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는 사랑꽃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햇살 가득 퍼진 베란다로 나간다.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 마시며 운동도 하고 내가 키우는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대충 점검하곤 한다. 오늘도 예외 없이 밖에 나갔다 들어가려는데 아차 문이 잠겨 버린 게 아닌가. 생각 없이 문을 밀어 붙여 닫은 게 탈이 되었던 것이다. 큰일이다. 전화기도 없고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으니 꼼짝없이 아들 퇴근 때까지 베란다에 갇히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밀려왔다.
머리가 먹먹했다. 나는 그만 체념하고 내 식구와 같은 화초, 채소, 나무들과 놀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언제 내가 그들과 이처럼 긴 시간 함께 한 적이 있었을까. 동식물들도 사랑 받기를 좋아한다는데 그 동안 사랑 없이 키운 식물들에게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지를 쳐 주고 누런 잎을 떼어주고 이리저리 돌봐주니 바람을 업고 난 잎들이 춤을 추는 듯하다. 마치 두 살 난 손자가 기분 좋을 때 팔짝팔짝 뛰는 모습과도 같았다. 모처럼 따뜻한 내 손길을 접하니 모두 기분 좋은지 잎들을 흔들어 내 가슴까지 일렁인다. 아직 유월 중순인데 꽃대가 올라오고 꽃망울이 봉곳봉곳 부풀어 있어 오늘을 기다린 듯 예쁜 자태들을 보이고 있다. 호주 유월 중순이면 꽃대가 올라오기는 아직 이른 계절인데 올해는 봄이 빨리 오려나 보다. 나뭇잎을 돌돌 말아 숨어있던 나비 애벌레도 어느덧 나비로 변신해 코앞에서 춤추며 어른댄다. 그 동안 나는 그저 살아만다오 하는 마음으로 물이나 한 번씩 뿌려주거나 집을 비울 때면 내 팽개치듯 돌보지 못했었다.
인도의 한 철학자는 ‘식물의 감각’이라는 대목에서 식물은 사람보다 더 예민하다고 했다. 식물의 감각에 대해 세계 몇 나라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식물을 자르거나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땅에서 뽑아버리면 갑자기 그래프를 그리는 바늘이 뛰어 올라 그 식물은 죽음이 두려워 떨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식물의 감정도 장애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식물이 인간보다 더 예민하다며 식물을 자르고 다른 정원으로 옮기면 그 정원의 식물들이 불안해 한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은 후 나는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알로에를 자르기 위해 칼을 들고 무참하게 베어댔기 때문이다. 내 섬뜩한 행동에 알로에는 칼을 든 나를 보고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마치 아이에스(IS)가 칼을 뽑아 들고서 눈을 가리고 무릎을 꿇은 납치자의 목을 치려는 상상이 들어 알로에 앞에서 몇 번이나 ‘나는 네가 필요해. 미안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꽃대가 쓰러질까 막대를 세워 기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영양이 부족한 것은 거름을 넣어주고 물도 흠뻑 뿌리고는 주변도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들도 기분이 좋은 듯 한결 말끔해진 모습으로 반짝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잎들도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서로를 다독이는 듯 춤을 추는 듯 보였다. 한국에서 난을 키울 때 새로 촉이 돋아나면 분가시켜 꽃이 예쁘게 필 때면 가까운 이웃과 정을 나누었다. 호주에서도 지인에게 꽃이 핀 난 화분을 안겨주니 난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행복해 했다. 피커스(Ficus)도 실내에서 공기를 정화시킨다 하여 사랑 받는 나무라 식구를 늘려 볼 생각으로 몇 개의 잎이 달린 다섯 개의 가지를 잘라 심었다. 매일 물을 주고 들여다보며, 잎이 떨어질세라 ‘제발 살아만 다오’ 하고 정성을 다했다. 한 가지는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성장을 포기했는데 나머지 네 가지가 연두색 이파리를 틔우고 있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식구를 늘리기 위해 가지를 잘라 심어 뿌리를 내릴 때의 대견함은 내 마음까지도 풍선처럼 둥둥 뜨게 한다.
어느덧 해가 서쪽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오색 앵무새들이 큰 나무 위에서 식구들을 불러들이기 바쁘다. 하루 일과를 이야기 하듯 바쁘게 입을 놀려 재잘거리는 소리로 주변을 시끄럽게 흔든다. 석양을 향해 날아가는 한 무리의 새들이 노을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환상적이다. 이 많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왜 나는 무관심 했을까. 그 동안 옹졸한 시야로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런데 아들은 언제 오려나… 이제 그만 일손을 놓고 유리문을 통해 현관 쪽으로 둔다.
나이봉 / 시드니 한인작가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