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기구 반발
호주 대학들이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총리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고등교육 감독기구에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일부 대학 총장들은 대학 교육의 질 저하와 정치적 행동주의적 연구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며 “공공의 신뢰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논란의 기구는 정부가 설립을 추진 중인 호주고등교육위원회(ATEC–Australian Tertiary Education Commission)다. ATEC는 각 대학과 이른바 ‘미션 기반 협약(mission-based compacts)’을 체결해 대학 재정 지원과 학생 정원을 관리·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대학들은 이 과정에서 연방 교육부 장관의 권한이 과도하게 강화될 수 있다며, 법안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학위 가치 논란
디킨대학교(Deakin University) 부총장인 이언 마틴(Iain Martin)은 상원 교육·고용위원회(Senate Education and Employment Committee)에 제출한 증언에서 대학이 직면한 “실질적인 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대중은 대학 학위의 가치에 점점 회의적이 되고 있다”며, “너무 많은 경우 연구 방향이나 교육 포트폴리오가 사회적 필요보다는 대학 내부의 선호, 즉 세계대학순위, 논문 수, 명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업적 의사결정이 대학의 핵심 책무를 압도하는 사례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마틴 부총장은 또 “호주 국민들은 이미 이를 간파했다”며, “학문적 기준과 교육의 실제 질에 대한 냉소, 표현의 자유나 연구 소통에서 나타나는 이념적 편향, 그리고 논란이나 복잡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명확한 언어 사용을 회피하는 대학 문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 붕괴 위기
웨스턴시드니대학교(Western Sydney University) 역시 ATEC가 “지역사회 신뢰 회복”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상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강조했다. 이 대학의 부총장은 헌법학 교수인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다.
대학은 “고등교육 부문은 현재 지역사회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명시했다. 의견서는 현행 재정·규제 체계가 국제학생 수입에 대한 과도한 의존, 대학의 과도한 기업화 인식, 거버넌스 실패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웨스턴시드니대학교는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재정 경로를 제공하기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ATEC가 학생을 “시스템의 중심”에 둬야 한다며, “부모의 재정 지원, 이른바 ‘부모 지갑’에 의존할 수 없는 저소득·형평성 계층 학생들이 과도한 재정 압박과 불안정에 노출되는 ‘이중 트랙’ 고등교육 구조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관 권한 논쟁
호주대학협의회(UA–Universities Australia)는 ATEC 설립 법안이 연방 교육부 장관인 제이슨 클레어(Jason Clare)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UA는 “장관이 ATEC의 업무와 출판물까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기구의 신뢰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UA는 장관의 출판 거부권 삭제, ATEC의 인사·자원 통제권 보장, 초기 단계부터 추가 위원을 포함해 전문성과 경험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사회적 인식
이언 마틴 부총장은 상원에 제출한 디킨대학교의 고등교육 개혁 백서도 함께 공개했다. 해당 문서는 호주 대학이 현재 “약한 사회적 인가(social licence)” 상태에 있으며, 대중에게는 “좌파의 장난감(plaything of the Left)”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서는 “행동이든 무행동이든, 대학은 좌파 성향의 도심 엘리트 문화 집단이 사회·경제적 자본을 독점한 채 정치화된 공간을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생활비 상승, 세대 간 불평등 심화, 국가 미래 번영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결속 붕괴를 심화시키며 대학에 대한 신뢰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의 사회적 인가는 취약하며, 완전히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문서는 경고했다.

연구 윤리 강조
마틴 부총장은 백서에서 연구 윤리와 질적 기준 회복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현재 시스템은 ‘퍼블리시 오어 페리시(publish or perish)’라는 경로로 상징되는 양적 성과 중심 구조에 치우쳐 있다”며, “이제는 양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질, 의미 있는 문제 제기, 실제 영향력을 지닌 연구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 논란
마틴 부총장은 대학이 “활동가의 공간이 됐다”는 비판에 대해 일부는 “정보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최근 공개적으로 드러난 몇몇 사건에서 그러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한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인용하거나 인정하지 않겠다는 연구자들이 존재한다”며,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학문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연구비 사례
대표적 사례로 반이스라엘 성향 활동가로 알려진 란다 압델파타(Randa Abdel-Fattah) 박사가 언급됐다.
그는 지난해 퀸즐랜드공과대학교(QUT–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열린 반인종차별 심포지엄에서 “가자(Gaza) 사태에 침묵한 연구자는 아무리 권위 있어도 인용하지 않겠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발언했다.
이후 그가 받은 호주연구위원회(ARC–Australian Research Council) 연구비 $890,000은 제이슨 클레어 장관의 요청으로 10개월간 중단됐다. 그러나 소속 기관인 맥쿼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가 조사 끝에 위법 행위가 없다고 결론내리면서, 해당 연구비는 지난달 복원됐다.
학문 자유 수호
맥쿼리대학교는 상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ATEC 법안에 “학문적 자유에 대한 명시적 보호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ATEC와 대학 간 체결될 ‘협약’은 교과과정, 평가, 입학 기준 등 학문적 사안에 대해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최소 범위 이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엘리트대 우려
호주 명문대 연합(Go8–Group of Eight) 역시 ATEC가 정부로부터 독립되지 않으면 “관료주의적 층위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o8은 ATEC가 생산성위원회(Productivity Commission)처럼 장관 요청 없이도 자체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장관 승인 없이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영 자율성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University of New South Wales)는 ATEC가 자체 직원을 직접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과도한 미시 관리(micromanagement)를 피해야 각 대학이 서로 다른 사명, 환경, 학생 구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기술대학네트워크(ATN–Australian Technology Network of Universities) 또한 ATEC가 연방 교육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력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입장을 상원에 전달했다.
이경미(Caty)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