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첫 진단센터 출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병리학적 변화를 증상이 나타나기 최대 20년 전에 혈액검사로 확인할 수 있는 호주 최초의 진단 시스템이 시드니(Sydney)에 도입된다. 검체 분석 결과는 빠르면 18분 만에 확인할 수 있으며, 향후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기술은 연방 보건·고령화부 장관 마크 버틀러(Mark Butler)가 시드니에서 공식 출범을 발표하는 아시아·태평양 알츠하이머병 진단 우수센터(Asia-Pacific Centre of Excellence for Alzheimer’s Disease Diagnosis)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용된다.
이 센터는 신경과학연구호주(NeuRA-Neuroscience Research Australia)와 로슈 진단 호주(Roche Diagnostics Australia)가 공동 설립했으며, 초기에는 임상시험을 중심으로 혈액검사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진단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뉴사우스웨일스(NSW)를 치매 진단과 임상시험, 연구의 국가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센터는 혈액검사와 뇌척수액(CSF) 검사를 함께 활용해 기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진단 체계를 마련하고, 새로운 바이오마커와 진단 기술 평가도 병행한다. 또한 신경과학연구호주(NeuRA), 로슈(Roche), 일라이 릴리 호주(Eli Lilly Australia)가 새롭게 구축한 협력 체계의 핵심 기관으로서 알츠하이머병 진단과 치료 과정을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역할도 맡게 된다.

혈액검사 원리와 특징
새 혈액검사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amyloid)와 타우(tau) 단백질의 변화를 혈액 속에서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들 단백질은 실제 증상이 나타나기 수십 년 전부터 뇌에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이러한 단백질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요추천자를 통한 뇌척수액(CSF) 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PET 검사는 비용이 매우 비싸고 대도시 외 지역에서는 이용이 쉽지 않으며, 요추천자는 침습적 검사라는 부담이 있다.
새 혈액검사는 이 같은 한계를 크게 줄인다. 자동화된 검사 장비를 이용해 수주가 걸리던 분석 과정을 수분 내 완료할 수 있으며, 검사 결과는 빠르면 18분 안에 확인할 수 있다.
로슈(Roche)는 알츠하이머 혈액검사 가운데 가장 먼저 호주 식품의약품안전청(TGA-Therapeutic Goods Administration)의 의료기기 등록 승인을 받은 기업 중 하나다. 센터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pTau181, pTau217, ApoE4 검사를 실시한다.
pTau181과 pTau217은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알츠하이머병의 병리학적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배제하는 데 활용된다. ApoE4 검사는 향후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가장 크게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적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다.

정확도 향상
센터를 총괄하는 신경과 전문의 엠마 데버니(Emma Devenney) 부교수는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가 환자들에게 기존보다 훨씬 빠른 확신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을 혈액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훨씬 빠른 진단이 가능해졌고, 이는 환자들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PET 검사나 요추천자를 통한 뇌척수액 검사만이 이러한 단백질의 존재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두 검사 모두 비용이 많이 들고 대도시 밖에서는 접근성이 낮으며 환자에게 부담도 크다”고 설명했다.
