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시작은 아기 때부터
기저귀 발진, 아기 변 차트 같은 정보가 넘쳐나던 첫 산모 모임에서 간호사가 던진 한 마디는 뜻밖이었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지금 시작하세요. 절대 이르지 않아요. 자주, 꾸준히 읽어주면 아이는 책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건 평생의 선물이 될 거예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고개도 못 가누는 아이에게 배고픈 애벌레의 마지막 장면을 읽어주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을 들었다.
처음엔 하루가 너무 길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곧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좋아졌다. 도서관 방문은 하루의 하이라이트가 됐고, 매번 이케아 큰 파란 가방에 책을 한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예산 절약 산타’가 되어 공짜 선물 보따리를 아이에게 건넸고, 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책 속의 벌레, 토끼, 고래와 함께한 그 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이는 책뿐 아니라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에 감동했다. 결국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우리의 관심과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책 읽는 아이
두 살이 된 아들은 병원 대기실에서도 차분히 책을 읽었다. 다른 엄마들이 놀라 물어왔다. “어떻게 남자아이를 이렇게 책에 집중하게 하셨어요?” 나는 산모 모임에서 들은 조언을 전했고, 속으로 뿌듯했다. ‘책벌레를 만들었구나!’라고. 하지만 자만은 곧 무너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는 아직도 한 권의 챕터북을 자발적으로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다. 읽기 실력은 뛰어났고, 비문학 책은 좋아했으며, 내가 읽어주는 책은 즐겼다. 하지만 자신만의 ‘푹 빠지는 책’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해리 포터, 트리하우스 시리즈 등 다 시도했지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나는 아이가 픽션에 관심이 없다고 단정하고 거의 포기했다.그러던 중 그리스 신화에 빠진 아들에게 퍼시 잭슨을 제안했다. 내가 먼저 읽어주기 시작했고, 어느 날 긴장감 넘치는 클라이맥스에서 책을 덮었다. 아이는 “더 읽어줘!”라며 간절히 부탁했고, 나는 일부러 거절했다. 그러자 아이는 혼자 계속 읽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 열풍은 1년 동안 릭 라이어던(Rick Riordan)의 소설 22권을 섭렵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즐거움으로 픽션을 읽고 있다.
이 경험은 내게 다음 두 가지를 확신시켰다. 첫째, 아이에게 딱 맞는 책을 딱 맞는 시기에 만났을 때 마법이 일어난다. 둘째, 책벌레는 ‘한 번 만들면 끝’이 아니라는 것. 시대는 달라졌고, 책보다 덜 노력해도 재미를 줄 수 있는 디지털 기기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에게 책의 즐거움을
우리 집은 저자 두 명이 사는 ‘닥터 수스(Dr Seuss)’의 말처럼 “모든 틈과 구석에 책이 가득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세 아이 모두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큰 고비는 아이들이 막 읽기 시작할 때 찾아왔다. 우리는 그림책에서 벗어나 ‘홈 리더(Home Reader)’라는 기능 위주의 책들을 만나게 됐다.
각종 음가와 단어를 순서대로 익히게 하기 위한 이 책들은 읽고 나면 “음, 그냥 그랬어”라는 감상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기야말로 아이들이 읽기의 보람을 느껴야 할 때인데, 돌아오는 보상은 너무 밋밋했다. 책에 흥미를 느끼게 하려면, 그 노력에 상응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팩스에 대한 16쪽짜리 정보서’, ‘쌀에 대한 30쪽짜리 논픽션’ 같은 책은 오히려 아이들을 멀어지게 한다.
훈련용 책은 훈련용일 뿐
홈 리더는 훈련용 보조 바퀴와 같다. 지루하지만 필요한 단계다. 문제는 아이들이 다음 단계, 즉 진짜 즐거운 독서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학교가 예산 부족으로 오래된 책만을 반복 사용하고 있고, 호주 전역에서 학교 도서관과 사서 인력이 감소하면서 독서를 장려할 전문가의 손길조차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재미있고 적절한 책을 찾기 위해 애썼다. 홈 리더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맞으면서도 재미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Ebb & Flo 시리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노력에 보답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 설계됐다. 영어는 ‘tomb’와 ‘bomb’처럼 불규칙한 룰이 많아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독서의 즐거움이 강조되어야 한다.
의무 아닌 즐거움으로 읽기
대부분의 아이들은 언젠가 읽기 기술을 익힌다. 하지만 그 중 많은 아이들이 의무감으로만 책을 읽는다. 단순한 과제 수행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독서야말로 학업 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늘고 있다.
호주의 문해력 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 해답은 단순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더 좋은 책을, 부모는 더 적절한 책을 찾아 아이들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그것이 바로 아이를 책벌레로 만드는 길이고, 그것이야말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책벌레 만들기 10가지 팁
1.도서관은 보물 창고-큰 가방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고른 책으로 가득 채우자. 다음 번엔 부모가 책을 골라와 집에 두고, 아이가 스스로 발견하게 해보자.
2.책 선택은 아이에게 맡기자-초기에는 아이가 고른 책을 판단하지 말자. 적절한 내용이면 어떤 책이든 좋다. 독서의 즐거움이 우선이며, 그 이후에 취향을 넓혀가는 건 쉽다.
3.저절로 되진 않는다-꾸준한 노력, 즉 부모의 수고가 필요하다. 아이 친구들에게 무슨 책을 읽는지 묻고, ‘Your Kid’s Next Read’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활용하자. 이곳은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4.읽기 좋은 공간 만들기-해변, 정원, 이불 속, 욕조 등 다양한 장소에 책을 가져가자. 천막, 상자 로켓, 요새 같은 공간을 꾸며 독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
5.부모도 책을 읽자-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기대할 순 없다.
6.오디오북 활용하기-차 안에서 음악 대신 오디오북을 틀어보자. 오디오북이 독서의 흥미를 자극하는 경우도 많다.
7.혼자 읽게 돼도 계속 읽어주자-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건 읽기 능력과 상관없이 계속할 가치가 있다. 현재 12살 된 첫째와는 여전히 매일 밤 책을 읽는다. 최근엔 The Disappearing Spoon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주기율표의 역사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지만, 함께 읽으며 설명해주니 아이도 좋아한다.
8.재미있는 책으로 보완하자-홈 리더가 지루하더라도 아이가 재미있는 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렇게 독서의 세계가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알려주자.
9.논픽션도 훌륭한 출발점-픽션에 흥미가 없더라도 논픽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흥미로운 주제에서 출발해 관련 소설로 확장하는 방법도 좋다.
10.‘읽기 싫은 아이’와 ‘읽기 어려운 아이’는 다르다-공만 차고 싶은 아이와, 시력 문제나 ADHD 등으로 실제로 읽기 어려운 아이는 구분해야 한다. 아이의 독서 진행 상황이 걱정된다면 교사나 전문가와 상담하자.

필자 로라 번팅(Laura Bunting)은 20여 권 이상의 아동 도서와 초급 독서 책을 출간한 아동 문학 작가다. 남편이자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필립 번팅(Philip Bunting)과 협업하는 작품이 많다. 최근 하디 그랜트(Hardie Grant) 출판사를 통해 새로운 초급 독서 시리즈 Ebb & Flo를 출간했다.
※ 이 기사는 The Australian에 게재된 로라 번팅(Laura Bunting)의 ’10 ways to turn your child into a devoted bookworm’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