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무기력증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새뮤얼 호키(Samuel Hockey)의 일상은 종종 갑작스럽게 어두워지고 좁아진다. 평범한 일상조차 감당하기 어렵게 변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나오는 것도, 양치질이나 식사 준비 같은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나에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에게 이런 상태는 단순히 ‘정신 차리면’ 해결될 일이 아니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변화가 작동한다. “나를 움직이게 해주는 무언가가 없어지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감정과 복잡한 기분장애의 증세를 피하려고 무감각해지거나 멍해지는 보호 반응이 찾아오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건 나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호키는 십대 이전부터 시작된 복합 기분장애와 불안으로 20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왔다. 진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지치고 고된 여정이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겪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의료진에게 배우고, 다시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치료 난치군
호키는 전통적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환자군에 속한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기분이 무엇보다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감했다. “기분장애 환자 중 약 30%는 생체리듬의 조절 장애가 가장 큰 요인인데, 나도 그 그룹에 속한다.”
이 깨달음은 그를 연구로 이끌었고, 현재 그는 청년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이자 매쿼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에서 연구 석사 과정에 있다.
대사 기능 주목
시드니대학교 브레인 앤 마인드 센터(Brain and Mind Centre)의 연구진도 호키와 같은 환자군에 주목하고 있다. 기분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부 환자들에게서는 뇌보다 몸의 변화가 더 선행할 수 있다는 가설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사라 맥켄나(Sarah McKenna) 박사(임상심리학자)는 “기분장애 환자들에게 심혈관 질환과 대사 이상이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지난 10년간 그 비율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우리 연구팀은 매우 이른 단계에서 인슐린 저항성의 신호를 발견했다.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점이다.”
맥켄나 박사는 특히 “청년 기분장애 환자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면-각성 주기 교란이 대사 기능을 악화시키는 주요 기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751명 데이터
이번 연구는 2004-2024년 사이 751명의 청년을 정신건강 초기 개입 서비스에서 모집해 진행됐다. 연구팀은 이들을 흥분·불안 기반 우울 아형(hyperarousal-anxious depression), 생체리듬-양극성 스펙트럼 아형(circadian-bipolar spectrum) 두 그룹으로 분류해 대사 지표를 비교했다.
그 결과, 후자 그룹의 공복 혈당 수치가 전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연구팀은 추가적으로 BMI를 기준으로 두 그룹을 세분화했고, 그 결과 생체리듬-양극성 스펙트럼 환자군이 공복 혈당, 공복 인슐린, 그리고 인슐린 저항성(HOMA2-IR) 지표에서 모두 높게 나타났다. 맥켄나 박사는 이를 근거로 “인슐린 저항성이 기분장애의 결과가 아니라, 초기 경고 신호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선행 요인 가능성
브레인 앤 마인드 센터의 또 다른 연구자 이안 히키(Ian Hickie) 교수 역시 동일한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최근 연구는 수면-각성 주기 교란과 인슐린 저항성이 일부 환자에서 기분장애보다 먼저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동안 수면 장애를 기분장애의 ‘증상’으로, 대사 변화는 약물 부작용으로만 여기곤 했다. 그러나 우리 연구는 이 변화들이 먼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히키 교수는 청년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 중 약 30%가 이런 유형일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간단한 혈액검사로 위험군을 조기 파악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생체리듬·코르티솔·인슐린 조절 체계의 교란이 뇌 기능뿐 아니라 다른 신체 메커니즘에도 영향을 주며, 결국 체중 증가와 당뇨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은 기분장애 환자는 치료 시작 전부터 인슐린 저항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은 혈당만 측정하고 인슐린을 측정하지 않아 이를 놓친다.”

새 치료 접근
이 연구는 특정 환자군에게 기존 약물치료가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조기 선별 및 맞춤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히키 교수는 “이 환자군은 약물 노출 시 체중 증가와 당뇨 위험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정신과·대사 건강 모두에서 초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로 본 위험
호키 역시 치료 초기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촉발돼 당뇨 전단계에 이르렀다. 이후 체중 증가가 이어졌고, 결국 섭식장애까지 겪게 됐다. 그는 “만약 인슐린 민감성 같은 바이오마커를 더 일찍 혈액검사로 확인했다면, 대사적 손상뿐 아니라 그로 인한 정서적 부담까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변화에도 동기가 사라지고, 가장 기본적인 일에도 힘이 들면서, 외모 변화와 자책감이 제 자신에 대한 가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변화가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 불안정한 인슐린이 제 기분장애에 영향을 준 결과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한국신문 편집부 herald@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