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오딧세이
드디어 손석희가 일을 치고 말았다. 비범해 보이는 인상이 언젠가 크게 ‘한 건’ 할 듯 보이더니 결국 기어이 하고야 마는 악바리 근성을 보여주었다. 보수 정치인들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더라면 진즉에 나서서 그를 좀 회유했어야 할 것을, 그 정도의 혜안을 가진 이가 없었던가 보다. 하여간 그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은 매일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필자는 요새 불면증이 걸렸다. 밤 늦게까지 그의 말을 경청하다가 잠들기 전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시절이 있었을까?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뉴스들은 어지간한 영화, 드라마보다도 스펙터클하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상관견관 위화백단(傷官見官 爲禍百端)’의 주인공 손석희를 보며 필자는 오늘도 명리학의 한 수를 배운다.
‘상관견관’은 춘추전국시대의 고사로부터 연유하였다.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의 전국 7웅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 극도의 혼란상을 틈타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정국은 혼미하던 때였다. 마침 위나라에는 오기라는 대장군이 있었는데 오기는 원래 잔혹한 성미였지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졸병의 피고름을 직접 빨아내는가 하면 부하들과 같은 식사를 하고 매우 검소한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켜 위나라의 군대를 강병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가 대장군이 되기 전부터 이미 군대는 기강이 해이해진 상태였다. 비리가 판치고 뇌물이 오가는 등, 승진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모를 자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관의 집에 찾아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개가 죽으면 눈물을 흘리며 관을 짜 장례까지 지내주는 작태를 보였다. 물론 처음 이 발상을 한 사람은 관 안에 뇌물을 듬뿍 넣어 특진을 했을 터이고 사람들이 점차 이 방법을 모방하여 개의 장례식 관이 요즘의 사과박스처럼 뇌물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었을 것이다.
오기장군은 이 폐단을 바로잡았다. 뇌물을 주고 받는 행위를 한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고 개를 장례지내는 풍토는 곧 사라졌다. 또한 그는 위왕에게 상소를 올려 법률을 제정케 했다. 상소는 “상사의 개가 죽으면 관을 만들어 바칠 정도로 풍기가 문란해 결국 위나라의 안녕을 해하는 근원이 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상관견관 위화백단(上官犬棺 衛禍百端: 상관 개의 장례식 관으로 인한 위나라의 재앙은 백단에 이른다)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으며, 명리학에선 이를 차용하여 필자가 첫머리에 언급한 상관견관 위화백단(傷官見官 爲禍百端: 상관이 정관을 흔들면 그 화가 극에 이른다)이라는 명리학의 전문용어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상관이란 관이라는 제도와 규칙, 법규를 고치려 하는 개혁의 기질로, 나쁘게 풀리면 무법자요, 잘 사용하면 인습과 제도를 발전시키는 혁명가의 별이 된다. 흔히 이 별을 타고난 많은 언론인들이 그 ‘상관적 방자함’으로 인해 욕을 먹곤 하는데 손석희야말로 그 혁신적 기질을 제대로 실천한 대표 언론인이라 할 수 있겠다.
사주를 보니 과연 그는 국가를 상대로 상관을 써먹는 사람이다. 본시 상관이 발달하면 용모가 준수하고 언변의 귀재가 되는데 손석희의 논리와 팩트로 무장한 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상관은 상관이다. 그의 지적은 때로 장미의 가시처럼 화려하고 날카롭다. 포커스가 빗나간 기자들의 보고는 반드시 고치고 넘어가고 정치인들의 어리석은 말실수엔 신랄한 촌평을 가한다. 주어진 대본만 줄줄 읽어대는 범상한 아나운서가 아닌 것이다. 한편 그는 태양 아래 빛나는 화초격으로 일종의 연예인이다. 요새는 배우 뺨치게 핸섬한 남자 앵커들도 많다지만 그가 데뷔했던 1980년대의 앵커들은 그다지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신뢰가 가는 인상이거나 지적인 이미지로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에 비하면 손석희는 도저히 6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외모인데다 평생 ‘안티’없이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니, 말하자면 그는 연예인급 앵커였던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주를 타고난지라 그 분야에선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명리학에선 위화백단이라는 말까지 차용하며 상관성을 그토록 경계하였을까? 이는 고대 중국의 사회구조 때문이었다. 대체로 옛날에는 관리가 되는 것이 입신의 수단이었다. 이보다 더 유리한 길은 없었기에 관을 흠집내는 상관을 매우 불길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가령 사주에 상관이 있는 자는 직장이나 주거지의 이동이 잦다. 끼가 많아서 직장생활을 고정적으로 하기 어렵고 본인 스스로도 조금만 뭔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욱하는 성질을 드러내거나 바로 그만두어 버리기 쉽다. 윗사람의 비리와 결점을 개선하려드니 예의가 없다는 평판을 듣고, ‘찍힐’ 가능성도 다분하다. 예를 들면 노조를 결성하거나 기존 노조에 가입해 열심히 투쟁하는 사람들의 사주엔 반드시 상관이 있는데, 손석희도 1992년 MBC 노조 파업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된 적이 있었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면 전설적인 역술가 박재현 선생을 곁에 두고 지원자의 사주와 관상을 보게 했다고 하는데 상관을 가진 자가 탈락 1순위였을 것이 분명하다.
말년 상관은 더욱 위태롭다. 실제로 상관성을 격하게 쓰다가 안 좋게 끝난 사례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다. 젊어서 쓰는 상관은 개혁이지만 말년에 상관을 잘못 휘두르면 평생 쌓아온 커리어에 금이 간다. 김재규는 대통령을 잡았다. 물론 손석희도 대통령을 ‘열심히’ 잡고 있지만 김재규와는 사주의 격이 다르다. 전자는 자신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상관성이 무법이 되어 버린 반면 후자는 자신의 상관을 적절히 조종하여 시국의 대의와 명분에 그르침 없이 사용했다. 그러므로 상관성이 늘 불길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말년에 상관을 잘 쓰는 자는 후학을 양성하거나 아랫사람들을 잘 챙긴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적용하자면, 이유 없이 매를 들고 다니며 온 동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괴팍한 촌로는 상관을 잘못 쓰는 자이다. 반대로 온후하되 회초리를 쳐가며 엄격히 가르치는 훈장은 상관을 매우 아름답게 쓰는 경우인 것이다. 요컨대 상관은 쓰기 나름이다. 손석희는 앞으로 미래의 정의로운 언론인들을 배출하는데 여생을 바칠 것 같다.
현대는 상관을 잘 쓰면 발복하는 시대이다. 재치와 말담으로 유명인사가 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던가? 방송인, 정치인, 지식인, 심지어 성직자와 역술가들도 말재주가 있어야 인기가 있고 사람을 끈다. 그러니 자신의 사주에 상관이 있다면 길한 방향으로 쓰도록 후천적 노력과 수양이 겸비되어야 한다. 손석희는 평생 공부와 사유를 통해 자신의 혀를 통제했다. 메인 앵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보도국 사장도 아무나 올라가는 위치가 아니다. 타고난 그릇이 큰데다 광활한 무대에서 활동하는 운명이라 언젠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것 같더니 이번 일을 계기로 그의 이름 석자는 외국의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정국은 손석희의 말 한마디에 하루에도 십 수번씩 요동을 쳤다. 그의 오딧세이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오딧세이: 트로이의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모험담을 그린 고대 그리스의 대 서사시.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0434 262 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