었다. 과거 광고 없이 이용할 수 있었던 스트리밍 서비스 요금제에 광고를 추가하거나, 기존 회원권으로 여러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던 체육관이 같은 회비를 유지하면서도 일부 시설 이용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이전과 같은 금액을 지불하지만 실제로 제공받는 서비스는 줄어드는 셈이다.
피해 예방 방법
아이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한 방법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과 상태를 직접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슈퍼마켓의 가격 책정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평소 구매하는 제품의 사진을 찍고 가격 변화를 기록해 둘 것을 권했다. 또한 “다음에 같은 제품을 구매할 때는 사진이나 기록을 인공지능(AI) 챗봇에 입력하면 이전 달이나 3개월 전, 6개월 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기록과 비교 방법을 상품뿐 아니라 소비자가 돈을 지출하는 각종 서비스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출하는 모든 항목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아이어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의 품질이나 포장, 서비스 내용이 달라지는 것을 얼마나 주의 깊게 살피는지에 따라 스킴플레이션에 노출될 위험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아이어는 “소비자들이 모를수록 기업에는 유리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