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논란
호주의 대표 토마토 제품 브랜드와 대형 수퍼마켓들이 판매하는 일부 토마토 가공식품이 표시된 원산지와 실제 원산지가 다르다는 포렌식(Forensic) 검사 결과가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호주 공영방송 A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포 코너스(Four Corners)가 독립 과학기관을 통해 실시한 포렌식 검사 결과, 호주산 또는 이탈리아산으로 표시된 다수의 토마토 페이스트와 파사타(passata)가 실제로는 중국산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가운데 약 절반은 국제사회에서 위구르(Uyghur)족 강제노동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중국 신장(Xinjiang)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 원산지 표시가 문제로 지적된 제품에는 호주의 대표 토마토 제품 브랜드 L사를 비롯해 콜스(Coles), 알디(Aldi)의 자체 브랜드 제품도 포함됐다. 미국 식품기업 심플롯(Simplot)이 소유한 L사는 제품 포장에 호주 농장에서 생산된 토마토를 사용한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이번 검사에서는 통조림과 캔, 병 제품을 포함한 토마토 페이스트 대부분이 표시된 원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콜스의 이탈리아산 토마토 페이스트와 알디의 자체 브랜드 R사 토마토 페이스트 역시 검사에서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결과는 포 코너스(Four Corners)가 약 8개월 동안 진행한 ‘소비자가 구입하는 식품의 실제 원산지’에 대한 대규모 탐사보도의 일부다.

포렌식 검사
원산지 검사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영국 런던경찰청(Scotland Yard),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 호주연방경찰(Australian Federal Police) 등과 협력한 경험이 있는 포렌식 전문 연구기관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이 수행했다.
연구진은 토마토 페이스트와 파사타(토마토 퓌레), 다진 토마토 제품 등 39개 브랜드의 가공 토마토 제품 221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제품의 22%는 표시된 원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정됐으며, 추가 확인이 필요한 제품도 6%에 달했다. 원산지 판정을 통과하지 못한 제품은 모두 중국산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53%는 중국 신장(Xinjiang)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적됐으며, 나머지 제품 역시 중국산인 것은 확인됐지만 정확한 생산 지역까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신장산 의혹
중국 신장(Xinjiang)은 세계적인 토마토 생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오랫동안 위구르(Uyghur)족 강제노동 의혹이 제기돼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아온 지역이다.
미국은 지난 2021년 강제노동 우려를 이유로 신장산 토마토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번 검사 결과는 호주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별도의 법률을 시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는 지난주 호주가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며 호주산 제품에 1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정부는 해당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이번 관세 조치를 “전혀 정당화될 수 없는 조치(completely unjustified)”라고 반박했다.

제품별 결과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은 호주 여러 주의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토마토 페이스트 제품 33종에 대해 원산지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33개 제품 가운데 27개, 약 80%가 표시된 원산지와 실제 원산지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토마토 페이스트 가운데 약 3분의 2는 중국 신장(Xinjiang)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분석됐다.
콜스(Coles)의 자체 브랜드 토마토 페이스트도 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7개 제품 가운데 6개가 신장 지역산으로 추적됐다. 콜스에서 판매되는 파사타 역시 검사에서 문제가 확인됐다. 제품에는 이탈리아산으로 표시돼 있었지만, 포렌식 분석 결과 중국에서 재배된 토마토의 화학적 특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원산지 검사를 통과한 브랜드도 있었다. 무티(Mutti), 에스피씨(SPC), 울워스(Woolworths), 프로비도레 디탈리아(Providore D’Italia), 안날리사(Annalisa) 제품은 표시된 원산지와 실제 원산지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L사와 콜스의 다진 토마토(Diced Tomato)와 파사타 제품도 원산지 검사를 통과했다.
과학적 검사 방식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은 식품과 목재, 면화 등의 원산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포렌식 기술을 수년간 개발해 온 연구기관이다. 연구진은 토양과 물, 기후 등 재배 환경이 식품에 남기는 고유한 화학적 흔적을 분석해 원산지를 판별한다.
소스 서튼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포렌식 식품과학자인 캐머런 스캐딩(Cameron Scadding)은 “우리는 사실상 주기율표에 있는 거의 모든 원소의 미량 성분을 측정해 고유한 화학적 지문(fingerprint)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Carbon), 수소(Hydrogen), 산소(Oxygen) 등 안정동위원소(Stable Isotope)의 비율도 함께 측정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확보한 화학적 지문을 이미 원산지가 확인된 기준 시료(reference sample)와 비교해 생산지를 판별한다.
