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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광장- 아, 어머니!

11/11/2021
in 칼럼

겨울은 당연히 추워야 한다지만 그 당시 겨울은 지금 돌이켜봐도 유난히 춥고 황량했다. 언제나 부르면 대답하시던 엄마가 가신 길을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휘젖는다. 슬픈 마음이 얼음덩이가 되어 내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버석거리며 냉기를 내뿜는다. 68년을 엄마였던 세월을 접고 내 눈물 못 보신 걸까? 어찌 성치못한 발걸음을 옮기셨을까? 노인병원에 계신 엄마가 점점 쇠약해진다는 소식과 여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오는 엄마 모습은 충격이었지만 수술 후 몸이 부실했던 터라 선뜻 나서질 못하고 망설이느라 봄이 오도록 발목 잡힌 꼴이었다.
부활절 휴가가 끼어 있어 비행기 스케줄은 복잡하기도 했고 밀고 당기며 애를 태운 끝에 만난 엄마는 기다렸던 듯 생기 있는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내 손을 꼭 잡는다. 얼마나 수척해 보이는지 반가움에 눈만이 반짝거린다. 끝없이 내 손을 쓰다듬는 엄마의 온기가 내 마음을 후회로 가득 채운다. 지난 2년여 엄두를 못 냈던 비행기 여행이 안타까움으로 밀려와 가슴을 친다.
서울에서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가슴이 조이고 답답해 소리지르며 뛰쳐나오고 짐 내리느라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시간 넘도록 지연시켰던 경험이 있다. 그후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이 몰려와 미루기만 하다 보니 90 넘기시는 엄마를 못 찾았던 후회가 산더미처럼 한꺼번에 밀려와 미안한 마음을 송두리째 휘둘러댄다. 너무나 변한 엄마 모습에 어쩔 줄 모르는 내게 누나 기다리다 만나서 그런지 오랜만에 아주 생생한 표정이라고 남동생이 말한다. 생전 처음 동생집 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0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후 엄마 혼자 사시던 아파트를 없앤 과정을 멀리서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느낌이 되살아났지만 엄마가 전형적인 큰아들 선호형이니 엄마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이민 가 살고 있는 나의 할일일 뿐이었다.
다음날, 걱정과는 달리 죽을 꽤 맛있게 드시고 생기 있는 표정에 회복하시는구나 안심하며 하루를 더 보내고 주말에 서울 올라가 2-3일 볼일 보고 내려오리라 계획했는데 서울로 올라간 다음날 아침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하늘 귀퉁이가 깨진 듯 쏟아지는 빗줄기는 눈물처럼 보이고 세상 모든 일이 허방다리 건너로 사라진 듯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안았다.
엄마 미안해.
30년 전 손수 장만하신 황금색 수의는 찬란하고 아름답다. 넉넉하고 품위 있는 허리띠 두르고 평생 바빴던 손과 발에 우아한 손장갑 버선 신고 먼 길 떠날 채비를 하신다. 스무 살에 시집와 70년을 다니고 당신 결혼식 했던 교회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 속에 아버지 곁에 합장하는 예식은 간단히 끝났다. 대청댐 옆 깊지 않은 산속은 새싹이 움트는 봄의 생기가 넘치고 실바람에 꽃향기도 넘나들고 멀리보이는 야트막한 산줄기가 아늑하게 둘러싸여 홀린 듯 주저앉아 있었다. 무심한 구름 속에 수많은 추억이 떠올라 한 마리 노란나비 되어 날아오른다.
어느 인생이 편하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참을성 많고 성실한 성품의 엄마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인내의 삶이었다고 되돌아 본다. 맏며느리로 시부모 모시고 오남매를 기르느라니 공무원인 아버지 힘으로는 넉넉할 것 없는 살림에도 욕심없이 불평할 줄 모르는 것처럼 느껴져 답답했던 나는 혈기 넘치는 내 성질대로 엄마를 부추기며 반란을 강력히 주장했다. 내가 책임질께, 아버지에게 맞서 싸우라고. 참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도 아닌 말로 엄마를 더 큰 슬픔 속으로 밀어넣고는 했다. 아버지가 유도를 하시고 체육계 일에 열심이시니 검도용 대나무 칼이 늘 집에 있는데 참지 말고 성질대로 휘두르자고 철없이 엄마 속을 휘저어 놓았던 나의 사춘기 시절은 미안한 추억으로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이제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 뒤에 번호표 받아든 나는 굳이 행복하려 불행하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오는 세월 속에 혼자 서 있을 뿐.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 내 마음에 잔잔한 한 송이 들꽃으로 남아있는, 엄마 안녕.

송영신 /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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