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변화
호주사회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이름 붙이지 못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부모들이 점점 더 많이 호소하는 ‘성별 실망(gender disappointment)’이 그것이다. 이는 태아의 성별이 기대와 다를 때 느끼는 불안과 고통을 뜻한다. 심리상담 현장에서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예비 부모들이 늘고 있으며, 일부는 매우 높은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보고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의 이러한 임상적 관찰은 연구 결과와 언론 보도와도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강했던 ‘아들 선호’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시험관아기 시술(IVF)과 입양 과정에서 오히려 여자아이 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딸 선호 문제
NSW주에서 제한적으로 IVF 성별 선택이 허용됐던 짧은 기간 동안, 여성 건강 멜번(Women’s Health Melbourne) 소장이자 왕립산부인과학회(RANZCOG-Royal Australian and New Zealand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 이사회 인증 생식내분비·불임 전문의인 레일리 루(Raeli Lew) 박사는 “호주 전체적으로 볼 때 실제로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이 선택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장기적인 변화의 일부다.
일본(Japan) 보건복지성 산하 인구문제연구소(Institute of Population Problems,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가 실시한 출산 선호 조사에 따르면, 1982년에는 외동을 원한 기혼 부부 중 48.5%가 딸을 선호했으나, 2002년에는 그 비율이 72.7%로 급증했다.
아들 선호가 강했던 한국(South Korea-Republic of Korea) 역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1년 발표된 연구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강한 아들 선호’에서 ‘딸 선호’로 이동한 나라가 됐으며, 특히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 도시 거주자인 응답자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미국(United States)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루터교 입양 네트워크(Lutheran Adoption Network) 전 책임자였던 수전 마이어스(Susan Myers)는 예비 입양 부모의 약 80%가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를 선택하려 한다고 전한 바 있다.

태아부터 차별
연구에 따르면 부모는 태아의 성별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이미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부모들은 자궁 속 남자아이는 활동적이고, 여자아이는 변덕스럽다고 묘사한다.
루빈 외(Rubin et al., 1974)의 고전적 연구에서는 신생아의 체중, 신장, 아프가 점수(Apgar score)에 실제 성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딸을 ‘부드럽고, 섬세하며, 서투르고, 약하다’고 평가한 반면 아들은 ‘단단하고, 크며, 조정력이 좋고, 강하다’고 평가했다.
번햄과 해리스(Burnham & Harriss, 1992)의 연구에서도 임신부들은 ‘남자아이’를 더 강하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존재로, ‘여자아이’를 더 민감한 존재로 인식했다. 영아기와 유아기 동안 부모는 여자아이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것이 초기 언어 발달에서 나타나는 성차의 한 원인이라고 본다.
유년기 분화
유아기를 지나 어린 시기에 접어들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여자아이들은 친절함과 타인의 요구에 맞추는 태도로 유도된다. 이들은 불안을 안으로 삼키며 순응, 완벽주의,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주요 대처 전략으로 배운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강인함과 독립성을 강조받고, 불안을 밖으로 밀어내는 법을 배운다. 그 결과 남자아이의 고통은 과잉행동, 통제 욕구, 공격성으로 표현된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 있는 욕구는 동일하다.
청소년 격차
청소년기에 이르면 성별 간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자기비판이 급증하고,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위험 감수 행동, 정서적 차단, 관계 단절이 증가한다.


성인기의 대가
성인이 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자살로 사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호주는 약 10일마다 한 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되는 심각한 성별 폭력 위기에 놓여 있다.
언론인 제스 힐(Jess Hill)은 이러한 폭력이 단순한 ‘분노 조절 문제’가 아니라 통제, 두려움, 취약성을 견디지 못하는 능력의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호주는 피해가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데 수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가 시작되는 지점, 즉 초기 관계 형성, 정서 발달, 성별 사회화에 대한 예방 투자에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자원만 투입하고 있다.
양육의 과학
수십 년에 걸친 신경과학과 애착 연구는 아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연결’을 필요로 하도록 설계돼 있음을 보여준다. 양육은 방임이나 사치가 아니라 뇌 발달의 연료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양육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다. 출생 전부터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보다 위로를 덜 받고, 감정 언어를 덜 접하며, 취약해질 공간을 덜 허락받는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기대치는 발달 속도를 앞지른다. 우리는 행동 아래 숨은 욕구에 반응하기보다 행동 자체를 통제하려 한다. 통제가 연결을 대체하는 순간, 아이 내부에는 대가가 쌓인다. 여자아이들은 억누르고 순응하는 법을, 남자아이들은 통제하거나 반항하거나 스스로를 차단하는 법을 배운다.
하나의 뿌리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자살 문제, 가정폭력을 우리는 별개의 위기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동과 가족을 직접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눈에 이 문제들은 하나의 공통된 뿌리로 이어진다. 그것은 아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과, 특히 남자아이들이 실제로 허용받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양육 격차(nurture gap)’라고 부른다.
남자아이들은 양육을 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덜 받을 뿐이다.

