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시작된 협상설 부인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 장벽 협상에 들어갔다고 주장했을 때, 중국은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었다. 그게 불과 몇주 전의 일이었다. 당시 중국은 “끝까지 싸우겠다”, “절대 무릎 꿇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드러난 바에 따르면, 베이징이 이런 강경 발언을 내놓기 며칠 전 미국의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은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례 회의 기간 중 란훠안(Lan Fo’an) 중국 재정부장과 비밀리에 만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징은 세계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다.
중국 내 분위기와 정부 발표는 괴리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을 자유의 날(Liberation Day)이라 선언한 이후 중국 정부의 발표와 실제 현장 분위기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다.
정부 선전 매체들은 중국이 미국 시장 없이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광둥(Guangdong)의 공장주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광저우(Guangzhou)에서 열린 캔톤페어(Canton Fair)에서 만난 중국 수출업자들은 트럼프의 관세 장벽을 우회할 방법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한 업체는 중국 푸젠(Fujian)성에서 제조한 제품에 ‘베트남산’ 스티커만 붙이기 위해 베트남에 회사를 설립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췄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에서는 미국 소비자에 대한 의존이 여전히 뚜렷했다.
또 다른 공장주는 자사의 제품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테슬라(Tesla)에 납품되고 있다며, 이들 고객사가 미국 내 새 공장 설립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관세는 실제로 많은 중국인에게 타격을 주고 있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1,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역시 타격 불가피
물론 미국도 피해를 입고 있었다. 미국 유통업체들은 매장 진열대가 곧 텅 빌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고, 이는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협상에 나섰고, 이로 인해 ‘물러섰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나 시진핑(Xi Jinping) 주석 역시 한발 물러섰다.
중국 내 여론은 ‘승리’ 주장
지난 주말 스위스에서 타결된 상호 후퇴 합의에 대해 중국 내부에서는 시 주석의 강경 전략이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푸단대(Fudan University)의 대표적인 강경 논객 션이(Shen Yi) 교수는 “물론 이것은 승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협상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유엔군(미국과 호주 포함)에 맞서 싸운 한국전쟁에 비유하며, 북한이 탄생한 것이 당의 공식 역사에 따르면 “영광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게 승리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승리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번 중국의 ‘승리’는 꽤 독특하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존 관세에 추가로 3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수용했다.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실질 관세율은 약 40%에 달한다. 중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은 약 25% 수준이다. 이는 양국이 서로 보복하면서 각각 145%, 125%까지 올랐던 관세율에서 크게 낮아진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어떤 미국의 교역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테무와 쉬인 타격 여전
이번 합의로 인해 밀수나 편법 통로를 통하지 않아도 무역이 가능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관세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동남아, 인도, 멕시코 등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면, 미국에 물건을 팔고자 하는 제조업체들의 중국 탈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발송되는 소형 소포에 대해 120%의 관세를 유지하기로 해, 중국계 온라인 유통업체 테무(Temu)와 쉬인(Shein)이 이용하던 허점을 차단했다.
한편 중국은 첨단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조항 역시 향후 틱톡(TikTok) 문제 등에서 마찰이 생기면 언제든 무효화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
세계 경제엔 ‘안도의 한숨’
결과적으로 이번 스위스 합의는 미국-중국 관계를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여전히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높고, 중국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미국산 제품에 10%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 부분 타협하긴 했지만, 이번 합의는 시진핑 주석이 외국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계속 강조하는 ‘상호이익의 세계화’와는 거리가 먼 경제 구도다.
트럼프와 시진핑,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정상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던 조건들을 결국 받아들였다.
양측의 예상 밖 유연함은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호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 안도감을 주고 있다.
이번 스위스 합의를 통해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정에서 일부 사실 왜곡이나 전략적 침묵이 있었던 점은 지적될 수 있으나, 갈등 격화보다는 타협이 선택된 점에서 이번 합의는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