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플라스틱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호주 주요 제조업체들은 고객들에게 가격 인상과 공급 제한을 통보하며 호주 경제가 코비드19 초기와 유사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기업들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긴급 상황에서 계약 의무를 면제받는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 발동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번 공급 충격은 가계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시점에 발생해 정치·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공급망 위기
호주 주요 플라스틱 공급업체들은 이란 전쟁 격화로 산업용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르고 공급이 물량 제한될 것이라는 내용의 위기 서한을 고객들에게 발송했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공급망 지연과 재고 부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호주 경제가 “코비드2.0”에 가까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상황은 호주중앙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 이 이번 주부터 연속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발생했다. 이미 생활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에는 추가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업체들은 수년간 거래해 온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원가 상승 압박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가격 인상을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일부 기업들은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긴급 ‘불가항력’ 조항을 발동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정치적 압박
이번 공급 충격은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에게도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교역에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이 장기간 봉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는 중국에 중동 지역으로 군함을 보내도록 촉구하며 세계 교역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연방 재무장관 짐 차머스(Jim Chalmers) 는 15일 가계 생활비가 6월까지의 3개월 동안 상승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높은 유가와 이란 전쟁 악화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차머스 장관은 “이미 매우 큰 충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 충격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가격
공급업체들이 고객에게 보낸 최소 다섯 통의 서한에는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물류 병목이 가격 인상 결정의 주요 원인으로 명시돼 있다. 이 플라스틱 제품들은 건설 현장과 병원 등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되는 핵심 자재다.
호주에서 유일하게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는 비바 에너지(Viva Energy) 는 고객들에게 플라스틱 가격 인상과 제품 물량 제한 조치를 시행한다고 통보했다.
비바 에너지는 질롱 정유공장(Geelong refinery)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대상으로 공급량을 제한하면서도 핵심 산업에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중동 지역의 지속적인 상황과 폴리프로필렌 공급망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으로 인해, 비바 에너지는 전례 없는 공급 위기 속에서 공급 안정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시행할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비바 에너지는 4월 1일부터 모든 고객에게 가격 인상과 보안 관련 추가 요금, 해상 운송비, 공급망 비용 등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질롱 정유공장의 폴리프로필렌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구조적인 가격 인상도 영구적으로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에너지 장관 크리스 보웬(Chris Bowen) 은 디젤 공급 부족이 주요 도시까지 확산되자 국가 비상 연료 비축분을 방출하는 조치를 취했다.
전문가들은 호주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연료 비축량”과 자체 석유 생산 부족 때문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내 항공 요금과 건설 비용이 즉각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산업 영향
비바 에너지가 생산하는 폴리프로필렌은 생활용품, 소비재, 산업용 시트, 배관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된다.
비바 에너지는 주문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고객들에게 공급량을 제한하는 절차도 도입했다.
식품·화장품·제약용 튜브를 생산하는 임팩트 인터내셔널(Impact International) 의 대표 알렉스 라요비치(Aleks Lajovic) 는 현재 상황을 “코비드2.0”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팬데믹이 처음 시작됐을 때와 상황이 거의 동일하다”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정보를 얻거나 가격과 배송 상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라고 말했다. 라요비치는 “지금 공급망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마치 팬데믹 초기 상황과 같다”고 말했다.
가격 급등
비니덱스(Vinidex), 폴리파이프(Polypipe), 파이프메이커스 오스트레일리아(Pipemakers Australia) 등 여러 기업은 지난주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4월 납품용 플라스틱 원자재 가격이 3월 대비 최대 50% 상승했다고 밝혔다.
기존 견적은 3월 31일부로 취소되며 새로운 가격은 4월 13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임팩트 인터내셔널은 고객들에게 15% 가격 인상을 통보했으며 해상 운송비가 최대 250%까지 상승했다고 밝혔으며, 폴리파이프는 3월 23일부터 모든 배송에 24% 디젤 추가 요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에너지 취약
자원부 장관 마들렌 킹(Madeleine King)은 중동 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여러 제조업체들은 2024년 플라스틱 제조업체 케노스(Qenos) 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도록 방치한 정부의 결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노동당 정부가 제조업을 재건하고 핵심 물자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라요비치는 “케노스는 호주 시장에서 매우 큰 업체였다”며 “그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많은 기업들이 해외 공급처를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임팩트 인터내셔널은 중동, 태국, 일본에서 수지를 수입하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 공장은 원료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그 원료의 상당수가 중동에서 온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지역이 사실상 거의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입 비용이 급격히 변하고 있어 제품 가격을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량 안보
지난주 국제 유가는 이란의 중동 에너지 시설 공격 영향으로 배럴당 $US100을 넘어섰다. 이는 기록적인 규모인 4억 배럴 비축유 방출 계획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상승이다.
알바니즈 정부는 연료와 비료 공급 취약성에 대한 경고를 수년간 무시해 왔다는 이유로 “심각한 과실”과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업계는 정부에 식량 안보 계획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식품 산업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연료와 비료 위기가 2022년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식량 및 연료 안보 계획 필요성을 정부가 무시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