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신 중 파라세타몰(paracetamol-아세트아미노펜의 일종,타이레놀의 주성분) 복용이 태아의 자폐증(autism) 발생과 연관된다며 단정적으로 주장했고, 그는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삼아 임신부의 진통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전 세계 임신부들 사이에 불안과 혼란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의학계 전문가들이 이에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과학적 근거가 확립되지 않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임신부의 건강 관리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 의견
아동 자폐증 연구 전문가인 앤드루 화이트하우스(Andrew Whitehouse) 교수는 “파라세타몰 사용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일부 역학조사에서 “작고 약한 연관성(small, weak association)”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것이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과학을 오독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임신 중 파라세타몰을 복용하는 여성은 필요에 의해 복용하는 것이며, 오히려 열이나 통증을 조절하지 않을 경우 산모나 태아에게 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복용 여부의 판단은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 의사협회(Australian Medical Association, AMA) 회장 대니얼 맥멀런(Dr Danielle McMullen)은 호주 규제당국들이 파라세타몰을 임신 중 복용 가능 약물로 분류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파라세타몰은 범주 A(category A) 약물로, TGA(Therapeutic Goods Administration, 호주 의약품 규제 기관) 등에서 임신 중 사용이 안전한 약제로 평가됐다. 맥멀런 박사는 “임신 중 통증이나 발열을 다루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지로서 파라세타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약물 사용에는 주의가 필요하며, 불필요한 공포가 임신부에게 전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방송과 보건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인 노먼 스완(Norman Swan)은 트럼프 측에서 인용한 연구들이 “데이터가 엉성하고 조사 설계가 부실하다”고 질타한다. 그는 “어떤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분류됐는지 그 기준이 모호하고, 여성이 실제로 파라세타몰을 복용했는지, 복용 이유가 무엇인지도 불확실하다”며 비판했다. 또한 임신 중 발열 자체가 태아에 해로울 수 있으므로, 발열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가 중요하며, 파라세타몰은 그런 목적에서 유효한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모나시대학교(Monash University) 펠로우이자 호주국립보건의료연구위원회(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 NHMRC) 소속 한나 커크(Dr Hannah Kirk)는 자폐증이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될 수 없는 복합 신경발달장애임을 강조한다. 그는 “유전적 요인이 강하게 관여하며, 수백 개의 유전자가 자폐증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어떤 연구도 없다. 일부 연구에서는 상관관계를 보고하기도 했지만,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는 트럼프의 발표 이후 임신부들 사이에 불안이 확산된 점을 문제로 본다.
호주 및 뉴질랜드 산부인과,부인과 전문의 학회(Royal Australian and New Zealand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 RANZCOG) 의장 스콧 화이트(Scott White) 교수는 임신 중 파라세타몰 사용과 자폐증 또는 ADHD 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다수의 신뢰 높은 대규모 연구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24년 스웨덴 아동 250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역학연구를 인용했다. 이 연구는 부모의 신경다양성(neurodivergent) 진단력 및 형제관계 등 여러 교란요인을 통제한 결과, 파라세타몰 노출과 후대의 신경발달 장애 사이에 통계적 연관이 없음을 보고했다. White 교수는 “트럼프 측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다. 과학적 기준에서 볼 때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World Health Organization)는 파라세타몰과 자폐증 사이에 신뢰할 만한 연관성이 없다고 밝히며, 임신 중 파라세타몰 사용에 대한 기존 의학적 지침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영국국립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미국산부인과학회(ACOG-American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s)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잘못된 정보”로 간주하며, 임신 중 파라세타몰 사용이 안전하다는 기존 과학적 합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언론 비판
AP통신(AP News)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과학적이고 위험한 생각”으로 평가하며, 이러한 주장이 공공의 혼란을 초래하고 과학과 공공 보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영국 타임스(The Times)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대규모 연구 결과와 기존 의학적 지침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쟁점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히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본다. 임신부의 약물 복용 여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과 복용했을 때의 잠재적 위험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임신부가 발열이나 통증 조절을 위해 파라세타몰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며, 그때 과도한 불안이나 의학계에 대한 불신이 복용을 꺼리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또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와 정치권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음도 경계한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은 공포와 혼란을 낳고, 임신 중 안전한 의료조치를 망설이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의학계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임신부와 가족들에게 과학적 사실을 명확하고 정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