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아기 40명
호주에서 여성과 원주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성매개감염병(STI)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진이 환자의 성별이나 배경, 기존의 위험군에 대한 선입견과 관계없이 성병 검사를 권고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선천성 매독으로 숨진 아기가 40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임신부에 대한 매독 검사를 보다 일관되게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사망한 아기 23명은 원주민이었다.
여성 매독 급증
호주 감염병 전문 연구기관인 커비연구소(Kirby Institute)가 발표한 국가 성매개감염병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에서는 매독 5,986건, 임질 42,393건, 클라미디아 94,184건이 보고됐다.
지난 10년 동안 매독과 임질 진단율은 각각 50% 이상 증가했다. 클라미디아는 기간 중 등락을 보였으며 지난해에는 소폭 감소했다. 전체적으로 매독과 임질은 남성에서 더 많이 발생했지만, 여성의 매독 진단율은 지난 10년 사이 167% 증가했다. 전문가들이 여성에 대한 성병 검사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비연구소의 역학자인 스카이 맥그리거(Skye McGregor)는 여성 매독 증가가 임신 중 감염이 태아에게 전달되는 선천성 매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선천성 매독은 임신부가 치료받지 않은 매독에 감염된 상태에서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균이 전달되거나 출산 과정에서 아기에게 감염되면서 발생한다. 지난 10년간 호주에서는 선천성 매독에 감염된 아기 114명이 태어났으며, 지난해에만 14건이 기록됐다. 같은 기간 선천성 매독으로 인한 영아 사망은 40명으로 집계됐다.

의료진의 인식 문제
전문가들은 성병 검사가 특정 위험군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주·뉴질랜드 HIV·바이러스성 간염·성건강의학회(Australasian Society for HIV, Viral Hepatitis and Sexual Health Medicine)의 부대표 제시카 마이클스(Jessica Michaels)는 의료진이 HIV나 성병 위험을 판단할 때 환자의 성적 지향이나 기존의 인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검사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모든 환자에게 감염 가능성을 고려하고 예방과 검사를 안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 현장에서의 낙인과 차별을 줄이는 것이 예방과 검사, 치료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주민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됐다.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커비연구소의 퍼스트 네이션스 현장검사 프로그램 지역사회 관계 담당자인 킴 게이츠(Kim Gates)는 의료진이 민감한 성 건강 관련 질문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 환자가 성 건강에 관한 질문을 받을 경우 수치심을 느낄 것이라는 의료진의 우려가 오히려 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의료진이 근무 지역이나 환자의 배경과 관계없이 성매개감염병과 주요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검사를 일상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원주민 감염률 높아
원주민 지역사회는 주요 성매개 감염병에서 비원주민 호주인보다 높은 진단율을 보이고 있다. 원주민의 클라미디아 진단율은 비원주민 호주인보다 2배 이상 높았으며, 임질은 4배 이상, 매독은 6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원주민 환자들이 편안하게 성 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호주왕립·뉴질랜드 산부인과학회(RANZCOG-Royal Australian and New Zealand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는 선천성 매독이 폐렴, 심한 콧물, 간·비장 비대, 림프절 부종, 빌리루빈 수치 상승, 담즙정체, 수막염, 발작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학회는 임신 기간 중 매독 검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한 감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클스는 선천성 매독 사례 하나하나가 비극적이라며 국가 차원의 산전검사 지침이 의료 현장에서 일관되게 시행돼 감염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이츠 역시 모든 임신부가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아동·모성보건 서비스를 통한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신 기간 중 여러 차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천성 매독 위험을 낮추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HIV 감소에도 사각지대
HIV 감염은 장기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일부 집단에서는 여전히 검사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호주에서 보고된 HIV 신규 진단은 753건으로, 10년 전보다 25% 감소했다. 대도시의 자원이 충분한 지역과 성노동자, 주사 약물 사용자를 중심으로 감염 감소가 두드러졌다.
예방적 항생제인 독시PEP(doxy-PEP)와 HIV 노출 전 예방요법인 PrEP의 이용 확대, 위해감소 전략 등이 이러한 감소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24년과 2025년 사이에는 HIV 신규 진단 건수가 정체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검사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가검사 키트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일부 대학에 검사 키트 자동판매기가 설치된 것도 검사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기대되고 있다. 원주민의 HIV 진단 건수는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증가세가 나타났다. 맥그리거 박사에 따르면 지난해 퍼스트 네이션스 환자의 HIV 진단은 37건으로,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다만 매년 발생 건수가 적기 때문에 연도별 수치 변동이 클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주민 지역사회와 협력해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예방 및 검사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늦은 HIV 진단도 문제
지난해 전체 HIV 신규 진단 가운데 33%는 ‘늦은 진단(late diagnosis)’으로 분류됐다. 이는 감염자가 진단을 받기 전 4년 이상 HIV와 함께 생활했을 가능성을 의미하며, 치료가 늦어질 경우 건강상 불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전파할 가능성도 커진다. 특히 HIV 진단을 받은 이성애 남성 가운데 절반 이상이 늦은 진단으로 분류됐다. 전체 사례 자체는 많지 않지만 이 같은 비율은 검사가 필요한 집단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되고 있다.
맥그리거 박사는 호주가 2030년까지 HIV 전파를 ‘제거(eliminating)’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호주 태생뿐 아니라 해외 출생자를 포함한 다양한 집단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검사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커비연구소의 전체 연례 보고서는 올해 후반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