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다른 기준
호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여학생들이 치마 길이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교복 규정에 반발하며 잇따라 온라인 청원을 제기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가 여학생 치마 길이만 세세하게 규제하면서 남학생 반바지 길이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기준을 두지 않는 것은 성차별적인 이중잣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주의 학생들은 치마와 원피스 길이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학교 규칙에 문제를 제기하며, 여학생의 치마 길이가 남학생이나 교직원의 집중력을 방해하거나 여학생의 ‘품위(dignity)’를 지키기 위해 관리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퀸즐랜드주 브리즈번(Brisbane)의 켄모어 주립고등학교(Kenmore State High School)와 남호주주 애들레이드(Adelaide)의 펄트니 그래머 스쿨(Pulteney Grammar School)이다. 학생들은 청원을 통해 학교가 여학생만 대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치마 길이 규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는 여학생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법률 전문가와 성평등 단체들은 학교들이 점점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사우스웨일스
뉴사우스웨일스(NSW)에서는 치마 길이 논란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다양한 교복 관련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세인트 앤서니 오브 파두아 가톨릭 칼리지 오스트랄(St Anthony of Padua Catholic College Austral)에서는 한 학부모가 새 체육복이 너무 얇고 쉽게 손상된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을 시작했다.
여러 공립고 학생들은 학교 지급 바지나 치마보다 더 따뜻하고 품질이 좋으며 편안한 일반 바지 착용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을 진행했고 5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오크 플랫츠(Oak Flats)의 코퍼스 크리스티 가톨릭 고등학교(Corpus Christi Catholic High School) 학생들도 교복과 머리 모양, 장신구 규정을 지나치게 엄격하고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며 규정 완화를 요구했고 500명 이상이 서명했다.
타리(Taree)에서는 학생들이 귀걸이를 여러 개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청원에도 3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뉴사우스웨일스의 일부 학교 역시 여학생 치마나 원피스 길이는 규정하지만 남학생 반바지 길이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메이터 마리아(Mater Maria)의 복장 규정은 여학생 치마와 원피스 길이가 무릎 위 5cm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남학생 반바지 길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

퀸즐랜드
브리즈번의 켄모어 주립고등학교 학생들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그(Change.org)를 통해 학교가 치마를 접어 올린 여학생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일부 교사들이 “치마를 내려라. 남학생들이 집중을 못 한다(Roll your skirt down, the boys can’t focus)”고 말했으며, 한 학생은 교사가 “차라리 비키니를 입고 학교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학교가 최근 여학생 교복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교생 집회를 열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학생의 ‘품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전제를 내세웠다고 비판했다. 이 청원은 현재 689회 공유됐고 544명의 서명을 받았다.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들의 편안함을 우선시하고 여성 체형에 맞는 반바지를 대체 교복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원에는 “치마 길이를 ‘주의를 끈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깊은 불편함과 성적 대상화의 감정을 안겨준다. 이는 여학생의 몸이 성적 행동을 유발한다는 인식을 만들며 책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학생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또 다른 학생은 “학교는 우리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내 자존감은 충분하며 교사가 그것을 통제할 필요는 없다”고 적었다.
현재 학교의 개정 교복 규정에는 치마 길이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청원 참여 학생들은 실제 운영 방식이 여학생들에게만 불균형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여학생의 몸을 관리 대상처럼 취급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여학생은 치마 착용 방식까지 규제받는데 남학생은 원하는 방식으로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퀸즐랜드주 교육부(Queensland Department of Education)는 켄모어 주립고등학교 교복 규정상 학생들은 회색 맞춤형 반바지, 긴 바지 또는 긴 회색 치마 가운데 선택해 착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대변인은 “학교는 높은 학업 및 행동 기준을 요구하고 있으며 교복 규정을 준수하는 것도 그 기준의 일부”라며 “학부모나 학생이 복장 규정에 우려가 있다면 학교와 학부모·시민위원회(P&C-Parents and Citizens Association)를 통해 논의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퀸즐랜드의 다른 학교들도 여학생 치마와 원피스 길이를 규정하고 있지만 남학생 반바지 길이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칼룬드라 크리스천 칼리지(Caloundra Christian College)는 치마 길이가 무릎 윗부분보다 올라가서는 안 되며 허리 부분을 접어 올리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빅토리아
빅토리아주에서는 치마 길이뿐 아니라 다양한 교복 규정을 둘러싼 학생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메소디스트 레이디스 칼리지(Methodist Ladies’ College)의 여학생들은 모든 체형에 맞는 겨울용 교복 바지를 제공해 달라는 청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164명이 서명했다. 학생들은 “모든 학생을 위한 편안함과 포용”을 요구했다.