데버니 부교수는 연구 결과 혈액검사가 PET 검사와 뇌척수액 검사(CSF 검사)와 유사한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러한 단백질 변화가 증상이 나타나기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번 혈액검사를 통해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면 알츠하이머병 예방 전략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계적 적용
다만 전문가들은 검사 확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혈액검사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단백질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언제 증상이 시작될지 또는 실제로 발병할지를 예측하는 검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데버니 부교수는 “이 검사는 알츠하이머병 자체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비정상 단백질 변화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60세에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더라도 실제 증상은 수십 년 뒤에 나타날 수도 있고, 끝내 발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이 검사가 지역사회에 도입되는 과정에서는 매우 책임감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이미 기억력 저하 등 인지기능 이상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의가 필요성을 판단한 경우에만 검사가 시행된다. 환자는 우선 GP를 찾아 상담한 뒤 전문의에게 의뢰받아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센터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앞으로 수개월 안에 전문 의료진이 의뢰한 검사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연말까지는 전국 전문의를 통한 검사 의뢰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데버니 부교수는 장기적으로 메디케어(Medicare)를 통해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언젠가는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듯이 알츠하이머 위험도도 혈액검사로 확인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때쯤에는 예방 치료법도 함께 개발돼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환자 사례
조기 진단이 환자와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은 증상이 시작된 뒤 진단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엠마 데버니(Emma Devenney) 부교수는 “현재 치매 진단은 PET 검사나 요추천자를 시행하지 않는 이상 정확도가 제한적이며, 환자가 처음 증상을 인지한 시점부터 치매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3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이른 시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으면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환자와 가족이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다”며 “질환이 진행되기 전에 향후 치료와 돌봄 계획을 세울 시간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질병 진행을 일부 늦추는 치료제는 대부분 초기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에서는 진단이 너무 늦어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뉴사우스웨일스(NSW) 포트 맥쿼리(Port Macquarie)에 거주하는 넬 호(Hawe) 씨의 경험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48세 무렵부터 기억력과 인지기능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여러 의료진은 이를 스트레스나 중년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변화 정도로 판단했다. 결국 그는 첫 증상이 나타난 지 4년이 지나서야 조발성 알츠하이머병(Young Onset Alzheimer’s disease) 진단을 받았다.
호 씨는 “만약 혈액검사가 있었다면 훨씬 빨리 약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예방 전략에 더 일찍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4년 먼저 치료를 시작했다면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닷컴(news.com.au)과 디 오스트레일리언(The Australian)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싱크 어게인(Think Again)’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호 씨는 “가장 큰 소원은 완치 치료제가 개발되는 것이지만,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도 더 빨리 진단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환자와 가족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환자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진단을 기다리는 과정”이라며 “간단한 혈액검사로 그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상시험 후 전국 확대
현재 혈액검사는 신경과학연구호주(NeuRA-Neuroscience Research Australia)가 진행하는 임상시험에서 알츠하이머병의 병리학적 변화를 확인해야 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우선 활용된다.
센터는 승인된 검사뿐 아니라 새로운 바이오마커와 차세대 진단기술도 함께 평가해 최신 연구 성과를 의료 현장에 보다 빠르게 적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문가들은 향후 연구가 축적되면 현재보다 훨씬 정밀하게 발병 위험과 증상 발현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검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혈액검사가 콜레스테롤 검사처럼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예방 치료법도 함께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치매 환자 부담 급증
이번 센터 출범은 호주가 빠르게 증가하는 치매 환자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시점에 이뤄졌다. 현재 치매는 호주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환자 수는 44만6,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2065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치매로 인한 연간 경제적 부담도 이미 47억 달러를 넘어 의료체계와 가족, 지역사회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 환자의 약 60-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형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최대 75%가 아직 진단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가 치료를 시작할 기회를 놓치거나 질병 진행에 대비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예방 중심 진단체계
전문가들은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조기 진단 체계 구축이 더욱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20%가 거주하고 있지만, 2050년에는 전 세계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출범한 아시아·태평양 알츠하이머병 진단 우수센터(Asia-Pacific Centre of Excellence for Alzheimer’s Disease Diagnosis)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연구 거점이 될 전망이다. 센터는 승인된 검사뿐 아니라 새로운 바이오마커와 새로운 진단 도구도 평가해 향후 연구 성과를 환자 진료에 보다 신속하게 적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데버니 부교수는 “현재는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중심으로 검사가 시행되지만, 앞으로 연구가 계속되면 알츠하이머병도 콜레스테롤 검사처럼 일상적인 건강검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언젠가는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듯 혈액검사를 받는 시대가 오고, 그때쯤에는 예방 치료법도 개발돼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