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소용돌이(와渦)를 꿰뚫는 예리한 도끼(부釜) 논평
(시드니=한국신문) 정동철 기자 = 식민은행, 식민호텔, 식민유치원, 식민조명, 식민인쇄, 식민보험…
28년 전 호주에 이민 왔을 때였다. TV 광고나 길거리 간판에서 ‘식민’(Colonial)이라는 단어를 보면 불편했다. 영국 통치를 받았던 식민지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나? 한국인에게 ‘식민’은 국권을 강탈당한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욕되고 부끄러운 말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입장에 서기 어려운 것처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도 피해 사실에 억눌려 가해자 시선을 헤아리기 어렵다. 식민을 당한 입장과 식민을 한 입장은 다르다. 이편에서는 치욕인데 반대편에서는 자랑일 수 있다.
영국 백인들은 ‘식민’을 짐승과 별 차이 없던 호주에 문명의 빛을 비춘 개척과 진보라고 기억, 아니 기념한다. 1788년 영국 제1함대가 시드니에 도착한 이래 지금까지 호주에서 ‘식민’은 부끄럽지 않았다. 처한 입장과 보는 관점에 따라 언어는 물론 역사를 다르게 기록하고 주장하고 심지어 왜곡 조작한다.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장에서 일제시대 한반도인의 국적을 두고 거센 논란이 일었다. 나라를 잃고 일본 제국에 편입되었으니 당연히 일본 국적이라는 주장과 을사늑약을 포함해 여러 강제성을 띤 조약들이 광복 후에 무효가 됐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으니 한국 국적이라는 견해가 정면 충돌했다. 국적 논란은 영토, 주권, 국민 3대 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해 임정이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건국절 논쟁과 엮여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호주에서 ‘식민’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쓰는 걸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거북스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역사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거 사실과 현재 해석 사이 어느 한 지점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다. 현재는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현재의 해석 역시 늘 움직인다. 과거 사실조차 누군가 자기 해석을 거쳐 남겨 놓은 기록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객관성을 갖지 못한다. 결국 역사를 구성하는 사실과 해석 모두 크게 보아 또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 결과이다.
해석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해석은 의도하든 않든 반드시 미래를 향한 목적, 의도, 가치가 개입된다. 역사 논쟁은 해석의 충돌이며 보다 본질적으로 목적, 의도, 가치의 전쟁이다. 조선시대 논쟁을 보면 맨날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라고 대는 게 어느 시대 어떤 나라 왕이 이랬네 저랬네 하는 역사 놀음이다. 지난 일을 교훈 삼아 지금을 바로 알고 앞으로 올 날을 대비하는 거야 지당하고 마땅하다. 현실 정치는 자주 시간 여행을 떠나 지난 역사를 온통 조잡한 싸움판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인의 국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의미와 가치가 없다. 일제시대 한반도인은 민족 집단 차원에서 스스로의 국적을 주장할 수 있는 독자 권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강제 권력에 의해 그때그때 규정 당하는 신세였다. 대동아 전쟁에 한반도인을 동원할 때는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가 횡행했다. 일본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박탈할 때는 ‘반도인’이라고 차별했다. 소수는 출세해서 일본인보다 나은 대우를 누렸고, 대부분은 언제든 노비보다 못한 상태로 떨어질 위험 아래 반도인으로 살았다.
오늘날 국적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과 논쟁으로 그들이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오욕과 핍진의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일본 국적이라고 더 수치스러울 것도 없고, 한국 국적이라고 더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그저 싸우지 못해 혈안이 된 철없는 자손에게 죽도록 결말이 나지 않을 먹음직스러운 싸움거리일 뿐이다. 아무리 극한 싸움을 즐겨도 국권을 잃고 눈치 보며 살다가 영면에 든 조상의 국적까지 싸움판으로 끌어 들이는 짓은 지극히 삿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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