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추수가 끝나고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부터 꽃샘추위가 막바지에 이르는 이듬해 이른 봄까지 나는 한 여인을 가슴에 품는다. 지금은 삶의 터전이 바뀌어 한국만큼 춥지 않은 시드니에 살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그 여인이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가온다. 이제는 먼 길 떠나고 없는 어머니는 겨울 내내 누룽지와 숭늉을 가까이 하며 즐기곤 하였다. 누룽지를 얻는 재미에 밥 짓는 일이 힘든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머니는 가끔씩 밥에 뼈가 들었다고 하면서 그때마다 새로 산 전기밥솥을 흘겨보며 못마땅해 하였다. 취사가 끝날 때쯤 되면 뜸이 제대로 들지 않았는데 자동보온으로 넘어가 버리는 매정한 기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마솥에 대한 향수와 함께 어떻게 하면 뜸이 푹 든 쭌득한 밥을 지을 수 있을까 늘 궁리하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삼중바닥 냄비에 밥을 지어 먹다가 큰맘 먹고 전기밥솥을 장만한 이후에 새로 생긴 어머니의 불만이었다. ‘톡’하는 소리와 함께 스위치가 튀면서 전원이 꺼진다는 것이 너무 야박한 듯해서 이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스위치에 종이를 말아 끼우고 튀어 오르지 못하게 고정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전기밥솥에 대한 불만이 기계기능을 개조시켜 가마솥처럼 뜸도 들이고 누룽지도 얻으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기발한 생각이었지만 그 결과가 의외의 사단이 되고 말았다.
집안 가득 밥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밥이 탈 리가 없는데 어디서 냄새가 나는 것일까. 부지런히 부엌으로 가 보았다. 조리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부엌 쪽에서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얼핏 보니 전기밥솥이 눈에 들어 왔으나 밥 타는 냄새의 근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번을 벼르다가 고가에 구입한 코끼리표 밥솥은 밥이 다 되면 자동으로 전원이 끊겨 한 번도 밥을 태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열기를 꽂아 놓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서 혹시나 하고 밥솥 뚜껑을 열자 화덕내가 코를 찌르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깜짝 놀라서 코드를 뽑아놓고 살펴보니 자동 스위치 사이에 돌돌 말아 끼워놓은 종이가 보였다. 그 종이 때문에 취사가 끝났는데도 보온 기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취사 때와 같은 고열이 계속 공급될 수밖에 없었다. 취사와 보온이 자동으로 설계된 밥솥을 강제로 가열시켰기 때문에 밥이 탄 것이다. 자동 스위치를 새로 갈아 끼워 수리할 때까지 한 동안 그 밥솥은 오로지 취사만 되는 먹통이 되어 사용하기가 불편하게 되었다. 밥을 안치면 누룽지까지 자동으로 생산되는 희한한 밥솥으로 변해버린 그 일 이후 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수동으로 시간을 잘 맞추면 원하는 만큼 뜸을 들일 수 있고 누룽지도 만들어지니 고장난 게 오히려 잘 됐다며 그냥 쓰자고 하였다. 하지만 며느리는 보온기능도 없이 밥만 태워먹는 밥솥을 하루빨리 고쳐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 다 명분을 내 세우며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유명세를 타던 코끼리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결국은 수리하여 옛날 코끼리로 돌아가 잘 사용하게 되었다.
어느 날 퇴근하여 보니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평소에는 재잘대며 나에게 매달리던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면서 멋쩍어 한다. 화를 삭이느라 그런지 아직도 기가 막히는 듯한 아내의 표정도 그렇고 노한 듯, 슬픈 듯한, 어쩌면 야속한 듯도 한 어머니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내용을 파악하고 보니 어머니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스위치를 고장 냈던 그 코끼리 속에 든 솥을 빼내어 가스 불에 올리고 잘 맞지 않는 냄비뚜껑을 덮어 뜸을 들이려 한 것이었다. 기겁을 하고 놀란 아내는 불을 끄고 코끼리를 구하느라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몰랐고 눌은밥에 대해 어머니의 애착이 그렇게 강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상기된 아내가 진정되자 당분간 자그마한 돌솥을 사서 밥을 지어 먹기로 모두 동의하여 결정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진 누룽지로 구수한 숭늉을 만들어 후식으로 드시며 흐뭇해하던 어머니가 먼 길 떠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지금도 그런 어머니가 생각나는 날이면 나는 숭늉을 만들어 먹으며 대물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어머니의 누룽지와 숭늉에 대한 애착이 역시 눌은밥을 후식으로 즐겨 찾던 아버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어머니와 누룽지와 숭늉이 유난히 그립고 아버지가 그립고 지나간 옛날이 모두 다 시리도록 그립다. 훗날 누군가 나를 그리워하며 구수한 숭늉을 닮은 진국이었다고 기억해 주기를 바래본다.
이주열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페이지를 시작하며…
우리네 삶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장르는 역시 산문입니다. 정치와 시사 문제를 짚어내는 특정 주제의 칼럼과 달리 산문에는 자유로운 주제와 이야기 형식으로 따뜻한 감정을 녹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부터 격주간으로 호주문학협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산문으로 소개합니다. 살아가면서 이들이 겪어냈던 이야기들, 많은 생각과 소중한 기억들은 독자 여러분에게 따뜻한 감정을 되살려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