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인권위원회, 보고서 통해 지적… 해당 용어 ‘정의’-학교서의 교육 강화 등 권고
“악마를 처리하려면 그 (악마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You have to name the demon to slay it”. 호주 반인종차별위원회 기리다란 시바라만(Giridharan Sivaraman) 위원장이 최근 한 호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가 언급한 ‘악마’는 비유적으로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가리키며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달 둘째 주, 호주 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AHRC)가 발표한 새 보고서에 따르면 사바라만 위원장이 말한 ‘악마’는 정부 내 많은 이들이 언급을 꺼리는 단어, 바로 ‘인종차별’이다.
호주 내 인종차별 전반을 조사, 작성한 AHRC의 최근 보고서는 모든 수준의 정부(지방, 주, 연방정부)와 해당 부서가 인종차별을 식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AHRC는 지난 5년 사이, 모든 정부가 관련 정책과 프레임워크를 통해 어떻게 인종차별 문제에 대처해 왔는지를 조사했다. 이에 대한 보고서에서 시바라만 위원장은 “정부의 접근방식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정적 인종차별,
대상자는 힘이 없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서 AHRC는 국가적으로 인정되는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definition), 학교에서의 인종차별 방지 교육 제공을 포함해 6가지 권장 사항을 제시하면서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한 전략적 방향을 정부에 조언하기 위해 원주민, 문화-언어적 다양성을 가진 CALD(Culturally and Linguistically Diverse) 커뮤니티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국가 반인종차별위원회 설립을 요구했다.
아울러 AHRC는 모든 수준의 정부와 해당 부분에서 노력을 조정하기 위한 ‘사회 전체적 접근방식’을 통해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 계획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반인종차별위원회가 개발해 정부에 제출할 광범위한 국가적 프레임워크의 일부이다.
호주 원주민 니키나(Nyikina) 부족 출신으로 ‘Reconciliation Victoria’ 공동 의장 대행을 맡고 있는 에밀리 포엘리나-헌터(Emily Poelina-Hunter) 박사는 지난해 ‘Voice’ 국민투표(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도서민의 의견을 연방 정부에 반영하기 위한 자문기구 설립을 ‘헌법’에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헌법 문구를 수정해야 하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임)가 ‘반대’로 결정된 이후 특히 원주민 인종차별이 심했다는 점에서 이번 보고서 결과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앞으로의 방향을 우려했다. “지난해 국민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원주민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반인종차별 프레임워크는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에상되며, 다른 그룹에 대한 인종차별이 사라지면 수십 년 후에 나타날 낙수효과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Voice 국민투표 이후 포엘리나-헌터 박사는 “한동안 공공장소에 나가는 게 기분 상하고 모욕당하는 느낌에 굴욕감 및 위협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이 ‘부정과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른 이들과 공감할 수 없는 놀라운 무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시바라만 위원장은 “원주민, 무슬림, 유대인, 아시아인 및 기타 문화-언어적 다양성을 가진 공동체에 대한 인종적 차별과 증오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체계적인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정적으로 인종차별을 받는 대상은 원주민과 CALD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커뮤니티 그룹별
관련 ‘자금 확보’ 경쟁도…
AHRC는 또한 이번 조사에서 부정적으로 인종차별을 겪는 지역사회가 ‘이를 위한 정부 자금을 확보하고자 서로 경쟁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점도 확인했다.
반무슬림 인종차별이나 학대 사건 신고 플랫폼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Islamophobia Register Australia’ 운영자인 노라 아마스(Nora Amath) 박사는 각 커뮤니티 유사 단체들간의 정부 자금확보 경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이들 단체의 운영자금 부족은 차별에 대한 보다 공평하고 포괄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각 서비스 단체는 핵심 작업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내년에도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