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수화물 식단? 새로운 연구
좋아하던 파스타를 포기하고 저탄수화물 식단을 고수하는 것이 꼭 건강하고 오래 사는 길일까? 최근 연구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탄수화물은 오랫동안 건강의 적으로 낙인찍혀 왔다. 밥, 파스타, 빵은 살이 찌고 건강을 해치는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탄수화물 공포는 18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퇴직 장의사 윌리엄 밴팅(William Banting)은 자신이 비만(“corpulence”)을 해결한 식단을 소책자로 소개했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인플루언서’의 시작과도 같았다. 이후 저탄수화물 식단은 유행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빵을 먹어왔고, 쌀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곡물 중 하나다.
1인당 파스타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비만율이 가장 낮은 국가이기도 하다.
장수 지역으로 알려진 일본, 코스타리카, 사르데냐, 그리스, 캘리포니아 등 ‘블루존’과 지중해 식단은 공통적으로 탄수화물 비중이 높다.
그렇다면 탄수화물은 정말 피해야 할 존재일까? 영국식이요법협회(British Dietetic Association) 대변인이자 다이어티션 UK(Dietitian UK) 전문가인 프리야 튀(Priya Tew)는 이렇게 말한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매일, 그리고 거의 모든 끼니에 포함되어야 한다.”
탄수화물은 근육, 뇌, 기타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튀는 “사람들이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거나 오랜 시간 섭취하지 않으면 사고력, 집중력, 감정 조절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핵심은 ‘적절한 섭취’다. 영양과학 회사 조이(Zoe)의 수석 영양사 페데리카 아마티(Federica Amati) 박사는 “탄수화물은 본질적으로 살이 찌는 성분이 아니다. 에너지를 제공하는 모든 다량 영양소와 마찬가지로 과잉 섭취할 경우 여분의 에너지가 저장되며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밥, 파스타, 빵은 생각보다 건강한 음식이다. 건강한 식단에 탄수화물을 어떻게 잘 조화시킬 수 있을지 알아보자.

쌀, 색깔따라 달라. 흑미는 더 좋아.
흰쌀은 현미보다 영양소가 적지만, ‘공허한 칼로리’는 아니다. 흰쌀도 섬유질, 마그네슘, 칼륨을 포함하고 있으며, 글루텐이 없어 셀리악병 환자에게는 좋은 선택이다.
아마티는 “일반적으로 현미 같은 전곡류가 섬유질과 영양이 더 풍부하고 소화도 느려서 더 나은 선택이긴 하지만, 결국 어떤 식재료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채소, 등푸른 생선, 커민과 강황 같은 향신료와 함께한 균형 잡힌 식사에서는 흰쌀도 걱정할 필요 없다.
특히 흑미는 장 건강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다. 흑미는 폴리페놀(polyphenol) 함량이 풍부하며, 이는 스트레스와 염증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한다.
파스타는 건강한 식품
음식을 특정 성분으로만 단순화하는 건 무의미하다. 파스타는 탄수화물이지만 단백질과 비타민 B1, B9, 셀레늄 등 다양한 미량 영양소도 함께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 B1은 포도당을 연료로 분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신경계 건강에 중요하다. 비타민 B9는 세포 성장과 임산부에게 특히 중요한 영양소이며, 셀레늄은 면역계와 뇌 건강을 돕는다.
비만과 오히려 반대 연관성
파스타가 살찔까 봐 걱정된다면, 걱정을 내려놓자.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파스타는 체중이나 체성분과 일반적으로 관련이 없으며, 건강한 식단의 일부로 섭취할 경우 체질량지수(BMI)나 복부 비만과는 오히려 반비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파스타의 밀도가 높고 구조가 치밀하기 때문일 수 있다. 파스타는 단단한 듀럼밀(wheat durum)로 만들어지며 소화 효소가 분해하기 어렵다.
장 건강 전문가 에밀리 리밍(Emily Leeming) 박사는 “이런 느린 소화 과정은 혈당 반응을 낮추고, 식사 후 혈당이 천천히 오르기 때문에 포만감이 오래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통밀 파스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파스타만 단독으로 먹지 않는다. 토마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마늘, 양파, 각종 채소, 견과류, 허브, 향신료, 콩, 등푸른 생선 등 다양한 건강식 재료와 함께 먹는다. 따라서 흰 파스타냐 통밀 파스타냐를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물론 통밀 파스타가 섬유질은 더 풍부하지만, 균형 잡힌 파스타 식사는 이미 섬유질, 건강한 지방, 단백질을 충분히 제공한다.

파스타 재가열하면 저항성 전분 증가
남은 파스타를 팬에 기름과 함께 바삭하게 구워 먹는 걸 좋아한다면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렇게 식히고 다시 데운 파스타는 더 맛있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조리 후 식힌 파스타는 구조가 바뀌어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으로 변하며, 이는 식이섬유처럼 작용해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다시 데우면 저항성 전분은 더 늘어난다.
‘진짜 빵’을 고르자 첨가물 없는것이 핵심
리얼 브레드 캠페인(Real Bread Campaign)의 크리스 영(Chris Young)은 “모든 빵이 똑같지 않다”며 “첨가물이 가득한 공장식 빵과 진짜 빵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빵은 첨가물이 없는 빵이다. “첨가물 없는 빵은 맛있고 영양가도 풍부하다. 진짜 사워도우(sourdough) 같은 브랜드 제품도 있고, 재료 목록을 잘 확인하면 리얼 브레드 인증 마크(Real Bread Loaf Mark)를 찾을 수 있다.”
사워도우가 최고선택 영양소 흡수 도와
사워도우는 요즘 유행이지만 사실 전통 방식의 빵이다.
브레드 어헤드(Bread Ahead) 제과점의 매튜 존스(Matthew Jones)는 “현대의 이스트는 비교적 최근의 기술이다. 50~6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빵은 사워도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라고 말한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입된 공장식 제빵 기술은 빵의 영양을 일부 희생시켰다.
아마티는 “흰 사워도우도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고, 공장식 빵보다 혈당 지수가 낮을 수 있다”며 장 건강과 전반적인 건강에 더 좋다고 설명한다. 또한 천천히 발효하는 사워도우 제법은 철분, 칼슘, 마그네슘, 아연 같은 미량 영양소의 체내 흡수를 돕는다.

우리뇌는 탄수화물을 원한다, 170g 포도당 필요
탄수화물은 뇌의 연료다.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다.
2022년 스페인 연구진은 인간의 뇌가 안정 시에도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2025%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또 뇌, 신장수질, 적혈구, 생식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하루 약 170g의 포도당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튀는 이를 “식빵 89조각에 해당하는 양”이라며 “꼭 빵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충분한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밍은 “탄수화물을 끊으면 우리 몸은 대체 에너지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이는 피로, 멍한 기분, 예민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혈당 걱정, 일반인은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최근에는 혈당을 걱정하며 혈당 측정기를 착용하는 트렌드가 유행 중이다. 모든 음식은 혈당을 높이며, 일부는 그 폭이 더 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누구에게나 필요한 걱정일까? 튀는 “혈당 문제 진단을 받지 않았고, 가족력도 없다면 일반인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보가 마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전달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탄수화물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다. 아마티는 “탄수화물 없이 건강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며, 우리 장내 미생물에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이 기사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에 게재된 줄리아 크라우치(Giulia Crouch)의 『The Happiest Diet in the World』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한국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