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외국(foreign lands)’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를 대상으로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 영화 산업 전반에 심각한 경제적·문화적 충격이 예상된다.
이 조치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호주 영화 산업은 물론 미국의 할리우드(Hollywood) 자체에도 타격을 주고, 미국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영화의 다양성 역시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외국어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관세 정책은 오히려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고 미국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촬영이나 후반 작업이 호주,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해외에서 이뤄지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제작 모델 겨냥
이러한 국제 공동 제작 모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제작자들은 수십 년간 각국 정부의 세금 혜택을 바탕으로 촬영지를 결정해 왔으며, 이런 인센티브가 갑작스럽게 사라질 경우 영화 산업의 경제 구조는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해외 인프라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미국 내 스튜디오들을 벌주는 셈인 이번 조치는, 이미 여러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영화 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할리우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 DVD 매출의 붕괴, 계속되는 노동자 파업, 그리고 박스오피스 하락 등으로 인해 아직도 회복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촬영을 통해 제작비를 아끼는 것은 많은 제작자들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호주 산업 타격 불가피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호주는 즉각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NSW주와 퀸즐랜드주는 이미 견고한 영화 제작 산업을 갖추고 있으며, 《토르: 러브 앤 썬더(Thor: Love and Thunder)》, 《엘비스(Elvis),《더 폴 가이(The Fall Guy)》 같은 대형 국제 프로젝트를 유치해왔다. 이들 작품은 지역 경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고, 미술, 로케이션, 시각효과, 후반작업 등 다양한 분야의 고용을 창출해왔다.
최근 들어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과 지상파 방송의 쇠퇴로 인해 호주 자체 콘텐츠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국제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4,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시드니에서 촬영 및 후반작업을 마친 영화는 최대 40%의 정부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다. 연방 정부에서 30%, 주 정부에서 추가로 10%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최대 1,600만 달러의 환급을 의미하며, 호주가 미국 영화 제작에 매력적인 장소로 부상한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관세가 적용된다면, 이 영화는 최대 2,400만~4,000만 달러의 추가 세금을 물게 되며, 이는 리베이트 혜택을 전면 상쇄하고 호주가 미국 영화의 촬영지로서 경제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수천개 일자리 위협
호주의 주요 제작 시설인 시드니의 폭스 스튜디오(Fox Studios)와 멜번의 도클랜드 스튜디오(Docklands Studios) 등은 국제 공동 제작에 의존하고 있다.
수천 개의 일자리가 이러한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관련 기술 및 인프라 역시 글로벌 협업을 전제로 구축돼 있다.
이번 정책이 미국 내 일자리를 되살릴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할리우드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해외 제작을 선택해왔다. 지역적 특성, 자연 환경, 독특한 장소 등이 결정적 요인이며, 시청자들도 다양한 시각적·서사적 경험을 기대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나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과 같은 시리즈는 다양한 나라에서 촬영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촬영을 모두 미국 내 그린스크린과 스튜디오로 대체한다면,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의도 의심돼
이러한 조치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을 수 있다. 할리우드는 오래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진보적 사회운동을 지지하며 민주당 캠페인에도 자금을 후원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관세안은 문화 산업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일환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또는 그의 지지 세력이 기존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기관들을 공격해온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교(Harvard) 등 명문대에 대한 논란, 미국 대형 로펌 및 언론사에 대한 비판 역시 이러한 이념 갈등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관세 정책은 보수 성향 정부가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고립이 아닌 협업이 해답
이번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할리우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약화시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오랜 협력 관계를 맺어온 호주와 같은 동맹국도 경제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영화 산업은 다양한 국가 간 협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왔으며, 복잡한 글로벌 제작 구조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미국 내 제작 산업 보호라는 정책적 목표는 이해되지만, 일률적인 관세 부과는 오히려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작 인프라와 인센티브가 결합된 국제 협업이 현대 영화 산업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고립보다는 협력이 더욱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호주 역시 이러한 협력 구조 속에서 미국과 공동 제작을 통해 성장해온 만큼, 지나치게 제한적인 정책은 양국 모두의 영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