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알렸다.
약 한 시간 뒤, 교황청 수석 부제인 도미니크 맘베르티(Dominique Mamberti) 추기경이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Habemus Papam(우리는 교황을 모셨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새로운 교황의 이름을 발표했다.
새 교황은 미국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추기경으로, 미국인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교황직에 오른 인물이다.
발코니에 등장한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세계 앞에 자신이 선택한 교황명으로 ‘레오 14세(Pope Leo XIV)’를 밝힌 후, 첫 공개 인사를 하며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새 교황이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전통적인 관행이다. 예컨대 프란치스코 교황도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였다.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들은 종종 전임자 혹은 존경하는 과거 교황의 이름을 이어받거나, 교회의 연속성과 새 시대의 개혁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을 선택한다.
프레보스트가 선택한 ‘레오’라는 이름은 461년에 선종한 레오 1세(St. Leo I) 교황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을 잇는 것으로, 1903년 선종한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에 ‘레오’라는 교황명이 부활한 것이다.
그는 첫 연설에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이라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고, 이어 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리며 “그분은 로마를 축복했고, 부활절 아침 온 세상을 축복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 축복을 이어가겠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 악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33명의 추기경 중 4차 투표에서 선출
이번 콘클라베는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5월 7일 시작되었다.
전 세계 5개 대륙에서 모인 133명의 추기경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는 교황 선출 투표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인 수로, 5월 8일 오후 6시 8분경 네 번째 투표에서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시카고 출신의 교황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시카고 선타임즈(Chicago Sun Times)에 따르면, 그는 교육자였던 아버지 루이스(Louis)와 사서였던 어머니 밀드레드(Mildred) 사이에서 두 형제 루이스와 존(John)과 함께 자랐다. 그는 미국 최초의 교황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됐지만 동시에 페루 시민권도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다.
사크리드 하트 대학교(Sacred Heart University) 가톨릭학과 교수 찰리 길레스피(Charlie Gillepsie)는 피플(People)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출은 “전 세계를 위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성령의 부름에 추기경단이 응답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놀랍고 기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노트르담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미국학·역사학 교수 캐슬린 스프로우스 커밍스(Kathleen Sprows Cummings)도 미국 출신 교황 선출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전 지구적 교회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삶을 선교사로 해외에서 보냈고, 이탈리아와 바티칸에서도 일했다”며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세 대륙을 아우르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지금 교회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빌라노바 대학 졸업
프레보스트는 1977년 빌라노바 대학교(Villanova University)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은 미국 내 두 개뿐인 가톨릭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 고등교육기관 중 하나다.
그는 1982년 시카고 가톨릭 신학연합(Catholic Theological Union)에서 신학 석사(M.Div.) 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사제로 서품됐다.
이후 1984년 로마 성토마스 아퀴나스 교황대학(Pontifical College of St. Thomas Aquinas)에서 교회법 석사(Licentiate)를, 1987년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2014년에는 모교인 빌라노바 대학에서 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 서임
프레보스트의 교황 선출은 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전 세계 주교 선출을 담당하는 주교성성(Dicastery for Bishops) 장관과 라틴아메리카 교황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2024년 1월 공식적으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전에는 페루의 치클라요(Chiclayo) 교구 주교로 일했으며, 그 전에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직을 맡았다.
2023년 5월 바티칸 뉴스(Vatican New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선교사 주교에서 주교 임명 업무를 맡는 지금의 임무로 전환되며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이어 “아주 다른 사명이지만, 늘 ‘예’라고 대답하며 봉사를 해왔듯 이번에도 새로운 사명으로 응답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8년 반 동안 페루에서 주교로, 약 20년간 선교사로 일한 사명을 끝내고 로마에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신앙과 충돌하는 문화 비판
CBS 뉴스(CBS News)는 프레보스트가 중도적 성향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2년 주교들에게 한 연설에서 서구 언론과 대중문화가 “복음에 반하는 믿음과 행위를 향한 동정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그는 “동성애적 삶의 방식”과 “동성 커플과 입양 아동으로 구성된 대안 가족 형태” 등을 언급했다.
또한 그는 페루에서 주교로 일할 당시, 정부의 젠더 교육 정책 도입 계획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에 대한 지지는 호평을 받았다.
JD 밴스 부통령과 입장 충돌
최근에는 미국의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의 입장과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2025년 2월, 그는 자신의 엑스(X, 구 트위터) 계정에 “JD 밴스는 틀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회 정의와 전통적교리의 균형
레오 14세 교황은 사회 정의와 이민자 보호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명해 왔으며, 이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와 낙태, 안락사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여성의 사제 서품에도 반대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 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며 전통과 현대의 가치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 세계 지도자들의 환영
레오 14세 교황의 선출 소식에 전 세계 지도자들은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는 “새 교황의 리더십이 전 세계 평화와 화합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며 축하를 전했고,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도 역사적인 선출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교회 개혁과 세계적도전과제 직면
레오 14세 교황은 교회 내 성직자 성추문, 서구 사회에서의 신자 감소, 바티칸 재정 투명성 강화 등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또한, 국제 사회와의 외교적 관계 강화와 종교 간 대화 증진도 그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그의 선출은 교회가 유럽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려는 변화의 신호로 해석되며, 교황청의 세계화와 다양성 확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새 교황의 행보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