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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토양에는 국경이 없다

28/10/2026
in 칼럼
국경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토양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는 국경을 기준으로 나라를 나누고 각자의 영토와 자원을 관리한다. 한국의 환경은 한국이, 호주의 환경은 호주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도 우리가 지도에 그어 놓은 선을 따를까? 바람과 강물, 대기 중 온실가스는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 토양 역시 특정 장소에 있지만, 토양이 훼손되었을 때 나타나는 영향은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토양은 식량을 생산하고 물을 저장하며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가 된다. 또한 식물의 뿌리와 낙엽, 미생물의 활동을 통해 탄소를 저장하고 순환시킨다. 이런 기능은 한 나라의 경제적 이익을 넘어 인류의 삶을 지탱한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건강한 토양과 식량, 깨끗한 물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세계 토양의 상태는 이미 우려할 만하다. 2024년 학술지 Annual Review of Environment and Resources에 발표된 「Status of the World’s Soils」는 전 세계 토양의 약 33%가 중간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황폐화됐다는 평가를 소개했다. 토양침식과 유기물 감소, 염류집적, 오염, 토양다짐 등이 주요 문제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의 2022년 보고서 역시 전 세계 육지의 약 20~40%가 다양한 수준의 토지 황폐화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나라의 토양이 훼손되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먼저 식량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먹는 곡물과 농산물은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다. 주요 생산지역에서 토양침식이나 비옥도 저하로 수확량이 감소하면 국제 식량 공급과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에서 경험하는 황사도 국경을 넘는 연결성을 보여준다. 중국과 몽골 등의 건조 지역에서 발생한 먼지가 대기 순환을 따라 이동한다. 황사는 자연적으로도 발생하므로 모두 토양 황폐화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 지역의 지표면 상태가 먼 나라의 환경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후변화에서도 토양의 역할은 중요하다. 토양에 저장된 탄소는 토지 이용과 관리 방식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9년 「Climate Change and Land」 특별보고서에서 지속 가능한 토지 관리와 토양 유기탄소 보전이 기후변화 대응과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토양에 저장할 수 있는 탄소에는 한계가 있으며, 토양 관리만으로 화석연료 배출 감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토양을 관리하는 선택이 지역을 넘어 지구의 기후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토양 보호는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국가는 토양 조사와 복원, 기술 공유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인공위성과 디지털 토양지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기본적인 토양정보 조차 부족한 지역도 있다. 국제적인 연구협력과 교육,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만 책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각국의 지역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호주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호주의 토양을 보호하는 일이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반대로 호주에 산다는 이유로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토양 문제를 외면해도 될까? 우리는 서로 다른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지구에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의 토양을 보호하는 일은 국적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실천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고 토양오염을 예방하며, 식물을 심고 토양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관리할 수 있다. 지역의 환경정화와 퇴비화 활동에 참여하고 어린이들에게 토양의 역할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 있다. 이러한 활동 하나가 지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환경을 지키는 책임이 국경에 갇혀 있지 않다는 인식을 넓힐 수 있다.

나는 토양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흙을 단순히 발밑의 물질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의 토양이 소중하다면 호주의 토양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토양도 소중하다. 기후변화와 식량 불안정의 피해는 특히 대응할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토양 보호는 과학의 문제이자 공동의 책임이다.

국경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내가 태어난 나라의 땅만이 아니다. 지금 살아가는 곳과 지구 곳곳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토양 모두다. 토양의 중요성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장호준 박사

※필자 장호준은 시드니대학교에서 토양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동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양과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토양지도, 분광학, GIS,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 연구를 이어가며 국내외 다수의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토양 교육과 지역사회 봉사에도 깊은 애정을 쏟고 있으며, 다방면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와 봉사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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