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대표적인 아동 젠더의학 전문가가 법원 증언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는 판결이 내려지며, 국가 주요 젠더 클리닉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 판결은 호주에서 젠더 확정 치료 모델에 대해 현직 판사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한 사례로 기록됐다.
앤드루 스트럼(Andrew Strum) 판사는 성별 정체성 혼란(gender dysphoria)을 겪고 있는 12세 아동의 어머니가 사춘기 호르몬 억제제를 처방하려 하자, 이에 반대한 아버지의 입장을 받아들여, 어머니의 양육권을 박탈하고 치료 접근을 사실상 차단했다.
판결문에서 스트럼 판사는 젠더에 대한 병원의 접근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본인의 성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아동을 무조건 ‘확정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은 “이상하게 이분법적”이라고 지적했다.
진단 없이 6년 치료, 법원 개입 뒤 진단 진행
이 아동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며, 어머니는 아동이 성별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아버지는 “아이는 아이답게 살게 해야 한다”며 치료 유보를 주장했다.
병원은 이 아이를 6세부터 치료했지만 법원 절차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성별 정체성 혼란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
스트럼 판사는 아동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성장과 경험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며, “이 시점에서 특정한 길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한 명의 어린 아동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균형 잡힌 이해가 쌓이면서 이 아동이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하며, 아이에게 해가 될 위험은 용납될 수 없다.” 스트럼 판사는 성별 정체성 혼란이 “불변의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며, 호주의 젠더 확정 치료 모델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하는 ‘호주 치료 및 돌봄 표준지침(Australian Standards of Care)’과는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
특히 스트럼 판사는 이 사건에서 증인으로 나선 호주 최고 수준의 젠더의학 전문가 중 한 명인 ‘엘(Associate Professor L)’ 교수가 영국의 ‘캐스 리뷰(Cass Review)’에 대해 허위이거나 중요한 내용을 생략한 증언을 했다고 판단했다.
캐스 리뷰는 성별 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동에 대한 약물 치료에 제한을 둘 것을 권고한 보고서다. “엘 교수의 증언은 전문가 증인으로서의 의무에 위배되며,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 자료를 부각시키고 반대되는 자료를 배제하거나 누락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또한, 엘 교수와 동료 의사 엔(Dr N)은 성별 정체성이 “내면의 것이며 외부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는 어머니 측의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그에 대한 실증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성인 트랜스젠더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했다고 법원은 지적했다.
스트럼 판사는 이 과정에서 캐스 보고서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지만, 피터 트리(Peter Tree) 판사는 지난해 다른 판결에서 이 보고서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스트럼 판사는 이에 대해 “구체적 근거나 논리 없이 추측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스트럼 판사는 멜번 로열 아동병원(Royal Children’s Hospital Melbourne)이 개발한 호주 치료 및 돌봄 표준지침이 사실상 국가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연방정부나 주정부, 보건부 장관 등 그 어떤 공공기관의 공식 승인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병원이 아동에 대해 6년 동안 정기적으로 진료하면서도 신경심리, 사회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생물심리사회적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재판 전 급하게 진단, 진단 시기 ‘우연 아냐’
엔 박사는 재판이 다가오자 진단 도구를 사용해 진단을 내렸다고 증언했으며, 이는 재판 일정이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어머니가 사춘기 호르몬 억제제를 신청하는 데 필요한 진단을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의심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고 봤다. “진단 없이는 어머니가 치료 신청을 진지하게 추진하거나 성공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조건 인정은 위험, 전문가 접근법 비판
스트럼 판사는 엔 박사가 “남성인 아동이 본인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면, 그 말만으로도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점도 비판했다. 그는 “전환 치료나 교정 치료를 지지하지 않지만, 아직 어린 아동에게 무조건적인 젠더 인정만을 허용하고 질문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분법적 접근은 문제”라고 밝혔다.
아버지,젠더표현 허용, 폭력 의혹 근거 없어
법원은 아버지에 대한 가정폭력 의혹은 근거 없다고 판단했으며, 오히려 아버지가 “섬세하고 배려 깊은 부모”로, 아이의 젠더 표현을 억압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원할 경우 여성용 속옷이나 치마, 스커트, 스커트+반바지(skorts), 레깅스 등 다양한 옷을 입고, 긴 머리를 묶고 머리핀을 꽂는 것도 허용해왔다. 중성적인 학교 교복도 입도록 했다.”
법원은 결국 병원의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머니가 아이의 젠더 유동성을 이용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훼손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스트럼 판사는 “법원은 지역사회의 의견이나 이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증거에 기반해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이념은 법의 적용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이번 판결은 아동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어린 나이에 성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아동에게 무조건적인 성별 전환을 허용하는 것은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이다. 모든 아동에게 이러한 결정은 신중하게 내려져야 하며, 성급한 의료적 조치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의 성별에 대한 탐구는 시간이 필요하며, 성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아동에게 반드시 가장 적합한 전문가의 조언이 중요하다.
이경미 기자 kyungmi@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