남아의 감정
대중적 믿음과 달리, 감정 표현이나 사회적 능력, 기질에서 남녀 간 생물학적 차이는 비교적 작고, 겹치는 부분이 매우 크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남자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덜 갖는다. “강해져라”는 훈계는 더 많이 받고, 울거나 힘들어하거나 위로를 구할 공간은 더 적다. 호주의 저명한 작가 스티브 비덜프(Steve Biddulph)는 남자아이들이 부드러움과 연결, 인내심 있는 정서 교육 속에서 가장 잘 성장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해 왔다. 그러나 문화는 바로 그 요소들을 제한한다.
심리학자 니오비 웨이(Niobe Way)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남자아이들은 깊은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를 강하게 갈망한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이르기 전 이미 많은 아이들이 취약함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배운다. 이 메시지는 또래 집단, 미디어, 때로는 가정에서도 강화된다.
왜곡된 남성성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절을 가르치고 있다.
남성성 연구자 마이클 키멀(Michael Kimmel)과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는 남자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둔감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로부터 멀어지도록 ‘훈련’된다고 말한다. 부드러움이 수치가 되고, 힘이 유일한 허용된 표현이 될 때, 남자아이들은 두려움을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지속적인 양육과 정서적 지지가 결핍될 경우, 남자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성인이 될 위험이 있다.
압도당한 감정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람, 자신의 욕구가 인정받지 못했기에 타인의 욕구를 무시하는 사람, 관계가 안전하다는 것을 배우지 못해 통제에 의존하는 사람, 분노만을 허용된 감정으로 여기는 사람, 취약함이 위험처럼 느껴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힐(Jess Hill)의 연구는 이러한 궤적이 방치될 경우, 남자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의존성을 다루는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강압적 통제와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꿀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불가피하지 않다. 이는 사회화의 결과이며, 사회화된 것은 바꿀 수 있다. 양육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한계를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경계, 구조, 책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아이들이 덜 위로받고, 덜 부드럽게 대우받고, 덜 정서적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신화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 문해력, 고통 감내력, 공감, 관계 회복 능력을 의도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평생의 정신건강과 관계를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사회의 책임
이 책임은 가정에만 맡길 수 없다. 부모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유대 형성을 지원하는 부모휴가 제도, 관계적 안전과 연결을 아동 발달·회복탄력성·학습의 필수 전제로 삼는 유아교육 및 학교 현장의 양육 중심 정책과 실천, 발달과학에 기반한 접근 가능한 부모 교육, 위기 이전에 개입하는 초기 지원 서비스, 그리고 행동 관리가 아닌 양육 중심 대응을 모든 예방·개입의 전면에 두는 사회 전반의 통합적 대응이 요구된다.
하나의 이야기
호주의 여자아이 선호 문제, 남성 정신건강 위기, 성별 폭력 문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아이들을 얼마나 다르게 양육해 왔는지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다.
양육 격차는 부모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문화적 사각지대이며, 우리는 이제 이를 바로잡을 과학적 근거와 도덕적 책임을 모두 갖고 있다.
남자아이들이 안정적인 연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허용, 지배가 아닌 건강한 힘을 보여주는 어른들과 함께 성장할 때, 그들은 통제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남성, 수치심 없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남성, 폭력 없이 갈등을 다룰 수 있는 남성이 된다. 그 미래는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사회의 틈 사이로 떨어지지 않도록 이 격차를 닫아야 한다. 위기 대응에만 막대한 자원을 쓰는 대신, 문제의 근원인 유아기 양육과 연결에 동등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넘쳐흐르는 사회적 욕조에서 물만 퍼내며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 꼴이 된다. 통제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 연결은 다시 하나로 묶을 힘을 갖는다. 다만 그 시작을 더 이르게 보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이름 붙이며, 출생 전부터 시작되는 격차를 닫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글은 심리학자 레이철 샘슨(Rachel Samson)과 필 버드(Phil Bird)가 공동 집필했다. 샘슨 박사는 호주심리학자협회(Australian Association of Psychologists) 소장이다.
※ 이 기사는 The Australian에 게재된 레이철 샘슨(Rachel Samson)과 필 버드(Phil Bird)의 ‘How ‘gender disappointment’ is feeding bias against boys’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