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찰스 3세(Charles III) 국왕이 동생 앤드루(Andrew)에게서 ‘왕자(prince)’ 작위를 박탈하고, 그가 수십 년간 거주해온 윈저의 로열 로지(Royal Lodge)에서 퇴거하도록 명령했다.
버킹엄궁(Buckingham Palace)은 30일(현지시간) 발표를 통해 “앤드루는 앞으로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Andrew Mountbatten-Windsor)로 불리게 되며, 샌드링엄(Sandringham) 영지 내 다른 숙소로 거처를 옮길 것”이라고 밝혔다.
샌드링엄으로 이주
궁은 성명을 통해 “불명예스러운 전 요크 공작(Duke of York)이 ‘개인 거처(alternative private accommodation)’로 이동할 예정”이라며, 이 숙소는 찰스 국왕의 사비로 마련된다고 전했다.
앤드루는 앞으로 영국 노퍽주(Norfolk)에 위치한 국왕의 사유지 샌드링엄으로 이주한다. 왕실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는 장소로도 알려진 이 저택은 155년 역사를 지닌 본관에 29개의 침실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 부지 면적은 약 2만 에이커(약 8천 헥타르), 추정 가치는 약 6천만 파운드(£60 million)에 달한다.
샌드링엄 영지에는 직원과 세입자 농부를 위한 숙소 외에도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가 윌리엄 왕세자(Prince William)와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준 앤머 홀(Anmer Hall)도 포함돼 있다.

세라 퍼거슨과의 동거 종료
궁 내부 관계자는 <더 타임스(The Times)>에 “앤드루의 전 부인 세라 퍼거슨(Sarah Ferguson)은 샌드링엄 내 다른 숙소에서 거주를 허락받았으나,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1996년 이혼 후에도 오랜 세월 동거해온 두 사람의 관계는 이번 조치로 사실상 끝나게 됐다. 앤드루의 두 딸 비아트리스 공주(Princess Beatrice)와 유제니 공주(Princess Eugenie)는 기존의 왕실 칭호를 그대로 유지한다.
정부와 왕실의 전폭적 지지
앤드루에 대한 이번 조치는 법적,헌법적 절차로 인해 다소 지연됐으나, 영국 정부와 왕실 내부, 특히 윌리엄 왕세자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찰스 국왕의 결정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타임스>는 찰스 국왕이 직접 ‘프린스’ 칭호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했으며, 앤드루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앤드루는 이미 ‘요크 공작(Duke of York)’ 작위도 잃었으나, ‘요크 가문(House of York)’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향후 군주의 동생—예를 들어 루이 왕자(Prince Louis)—가 새로 ‘요크 공작’으로 임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왕위 계승권은 유지
앤드루는 여전히 왕위 계승 서열 8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군주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역사적으로도 부적절한 군주로 평가받은 에드워드 8세(Edward VIII)가 퇴위를 강요당한 사례가 있었다.
또한 앤드루는 여전히 국왕 대리(Counsellor of State)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나, 2022년 개정된 법에 따라 ‘왕실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non-working)’ 인물은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로열 로지 퇴거 명령
버킹엄궁은 “로열 로지의 임대 계약이 그동안 앤드루에게 거주 법적 권리를 부여해왔지만, 이제 임대권 포기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앤드루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퇴거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의 관계로 인해 계속된 여론의 압박 속에서 내려졌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앤드루는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에도 로열 로지에서 엡스타인,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을 초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왕실 명예 훼손 우려”
65세인 앤드루는 이번 달 초 “나를 둘러싼 의혹이 국왕과 왕실의 공적 활동에 지장을 준다”며 요크 공작 작위를 내려놓았다.
버킹엄궁은 이날 공식 성명에서 “국왕 폐하께서 앤드루의 작위, 칭호, 영예를 모두 박탈하는 공식 절차를 개시했다”며 “앤드루는 앞으로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로 불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재는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며 “국왕 부부는 모든 형태의 학대 피해자와 생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연대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3년 끈 퇴거 논란 종결
엡스타인 스캔들 이후 약 3년간 이어진 퇴거 논란은 이번 발표로 종지부를 찍었다. 찰스 국왕은 “왕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앤드루가 로열 로지를 떠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현재 퍼거슨은 별도의 주거 계획을 마련 중이다.
버지니아 주프르 회고록 여파
이번 발표는 미국의 엡스타인 피해자 버지니아 주프르(Virginia Giuffre)의 회고록 출간 직후 나왔다. 그는 책에서 17세 때 앤드루와 세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다시 폭로했다. 앤드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으나, 2022년 주프르가 제기한 민사 성폭행 소송을 종결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급했다.
주프르는 올해 4월, 41세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엡스타인은 2019년 성매매 및 아동 인신매매 혐의로 수감 중 자살했다.

“한 평범한 소녀의 정의”
주프르의 오빠 스카이(Skye)와 올케 아만다(Amanda)는 성명을 통해 “오늘 한 평범한 미국 소녀가 진실과 용기로 한 영국 왕자를 무너뜨렸다”며 “버지니아는 자신과 수많은 생존자들을 위해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우리 가족과 생존자들은 버지니아의 뜻을 이어가며 엡스타인과 맥스웰, 그리고 그들의 공범들에게도 동일한 책임이 적용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상 거주’ 의혹까지
<더 타임스>는 최근 앤드루가 로열 로지에서 지난 20년 동안 임대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저택은 왕실 독립 재산기관인 크라운 에스테이트(Crown Estate)가 소유하며, 앤드루는 2003년 특혜성 계약을 통해 사실상 ‘무상 거주’ 혜택을 누려왔다. 이에 영국 언론들은 국왕과 앤드루 사이의 퇴거 협상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는 “의회와 버킹엄궁이 협공(pincer movement)을 펼쳐 앤드루를 윈저에서 퇴출시키려 한다”고 보도했다.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은 “윌리엄 왕세자 가족이 로열 로지 근처의 새 거처로 이주할 계획이며, 그 전에 앤드루가 퇴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국왕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