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 세수를 하고 수건을 집어 들었다. 매일 얼굴을 닦던 익숙한 수건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얼굴을 닦고 제자리에 걸어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수건 한쪽에 시선이 멈췄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하얀 수건 한쪽에, 조금씩 빛바랜 파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이전개원…’
그 몇 글자가 오늘 아침, 30여 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깨워놓았다.
‘이 수건이 언제부터 우리 집에 있었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살던 단독주택 골목 귀퉁이에는 작은 약국 하나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맞벌이를 하던 우리 부부, 그리고 어린 두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식구가 많으니 감기며 기침이며 소화가 불편한 날이면 자연스럽게 그 약국을 찾았다. 젊은 여약사님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약을 사는 손님과 약사 사이였다.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이 감기는 좀 나았어요?”
“어머니께서 드시는 약은 괜찮으세요?”
그런 짧은 안부가 하나둘 쌓이면서 어느새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아는 이웃이 되어갔다.
약사님의 남편은 치과의사였다. 얼마 뒤 그분이 봉직 생활을 마치고 우리 동네에 치과를 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이 가까운 곳에 치과를 개원한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내는 우리 가족의 약을 살펴주는 이웃이 되었고, 남편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치아를 돌봐주는 주치의가 되었다. 누가 특별히 약속한 관계도 아니었다.
같은 동네에서 만나 안부를 묻고, 아픈 곳이 있으면 찾아가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갔다. 그렇게 쌓인 평범한 하루들이 어느새 ‘인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치과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그때 받아온 것이 오늘 아침 내가 들여다보고 있던 이 수건이었으리라.
‘이전개원.’
그때는 새로 옮긴 치과를 알리기 위해 새겨 넣은 글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3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 그 글씨는 내게 전혀 다른 주소를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의 주소였다. 문득 수건을 들여다보며 웃음이 났다.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니?’
한국에서 살던 집을 떠나 수많은 살림살이를 정리했을 것이고, 바다를 건너 호주까지 오는 동안 버려질 기회도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건은 용케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있다가, 이제야 자기 속에 접어두었던 기억을 하나씩 펼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기억 속에는 젊었던 우리 부부가 있었다. 어린 두 아들이 있었고, 곁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골목 귀퉁이의 작은 약국이 있었고, 유리창 너머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젊은 이웃이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우리 부부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 약국과 치과의 젊은 부부 역시 우리와 함께 세월을 건너왔다. 사는 곳은 멀어졌지만 인연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가끔 만나 식사를 한다.
“그때 아이들이 참 어렸지요.”
“그 골목 약국 기억나요?”
“치과 처음 열었을 때가 벌써 언제예요?”
이야기 하나를 꺼내면 또 다른 기억이 따라 나오고, 그 기억 끝에는 으레 웃음이 따라온다. 그렇게 돌아보니 알 것 같다.
좋은 인연이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 평범한 날 서로 건넨 작은 관심이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낡은 수건 한 장이 그것을 다시 가르쳐주었다.


사람의 기억은 참 묘하다.
오래된 사진 한 장에 숨어 있기도 하고, 빛바랜 편지 한 통에 잠들어 있기도 한다. 익숙한 냄새 하나에 갑자기 깨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얼굴을 닦던 수건 한 장 속에서 30년 넘게 조용히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마침 Father’s Day였다.
아침에 수건을 바라보다 문득 그 시절의 아들들을 떠올렸다. 당시 약사님을 처음 만났던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아들이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들 곁에는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손주가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놀랐다.
오늘 내 앞에 앉아 있는 손주는, 그 시절 약사님을 처음 만났던 아들의 나이를 이미 훌쩍 넘어 있었다. 그제야 ‘30여 년’이라는 숫자로만 헤아리던 세월이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듯했다.
아침에는 수건 한 장 속에서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만났는데, 몇 시간 뒤 그 아이는 아버지가 되어 자기 아이와 함께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수건에는 옛날이 남아 있었고, 내 앞에는 그 세월이 자라 앉아 있었다.
참 묘한 Father’s Day였다.
아침에 우연히 바라본 낡은 수건 한 장이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다시 욕실에 들어가 수건을 바라보았다. 낡았다. 파란 글씨도 많이 바랬다.
새 수건과 나란히 걸어놓으면 먼저 버려야 할 물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 수건에는 물기보다 더 많은 것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젊었던 우리 부부의 시간이 스며 있고,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스며 있고,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 골목에서 시작된 좋은 이웃과의 인연도 스며 있다.
그리고 오늘, 그 위에 또 하나의 기억이 포개졌다. 아버지가 된 아들과 어느새 훌쩍 자란 손주가 찾아온 Father’s Day의 하루.
수건을 다시 제자리에 걸어두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수건 한 장이 별일을 다 시키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지 모른다. 평범해서 잊고 살았던 하루가 세월이 흐른 뒤에는 가장 그리운 날이 되어 있고, 무심코 스쳐 지나간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새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쓰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오래된 수건이 참 고맙다.
잊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했으며, 무엇보다 내 곁을 지나간 평범한 날들이 얼마나 귀한 날들이었는지를 다시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수건은 낡았지만, 그 속에 접혀 있던 기억은 낡지 않았다.
오늘 아침, 수건 한 장이 내게 닦아준 것은 얼굴의 물기만이 아니었다. 세월의 먼지를 살며시 닦아내고, 그 안에 숨어 있던 따뜻한 행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표동섭 Melbourne, Victoria
![[수필] 수건 한 장이 건넨 아침 – 표동섭](https://www.koreanherald.com.au/wp-content/uploads/2026/09/fotorieth-towel-8688401_64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