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위기
호주 대표 통신사 중 하나인 옵터스(Optus)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루(Stephen Rue)가 몇 주 안, 어쩌면 며칠 안에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재계 거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 통신 장애와 관련돼 세 명이 숨진 사건은 지난 3년간 이어진 옵터스의 일련의 스캔들 중 가장 치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수의 전직 회장 및 CEO 출신 인사들은 루 CEO가 이번 사태를 넘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일부는 이미 이사회와 ‘불가피한 사임(certain departure)’에 대해 논의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전제로 한 이들은 루 CEO의 사퇴 발표가 임박했으며, 지난 2024년 11월 취임 후 불과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루 CEO는 2023년 대규모 통신 장애 사태 이후 물러난 켈리 바이어 로스마린(Kelly Bayer Rosmarin) 전 CEO의 뒤를 이어 선임됐다.
“자리 보전은 불가능”
한 전직 호주증권거래소(ASX) 상장사 회장은 “그가 남아 있는은 불가능하다”며 “이사회는 초기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만 그를 자리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업 재앙이자 실패일 뿐 아니라 비극”이라며 “사람들이 울워스(Woolworths)나 콜스(Coles)의 가격 문제를 두고 불만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직 상장사 CEO는 “통신사가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 분야에서 옵터스가 저지른 두 번째 중대한 실수다. 조금이라도 책임이나 책무가 있는 사람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레지클리안 거론
전 NSW주 총리이자 현재 옵터스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 고객 책임자(CCO)인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Gladys Berejiklian) 역시 인사 개편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묻자, 한 관계자는 “솔직히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옵터스가 그를 차기 CEO로 고려할 것 같지도 않다. 베레지클리안 전 주총리는 짐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업 인사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데이터 유출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으며, 다방면에서 임원직을 맡아온 한 기업인은 “전임 CEO 바이어 로스마린은 외향적이었지만 루는 숫자에 강하고 내성적”이라며 “한 가지 확실한 건, 임시 CEO 자리에 서둘러 자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 CEO 선임 전까지 마이클 벤터(Michael Venter)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임시 CEO를 맡은 바 있다.
신뢰 추락의 시작
옵터스의 평판 추락은 2022년 고객 데이터가 해킹된 사이버 공격에서 비롯됐다. 불과 지난달 호주정보위원회(OAIC-Office of the Australian Information Commissioner)는 이 데이터 유출과 관련해 옵투스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개시했다.
소송은 2019년 10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옵터스가 약 950만 명의 개인정보를 합리적으로 보호하지 못해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주정보위원 엘리자베스 타이드(Elizabeth Tydd)는 “개인정보는 신뢰를 기반으로 맡겨지는 것”이라며 “국민은 기업이 이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옵터스는 “적절한 시점에 대응할 것”이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추가 언급은 피했다.

잇단 제재와 소송
2023년 11월 발생한 통신 장애는 병원, 은행, 요식업체, 긴급 전화 서비스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불러왔으며, 이는 바이어 로스마린 CEO 사퇴로 이어졌다.
호주통신미디어청(ACMA-Australian Communications and Media Authority)은 지난해 11월 옵터스에 대해 긴급 전화 규정 위반으로 1,200만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했다.
멜리사 매킨토시(Melissa McIntosh) 통신 담당 야당 대변인은 “벌금만으로는 이런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모든 통신사가 위기 상황에서도 긴급전화가 반드시 연결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리다 오로클린(Nerida O’Loughlin) ACMA 의장은 성명을 통해 “트리플 제로(Triple-0) 연결 가능성은 통신사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기본적 서비스”라며 “긴급 전화 연결 실패는 보건과 안전에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사 결과 옵터스는 여러 영역에서 네트워크 관리에 실패했으며, 이번 장애는 예방 가능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는 지난해 10월 옵터스를 상대로 연방 법원에 제소하며, 옵터스가 취약 고객에게 불필요하거나 고가의 서비스를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6월 옵터스는 “비양심적 영업 행위”를 인정했고, ACCC와 1억 달러의 벌금에 합의했다. 이 사안은 지난 9월 애들레이드(Adelaide) 연방 법원에서 다뤄졌으나 이후 재판은 연기됐다.
싱텔의 고민
옵터스는 시가총액 840억 달러 이상 규모의 싱가포르 기업 싱텔(Singtel)에 소속돼 있다. 싱텔은 전통적으로 언론 노출을 꺼려왔으나, 지난해 5월 그룹 CEO인 윤관문(Yuen Kuan Moon)이 CNBC 인터뷰에 나서 “옵터스 경영진은 고객 신뢰 회복과 가치 제공에 전념하고 있다”며 “첫째 고객 신뢰를 되찾아야 하고, 둘째 회복력 있는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공익위해 이례적발표
한편, 경찰은 최근 애들레이드(Adelaide) 외곽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은 옵터스 통신 장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서호주(WA), 노던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전역을 강타한 지난 목요일의 대규모 통신 장애와 연관된 4건의 사망 사례 중 하나로 분류됐으나, 예비 조사 결과 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 대변인은 “사망한 아기의 할머니가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로 트리플제로(Triple-0, 호주 긴급전화)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며 “즉시 집에 있던 다른 휴대전화를 사용해 트리플제로에 성공적으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경찰은 개별 사망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공익적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애들레이드 여성 사망
한편 애들레이드에서는 68세 여성이 집에서 홀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흉통을 느낀 뒤 남편에게 연락했으나, 남편은 옵터스 장애로 인해 긴급전화에 연결할 수 없었다고 현지 언론 애드버타이저(The Advertiser)가 보도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다른 이들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당국이 철저히 조사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호주에서도 사망
옵터스는 서호주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망 사건이 통신 장애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옵터스는 “서호주에서 한 개인이 긴급전화를 시도했으나 장애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 및 관련 기관과 협력해 구체적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로저 쿡(Roger Cook) 서호주 주총리는 “경찰의 복지 점검 과정에서 긴급전화를 시도하다 숨진 또 다른 사례 가능성이 보고됐다”며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충격적인 비극이며 정부와 당국, 대중에게 이런 상황이 늦게 알려진 점 또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고객 신고 묵살
문제의 발단은 목요일 새벽 0시 30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진행된 방화벽 업그레이드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해 14시간 가까이 긴급전화 연결이 불가능했지만, 옵터스는 오전 9시경 고객 신고를 받고서도 이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스티븐 루(Stephen Rue) 옵터스 최고경영자(CEO)는 “두 건의 고객 신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부서로 전달되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이어 “텔레커뮤니케이션 옴부즈맨(TIO-Telecommunications Industry Ombudsman)과 협력해 모든 민원을 검토하고 있으며 독립적인 조사 책임자를 임명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CEO의 사과
루 CEO는 유가족과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할 때 통신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남호주주총리 피터 말리나우스카스(Peter Malinauskas)와 통화해 사과했으나, 말리나우스카스 주총리는 옵터스를 “비난받아 마땅하다(reprehensible)”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노조의 반응
호주통신노동조합(CWU-Communications Workers Union)은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통신사들이 긴급전화 연결을 보장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으며, 아니카 웰스(Anika Wells) 연방통신장관은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적 문제 지적
이번 장애는 일반 전화는 정상적으로 걸 수 있었으나, 긴급전화만 연결되지 않는 특수한 형태였다. 보통 한 통신사에서 긴급전화 연결이 실패하면 다른 통신망으로 자동 우회되는 ‘클램프 온(clamp-on)’ 제도가 작동해야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루 CEO는 “이번 사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철저히 조사해 모든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