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행동이 큰 영향
부모의 도박 행동과 태도가 청소년의 도박 참여와 도박 문제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모가 복권 번호를 함께 고르거나 대신 스포츠 도박을 해주는 등 일상적인 행동이 청소년에게 도박을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연구소(Australia Institute)에 따르면 매년 호주에서는 18세 미만 청소년 약 60만 명이 도박을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센트럴퀸즐랜드대학교(CQUniversity) 애플턴연구소(Appleton Institute)와 실험도박연구소(Experimental Gambling Research Laboratory) 연구진은 부모들의 인식과 행동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는 2025년 국제 정신건강 및 중독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and Addiction)과 2026년 도박연구저널(Journal of Gambling Studies)에 각각 게재됐다. 연구에서는 부모가 가정에서 도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자녀의 도박을 조장하는 행동을 하는 다양한 사례가 확인됐다.
연구 책임자인 캐시 디트먼(Cassy Dittman) 박사는 “부모가 자신의 도박에서 돈을 딴 경험을 자녀에게 이야기하거나 로또(Lotto) 또는 키노(Keno) 번호를 대신 골라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자녀를 위해 스포츠 경기나 경마에 대신 베팅을 해주거나 부모 자신의 온라인 도박 계정을 자녀가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사례도 확인됐다”며 “이 같은 행동은 생각보다 상당히 흔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 공개
디트먼 박사는 부모의 이러한 행동이 많을수록 청소년이 실제 도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위험 수준 또는 문제성 도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의 자녀 도박 조장 행동은 다른 모든 요인을 압도하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며 “그 영향력이 예상보다 훨씬 커 연구진도 놀랐다”고 말했다.
도박 일상화 우려
한편 2025년 청소년 도박 관련 연구를 발표한 호주연구소(Australia Institute)의 연구책임자 모건 해링턴(Morgan Harrington)은 부모들의 인식이 호주 사회 전반에 퍼진 ‘도박의 일상화(normalisation)’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해링턴은 “호주는 도박 광고가 지나치게 많고 온라인 도박으로 모든 사람의 주머니 속에 카지노가 들어온 셈”이라며 “이러한 환경이 도박을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도박으로 잃는 국민이라며 연간 도박 손실액이 사회적·정신건강 비용을 제외하고도 35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호주인이 원래 도박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주장이나 이것이 문화적 DNA라는 설명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느슨한 수준의 도박 규제가 이러한 문화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보다 강력한 규제가 있었다면 잃는 돈의 일부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대응 지적
해링턴은 연방정부가 도박 관련 국회 특별조사와 후속 보고서인 ‘조금 따고 훨씬 더 많이 잃는다(You win some, you lose more)’에서 제시된 31개 권고안을 아직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고안에는 도박 광고 전면 금지, 국가 차원의 도박 규제기관 설립, 각종 도박 유인행위의 즉각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러한 수준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호주의 도박 손실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모 인식 부족
디트먼 박사는 연구 결과 부모들은 미성년 자녀가 불법적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음에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의 약 30%는 지난 12개월 동안 자신의 청소년 자녀가 현금을 걸고 하는 도박을 했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참여한 도박에는 즉석복권(Scratchie)과 로또 구입, 포커머신(Poker Machines) 이용, 스포츠 베팅 등이 포함됐다. 또 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를 조사한 결과 도박은 학교폭력, 정신건강 문제, 약물 남용 등 11개 항목 가운데 가장 관심이 낮은 문제로 나타났다. 연구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도박하는 행위(co-gambling)도 매우 흔한 것으로 조사됐다.
디트먼은 “지난 12개월 동안 도박을 한 부모 가운데 약 3분의 2는 도박할 당시 청소년 자녀가 함께 있었다고 답했다”며 “이 같은 경험은 청소년들에게 도박이 사회적 활동이며 위험하지 않은 놀이처럼 인식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정부 예방 강화
이에 대해 호주 사회서비스부(Department of Social Services) 대변인은 연방정부가 각 주·준주 정부와 협력해 아동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새로운 온라인 베팅 계정을 만들 경우 실제 베팅을 하기 전에 반드시 본인 신원을 확인하도록 하는 의무 신원확인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디오게임 속 도박과 유사한 콘텐츠에 대한 청소년 노출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혁도 시행했다”고 밝혔다. 또 “젊은 남성과 청소년 등 위험군을 중심으로 온라인 도박의 위험성과 이용 가능한 지원 서비스를 알리는 새로운 공공 인식 개선 캠페인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