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설계의 새 변수
암호화폐와 각종 디지털 자산이 유언장과 상속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며, 가족 간 분쟁과 유산 손실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서 암호화폐 보유가 급증하면서, 상속 과정에서 가족들이 거액의 자산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암호화폐가 유언장에 포함되는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실제 상속을 위한 기본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작성된다고 경고했다.
암호화폐뿐 아니라 대체불가토큰(NFT), 온라인 비즈니스, 수익형 SNS 계정, 온라인 저축계좌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자산이 늘면서 상속 절차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가족 간 혼란과 분쟁을 넘어, 여섯 자리 혹은 일곱 자리 달러 규모의 디지털 자산이 암호화된 지갑 속에 영영 갇혀버릴 위험도 존재한다. 유언 집행인이 디지털 자산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자산이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사라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접근권이 핵심
엔디에이로펌(NDA Law) 이사 리사 크리스토(Lisa Christo)는 디지털 자산은 상속 절차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명확한 접근 지침이 없을 경우, 유언 집행인들은 비밀번호로 보호된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는 “회계사, 재무설계사, 증권중개인 등 자산 관리와 관련된 전문가의 이름과 연락처를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며 “이들이 유언에 따라 자산이 올바르게 이전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크리스토 씨는 “유언장에 온라인 비밀번호 목록을 직접 기재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대신 “온라인 비밀번호 금고(password vault)를 이용하면 안전하게 비밀번호를 한곳에 보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많은 플랫폼들이 사망 후 계정을 관리할 사람을 지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며 “페이스북(Facebook)의 ‘추모 계정 관리자(legacy contact)’나 구글(Google)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이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반면 “드롭박스(Dropbox) 같은 일부 플랫폼은 사망 증명서 제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상속 재산 중에서도 암호화폐가 가장 빈번히 등장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도메인 이름, 게임 내 자산, 포인트, 디지털 지적재산권 및 라이선스 권리 등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자산은 소유권, 평가 방식, 분배 절차 등에서 새로운 분쟁을 야기한다.

법적 회색지대
타이스앤로이어스(Tiyce & Lawyers)의 대표 마이클 타이스(Michael Tiyce)는 최근 가족법 소송에서 암호화폐 관련 분쟁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암호화폐를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산 보전을 위해 전자기기 전부를 제출하도록 명령받는 사례도 있다.”
그는 “현재 가장 큰 법적 회색지대는 ‘암호화폐가 법적으로 재산(property)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논의”라고 지적했다. “만약 암호화폐가 재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영향은 매우 크다. 해당 자산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으며, 유언장에 명시된 암호화폐 증여도 불확실성 때문에 무효가 될 수 있다.”
타이스 씨는 “아직 이 문제가 호주 고등법원(High Court)까지 올라간 적이 없어, 명확한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중 키 접근 방식(multi-key access)”을 제안했다. 두 명 이상의 사람 또는 변호사가 공동으로 접근해야만 자산이 해제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장년층 중심 확산
세이프윌(Safewill) 창립자 아담 루보프스키(Adam Lubofsky)는 “2019년 대비 2025년에는 암호화폐를 포함한 유언장이 5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성장은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비슷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40-65세 연령층에서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루보프스키 씨는 “2019년 세이프윌 유언장 중 암호화폐를 포함한 비율은 1% 미만이었지만, 2025년에는 6%를 넘어섰다”며 “이는 해당 연령층에서 암호화폐 보유가 600%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인식 부족이 문제
루보프스키 씨는 “디지털 자산이 이제는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자산 구성에서 표준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디지털 자산 전반의 성장 덕분이다. 암호화폐뿐 아니라 온라인 비즈니스, 각종 디지털 투자 자산 등으로 디지털 부가 확대되고 있다.”
그는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자산을 유언장에 포함시키지 않거나, 접근 방식과 보안 문제 때문에 처리 방법을 몰라 상속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계획이 없다면, 이 자산들은 손쉽게 사라지거나 영영 잠겨버릴 수 있다.”
루보프스키 씨는 디지털 자산 상속에서 가장 큰 위험은 세금이나 가격 변동이 아니라 “유족이 자산을 찾거나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죽는’ 암호화폐
“첫 번째 단계는 자산의 보관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암호화폐가 거래소, 디지털 지갑, 혹은 물리적 장치 중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코인스팟(CoinSpot), 바이낸스(Binance), 코인베이스(Coinbase) 같은 온라인 거래소는 은행처럼 사망자 계좌 관리 정책을 운영해, 집행인에게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지갑에 직접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경우에는 ‘시드 문구(seed phrase)’라 불리는 단어 조합으로만 복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 문구 본인과 함께 사라지면 자산도 함께 사라진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는 “유언 집행인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사망 후 암호화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되, 생전에는 도난 위험이 없도록 하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고객은 다중서명 지갑(multi-signature wallet)이나 공동 보관 서비스(custody service)를 이용해 두 명 이상이 거래를 승인해야만 실행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단일 실패 지점을 줄이는 것이다.
루보프스키 씨는 “소셜미디어 계정, 클라우드 저장소, 애플(Apple),구글(Google) 계정 등도 재정적 혹은 정서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이라며 “페이스북은 추모 관리자 지정이 가능하고, 애플도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 기능을 제공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플랫폼은 명확한 절차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자산 상속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재산 관리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전의 명확한 설계 없이는, 디지털 자산은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