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 요양시설 운영업체가 입소자의 기본적인 생활 권리를 축소한다는 비판 속에 기본 식단에서 따뜻한 아침식사를 제외하고 추가 요금을 내야 제공하는 ‘2단계 서비스’ 제도를 시험 도입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시설에서는 방 안 무료 지상파 TV까지 유료화되는 등 고령 입소자들의 기본 생활이 비용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단계 메뉴
호주 최대 규모의 주거형 노인요양시설 운영업체인 오팔 헬스케어가 기본 식단에서 따뜻한 아침식사와 수제 케이크, 저녁 디저트를 ‘프리미엄’ 요금을 내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오팔 헬스케어는 전국에 130개 이상의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호주 최대 요양시설 제공업체다. 현재 이 회사가 운영하는 최소 4개 시설에서 새로운 2단계 메뉴 체계를 시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기본 서비스를 줄이고, 추가 비용을 지불한 입소자에게 더 다양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TV도 유료
또 다른 비용 부과 방식으로, 신규 입소자들은 방 안에서 지상파 TV를 시청하기 위해서도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기존에 벽에 설치돼 있던 TV가 아예 아예 철거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프리미엄 식단
유출된 내부 문서에 따르면 ‘기본’ 요금제 입소자는 사실상 간단한 아침식사만 제공받는 수준으로 제한된다. 여기에는 농축액으로 만든 주스와 함께 빵이나 시리얼 등 단순한 식단이 포함된다.
반면 ‘HELF(Higher Everyday Living Fees)’ 패키지에 가입한 입소자는 하루 $28의 추가 요금을 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요금제를 이용하면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 버섯, 토마토, 크레페 등 세 가지 따뜻한 아침 메뉴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점심 식사에서도 기본 요금제 입소자에게는 따뜻한 메뉴가 한 가지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또 저녁 식사 후 제공되던 수제 디저트는 과일이나 커스터드로 대체됐다.
아침식사·간식 차별
아침·오후 티타임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기본 요금제 입소자에게는 아노츠(Arnott’s) 비스킷과 인터내셔널 로스트(International Roast) 커피가 제공된다. 반면 추가 요금을 내는 입소자들은 수셰프가 준비한 수제 케이크와 머핀을 제공받고 네스카페(Nescafe)나 모코나(Moccona) 커피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다.

직원 대응과 입소자 불만
이러한 HELF 제도 도입은 새 노인요양법에 따라 법적으로 허용된 것이긴 하지만, 오팔 헬스케어 경영진도 입소자들의 반발을 예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The Daily Telegraph의 보도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직원들에게 입소자의 불만에 대응하는 대화 지침과 상황을 전환하는 방법까지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특히 인지 기능 문제가 있는 입소자들이 이를 ‘편애’로 받아들여 화를 낼 경우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부 지침
제도 시행을 앞두고 오팔 헬스케어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는 “누가 어떤 서비스를 받는지, 누가 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최소화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또 입소자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비용 문제나 선택권 부족에 대한 논의를 가능한 한 제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메모에는 “그것이 때로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불만 입소자 대응
유출된 문서에는 한 식사 자리에서 발생한 갈등 상황을 “원만하게 처리했다”고 직원에게 칭찬한 뒤, 불만을 제기하는 입소자에게는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도록 지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직원들에게 제공된 대화 지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포함돼 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해보세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것을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돌봄 시간 감소
한 직원은 행정 서류 처리와 서로 다른 주문 관리, 그리고 입소자들의 불만 대응까지 겹치면서 실제 입소자에게 제공되는 직접 돌봄 시간(care minutes)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현재 상황이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집에서 지내는 것을 권하고 싶다”며 “내 생각에 요양시설은 매우 냉혹한 산업이며 가능한 한 돈벌이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노조도 비판
NSW 간호사·조산사협회(NSWNMA-NSW Nurses and Midwives’ Association) 부사무총장 카트리나 보(Katrina Bough)는 지상파 TV 유료화는 비용을 낼 수 없는 입소자들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양가 있는 음식 접근성을 줄이고 식사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은 “가장 취약한 공동체 구성원에게 불평등하고 분열적인 시스템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카트리나 보(Katrina Bough)는 최근 분기 자료에서도 오팔 헬스케어가 법적으로 요구되는 최소 돌봄 시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우려
노인요양 정책 전문가 캐시 이거(Kathy Eagar) 교수는 호주 노인들이 생애 마지막 시기를 두 계층 체제 속에서 보내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은 1등 서비스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2등 서비스를 받는 시스템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원 증가와 불평등
노인권익옹호네트워크(OPAN-Older Persons Advocacy Network) 최고경영자 크레이그 기어(Craig Gear)는 이전에는 추가 비용 없이 제공되던 식사에 요금이 부과되면서 관련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격차는 노인들 사이에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경험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일상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조차 개인의 지불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
이에 대해 오팔 헬스케어 대변인은 HELF 제도가 입소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학교, 주거, 의료, 직업 선택 등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서로 다른 선호와 재정 상황,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시설 역시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