파운틴 게이트 세컨더리 칼리지(Fountain Gate Secondary College)에서는 293명이 검정색 또는 흰색 단색 신발만 허용하는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작은 로고 등 색상이 조금이라도 섞인 신발을 신으면 벌을 받을 수 있다며 불필요하게 엄격한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멜번 남동부의 가톨릭 여학교 킬브레다 칼리지(Kilbreda College)에서는 615명이 기존 체육복 바지를 다시 도입해 달라는 청원에 서명했다. 학생들은 새 체육복 바지가 불편하고 움직임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손버리 고등학교(Thornbury High School)에서는 교복 착용을 선택사항으로 바꾸자는 청원이 87명의 서명을 받았다. 청원인은 체육복을 원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입을 수 있도록 하면 학생 복지와 학업 성취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밸러랫 고등학교(Ballarat High School) 학생들은 염색과 피어싱을 허용해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멜번 걸스 칼리지(Melbourne Girls’ College)의 후드티 교복 추가, 돈베일 크리스천 칼리지(Donvale Christian College)의 플리스 재킷 허용, 오버뉴턴 칼리지(Overnewton College)의 목도리 착용 허용 등을 요구하는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남호주
애들레이드의 명문 사립학교 펄트니 그래머 스쿨은 1999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남학생 학교였다.
이 학교 학생들은 “적절한 치마 길이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는 청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두 달 동안 43명의 서명을 받았다. 학생들은 “학교의 오래된 치마 길이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에는 “학생으로서 치마 길이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정은 자의적이고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학생 개성과 편안함이 존중돼야 하며 어떤 길이가 적절한지는 학생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어 “극도로 짧은 치마를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길이를 선택할 자율성이 필요하다”며 “문제는 치마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복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문화”라고 주장했다.
학교의 2026년 교복 규정은 여학생 치마와 원피스 길이를 무릎 중앙에서 위아래 3cm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남학생 반바지 길이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 학교 측은 온라인 청원을 알고 있지만 실제 재학생이 작성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교 대변인은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교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복 개선 의견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교복 규정은 유지되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건설적이고 존중하는 의견 제시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밝혔다.
남호주의 다른 학교들도 여학생 치마 길이를 규정하고 있다. 템플 크리스천 칼리지(Temple Christian College)는 치마가 반드시 무릎을 덮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스쿨(Westminster School)은 원피스와 치마, 큘로트(culottes)가 무릎 위로 올라가서는 안 되며 이상적으로는 무릎 아래 길이를 유지해야 하고 특히 저학년 학생은 종아리 중간 정도 길이를 권장하고 있다.

전문가 의견
법무법인 모레이 앤드 애그뉴(Moray & Agnew)의 파트너 변호사 닉 더걸(Nick Duggal)은 학생들이 학교 교복 문제를 포함한 개인 권리 이슈에 대해 점점 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고 인식되는 경우 학교들이 큰 부담을 안게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닉 더걸은 “학교는 남녀 학생을 다르게 대우한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차별금지 의무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이 같은 문제에서는 충분히 검토된 보편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 빅토리아(Gender Equity Victoria)의 최고경영자(CEO) 미카엘라 드리버그(Micaela Drieberg)는 “2026년에도 여전히 여학생 치마 길이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기보다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여학생 치마 길이는 큰 관심을 받지만 남학생 반바지 길이는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은 학교 정책이 여전히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교육 컨설턴트 폴 오셔너시(Paul O’Shannassy)는 “좋은 학교는 청원처럼 다소 대립적인 방식으로 제기된 의견이라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가 청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지만 학교의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경우 실제 변화를 추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체인지닷오그 호주(Change.org Australia)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페이지 멀홀랜드(Paige Mulholland)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수백 건의 청원을 시작했으며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돕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다만 체인지닷오그를 이용하는 16세 미만 학생은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