스캐딩은 “포렌식 과학에서는 절대적인 확신을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됐을 때만 원산지를 판정한다”고 설명했다. 소스 서튼은 이번 검사에서 원산지 표시와 일치하지 않은 토마토 제품이 중국산일 가능성을 98% 이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식품 공급망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어느 단계에서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제조사, 유통업체 반박
L사의 모회사인 심플롯(Simplot)은 인터뷰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성명을 통해 이번 검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플롯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와 거래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 측은 “심플롯은 공급망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이력 추적 시스템과 공급업체 검증, 내부 및 외부의 독립적인 감사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문제가 된 제품은 호주 농장에서 생산된 토마토를 사용했다는 공급망 관련 문서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제품에 대해 포렌식 원산지 검사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콜스(Coles)와 알디(Aldi)도 검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콜스는 자체 브랜드 토마토 페이스트가 중국산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식품의 진위성과 원산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체 브랜드 토마토 페이스트의 원산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독립적인 검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디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공급업체들로부터 제품이 표시된 원산지에서 생산됐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로소 가르가노(Rosso Gargano)의 수입업체 역시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수입업체는 제품의 생산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상세한 이력 관리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며 검사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비자 우려
이번 조사 결과는 단순한 원산지 표시 오류를 넘어 소비자와 국내 농가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소비자들은 호주산이라고 믿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산 제품을 구매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호주 토마토 농가들은 호주산으로 둔갑한 저렴한 수입산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의 분석 결과 중국 신장(Xinjiang)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제품의 경우 강제노동 의혹과 연결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위구르 활동가 증언
위구르(Uyghur) 공동체 활동가인 니롤라 엘리마(Nyrola Elima)는 2011년 신장(Xinjiang)을 떠난 뒤 현재 스웨덴에 거주하며 글로벌 공급망 내 강제노동 실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중국 당국에 의해 수감된 이후 강제노동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엘리마는 호주산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실제로는 중국산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또 호주가 미국처럼 신장산 토마토 제품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가 국가 선전을 통해 강제노동을 위구르족에게 제공되는 ‘기회’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인권 침해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사례로 중국 민펑현(Minfeng County) 정부가 제작한 홍보 영상을 소개했다. 이 영상에는 중국 신장 남부의 허톈 위도 38.8 농업개발회사(Hetian Latitude 38.8 Agricultural Development Company) 토마토 가공공장이 등장한다. 이 지역 주민의 95% 이상은 위구르족이다.
영상에서는 위구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칭찬하는 모습이 담겨 있으며, 회사는 자사의 토마토 페이스트가 호주를 포함한 전 세계 60개국으로 수출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엘리마는 이 회사가 사실상 신장생산건설병단(XPCC-Xinjiang Production and Construction Corps)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장생산건설병단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준군사 조직으로, 신장 지역 농업과 산업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마는 “이 회사는 호주를 포함한 60개국에 토마토를 수출한다고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하지만 위구르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장에 동원되는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자유롭게 공장을 떠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력 대응 촉구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 전 위원장인 앨런 펠스(Allan Fels) 교수는 이번 조사 결과가 매우 심각하다며 식품 사기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펠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기관들이 식품 사기 의혹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현행 법률을 활용해 기업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이번 실험실 검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는 L사를 상대로 법원에서 징벌적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의 캐머런 스캐딩(Cameron Scadding) 최고기술책임자는 소비자들이 이번 문제가 토마토 제품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슈퍼마켓에는 수천 개의 제품이 진열돼 있으며, 거의 모든 진열대에서 원산지가 허위로 표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만의 문제가 아니라 식품 공급망 전반에서 이 같은 허위 표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화학적 지문 분석
이번 조사에서 소스 서튼(Source Certain)은 39개 브랜드의 토마토 제품 221종을 대상으로 총 900개 이상의 시료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식품의 원산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량원소분석(TEA-Trace Element Analysis)과 안정동위원소비 분석(SIRA-Stable Isotope Ratio Analysis)이라는 과학적 분석기법을 활용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는 토양과 물, 주변 지질환경 등으로부터 미량의 원소와 안정동위원소를 흡수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성분을 측정해 해당 식품만의 고유한 화학적 ‘지문(Fingerprint)’을 구축했다.
이 화학적 지문은 작물이 자란 자연환경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를 지역별로 확보된 기준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실제 생산지를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번 검사는 연구진이 어떤 제품을 분석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 방식으로 진행됐다. 즉,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각 시료가 어느 브랜드, 어떤 제품에서 채취된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원산지를 판별했다. 전체 시료 가운데 22%는 표시된 원산지와 실제 원산지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6%는 표시된 원산지와는 분명히 일치하지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한 생산 지역을 특정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추가 검사가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됐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표시된 제품들도 함께 검사했다. 그 결과 중국산으로 표시된 모든 제품은 실제로도 중국산 토마토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돼 원산지 표시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