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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 신사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 표동섭

10/08/2026
in 문화
[수필] 그 신사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 표동섭

2015년, 따뜻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할 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과 며느리가 사는 박스힐을 방문했던 어느 날, 며느리가 가까운 곳에 호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있다며 캠버웰을 추천해 주었다.

아내와 둘이서 찾아간 캠버웰은 다채로운 상점들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새롭고 이국적인 풍경에 빠져들었다. 어느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오늘 날씨가 참 좋으니까 시간 되시면 기차 타고 프랭크스톤 해변에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섰지만, 막상 기차역으로 향하자 걱정이 앞섰다. 기차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어느 승강장으로 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영어도 서툴렀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방인이었다. 용기를 내어 가까운 캠버웰역으로 찾아갔지만, 어디서 차표를 사야 하는지, 어느 쪽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몰라 아내와 나는 역 안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단정한 차림의 신사 한 분이 보여 조심스럽게 길을 물었다. 그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키(Myki) 카드 사용법부터 어느 승강장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그리고 리치먼드역에서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까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연신 “Thank you”를 되풀이하며 그분이 알려준 승강장으로 건너갔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 육교 위로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조금 전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던 바로 그 신사였다. 그분은 숨을 헐떡이며 우리에게 다가와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승강장을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리치먼드역에서는 2번이 아니라 9번 승강장에 도착하고, 거기서 4번 승강장으로 가셔야 프랭크스톤행 열차를 타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잘못 알려준 사실을 깨닫고, 다시 역 구내 육교를 건너 우리를 찾아온 것이었다. 조금 전 헤어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외국인 두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발걸음을 기꺼이 내어준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놀라움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그냥 지나쳐도 아무도 모를 텐데, 왜 다시 오셨을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라면 과연 다시 육교를 건너,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을 찾아가 잘못 알려준 길을 바로잡아 주었을까?’ 쉽게 “그랬을 것이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질문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나는 그날 단순히 프랭크스톤으로 가는 길만 찾은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정직함과 품격 있는 배려를 통해 ‘호주’라는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날 받은 배려와 감동은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고, 나 또한 이제 그 신사가 살아가던 이 호주 땅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프랭크스톤의 바다는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에 더욱 선명하게 남는 것은 바다가 아니다. 캠버웰역에서 자신의 작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던 이름 모를 한 신사의 모습이다.

그분은 내게 길만 알려준 것이 아니었다.정직이 무엇인지, 책임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친절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날 나는 프랭크스톤으로 가는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의 작은 행동 하나는 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 삶을 비추는 따뜻한 등불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날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프랭크스톤의 푸른 바다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실수마저 외면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표동섭 Melbourne,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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