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으면 의사로부터 반드시 가족력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가족 중 특별한 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있으면 같은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족력이란 3대에 걸친 직계가족 또는 사촌 내에서 같은 질병을 앓은 환자가 2명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유전과 가족력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유전은 특정 유전 정보가 전달돼 질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다운증후군이나 혈우병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족력은 유전, 생활습관,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암,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이 가족력과 매우 관련이 깊다. 유전질환의 경우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예방은 불가능한 반면, 가족력은 조기진단이나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발병 위험성을 줄이고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 고혈압·심혈관질환은 대물림 된다
54년동안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가족력이 고혈압 발병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매우 유명한 연구가 있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이 당시 의대생이었던 남성 1160명을 대상으로 가족력을 확인하고 1947년부터 2001년까지 꾸준히 혈압 측정 및 건강에 관한 질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연구팀은 고혈압 가족력이 있는 그룹과 가족력이 없는 그룹의 고혈압 발병 위험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양쪽 부모 모두 고혈압인 경우 고혈압 발병위험은 2.4배 높았으며, 어머니만 고혈압인 경우에는 1.5배, 아버지만 고혈압인 경우는 1.8배 더 높았다. 특히, 양쪽 부모가 모두 55세 이전에 고혈압을 진단받은 경우 그 아들의 고혈압 발병 위험은 6.2배 높았으며, 이들이 35세에 고혈압을 진단받을 가능성은 무려 20배 더 높았다.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고혈압을 포함한 심혈관질환이 대물림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13세~19세 청소년 554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부모가 고혈압이 있을 경우 자녀의 고혈압 위험은 3.05배 더 높아졌다. 참여자들의 16.2%에서 부모의 고혈압 병력이 확인되었는데, 이럴 경우 자녀의 과체중 위험은 2.08배, 비만은 2.11배, 복부비만 2.36배, 지방간 등 간기능 장애 2.86배가 더 높아지는 등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부부는 병도 닮는다
함께 살고 있는 부부들은 실제로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를 공유하게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김영식 교수팀은 45세~75세의 한국인 부부 520쌍을 대상으로 심혈관 위험인자에 대한 배우자의 일치성 연구를 진행했다. 한쪽 배우자에게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으면 다른 배우자에게 따라 나타날 확률은 일반적으로 고혈압 고지혈증이 발생할 확률보다 각각 2배, 2.5배 더 높았다. 한쪽 배우자에게 우울증과 비만이 있을 경우 배우자에게 같은 위험도가 있을 가능성이 각각 3.8배, 1.7배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부부가 비슷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공유하면서 질병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쪽 배우자가 아침 식사를 거르면 다른 배우자도 식사를 거를 확률이 7배 더 높아지고, 운동부족 위험도 2.4배 더 높아지는 등 이 연구는 부부의 생활패턴이 닮아가는 만큼 같은 질병을 공유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가족력에서 탈출하려면?
가족력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젊은 나이에 고혈압, 고지혈증이 생기면 혈관 노화가 본격화되는 중년기에 들어 심뇌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이는 다시 노년기의 대표적인 질환인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 발병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혈관 질환을 미리 예방하고, 최대한 빠르게 관리하고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심장협회(AHA)에서는 모든 심혈관질환의 80%이상이 건강한 생활습관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다며 8가지 행동양식을 제시했다.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을 충분히 섭취하고 나트륨과 붉은 육류, 가공육, 가당음료의 섭취를 줄이는 건강한 식생활 ▲주당 150분 이상의 중등도 신체활동 또는 주당 75분의 격렬한 신체활동 ▲금연 ▲성인 평균 7~9시간의 수면 ▲체중유지 ▲적정 콜레스테롤 수치 유지 ▲혈압 관리 ▲혈당관리 등을 지키면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혈당수치를 자주 체크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총콜레스테롤 수치 대신 비-HDL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니터링 할 것, 혈압은 120/80mmHg미만을 최적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