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권리 요구
시드니의 두 아이 엄마 칼린 챈들러(Karlene Chandler)가 웨스트팩은행(Westpac Bank)을 상대로 재택근무 권리를 요구하며 싸워 승리했다.
이번 판결은 유연근무권을 둘러싼 향후 유사 사례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챈들러는 웨스트팩에서 23년간 근무해온 직원으로, 올해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출퇴근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는 NSW 윌튼(Wilton)에 거주하며, 매일 오전 7시 45분에 두 여섯 살 자녀를 사립학교에 데려다주고 코가라(Kogarah)의 본사로 출근해야 했다.
통근에 약 두 시간이 걸려 오전 8시 시작 시간에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오후 2시 25분에 마치는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공정근로위원회(FWC-Fair Work Commission)에 따르면, 그의 남편은 자영업자로 불규칙한 일정과 종종 주외 출장이 있어 아이 등하교를 돕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택근무가 육아 수단?
챈들러는 올해 1월 재택근무를 공식 요청했지만, 웨스트팩은 법적 기한인 21일을 넘긴 3월에 거절 통보를 했다. 이후 챈들러가 집과 가까운 보랄(Bowral) 지점에서 주 2일 근무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근로위원회 부의장 토머스 로버츠(Thomas Roberts)는 결정문에서 “요청을 거부하면서 어떠한 이유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챈들러가 거부 사유를 문의하자, 은행은 “재택근무는 육아의 대체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내부 지침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웨스트팩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원격근무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도 제시했다.

유연근무 정책의 모순
웨스트팩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모든 직원이 직무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챈들러의 요청을 “사업상 합리적 이유(reasonable business grounds)”를 들어 거부했다.
그러나 공정근로위원회는 챈들러가 재택근무 경험이 풍부하고 성과 또한 뛰어났다고 판단했다. 로버츠 부의장은 “그는 업무 기한을 항상 지키거나 초과 달성해왔다”고 강조했다.
챈들러의 주요 업무는 대출 승인, 수수료 배분, 내부 채무 해소, 팀 메일함을 통한 문의 처리 등으로, 위원회는 “모두 원격으로 수행 가능한 업무”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웨스트팩이 주장한 ‘합리적 사업상 이유’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직원들 요청도 늘어날 것”
웨스트팩은 이번 재택근무 허가가 다른 직원들의 유사 요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로버츠 부의장은 “웨스트팩은 챈들러의 요청을 승인할 경우, 다른 직원들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한 은행 측은 “개인적 선택(예: 가족 거주지 위치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 선택) 때문에 회사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가족이 추가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남편이 더 많이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근로위원회는 이 같은 은행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로버츠 부의장은 웨스트팩 단체협약(Westpac Agreement)에 명시된 조항을 인용하며, “직원은 유연근무(flexible working arrangement)를 요청할 권리가 있으며, 회사는 이를 국가고용기준(NES-National Employment Standards)에 따라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유연근무를 제한하는 조항은 이러한 법적 의무의 틀 안에서 해석돼야 한다며, 챈들러의 요청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택근무 승인 명령
공정근로위원회는 “양측의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웨스트팩에 챈들러의 재택근무 요청을 공식 승인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해 웨스트팩은 “판결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현재 주 2-3일 사무실 출근을 기본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체계는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균형 잡힌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대변인은 “우리의 정책은 근무 장소와 관계없이 고객에게 최상의 결과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팀 간 협업을 강화하면서도 재택근무의 유연성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웨스트팩은 호주 전역의 대규모 인력을 대상으로 한 웨스트팩그룹 기업협약(Westpac Group Enterprise Agreement)에 따라 일관된 근무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연근무 논의의 분수령
이번 판결은 자녀 양육과 직장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부모들의 재택근무 권리를 강화하는 결정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가 앞으로 다른 근로자들이 유연근무나 재택근무를 요청할 때 중요한 법적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