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붕괴에 대한 대비가 있는가
대학 전공이었던 국제정치학은 국방과 함께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거창한 무게와 실용 때문에 매우 매력 있는 인문학이기는 하나 후에 알게 된대로 사회과학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이라면 적어도 잴 수 있는 변수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장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나 이건 그럴 수가 없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한반도 정세는 전형적이다. 실증적이 되기 위하여는 북한의 최고 통치자와 그를 떠받는 권력 실세들을 찾아가 면접도 하고 다른 현장 자료도 모을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림도 없다. 모두 극비 중 극비다.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는 주변 강대국의 관계 변화에 따라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뀔 만큼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북한의 경제는 폭삭 망하고 인민의 충성은 바닥이나 정권이 곧 무너질 것 같이 전문가들이 텔레비전과 유튜브에 나와 점쳤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최고통치자 푸틴이 평양에 갑자기 찾아와 양국 간 새로운 협조 관계를 맺어 북한은 당분간 숨통이 트인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렵게 치르고 있는 러시아는 북한의 무기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 반대급부로 군사 기술과 식량을 보내어 배고픈 북한주민을 도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전혀 짐작못한 건 아니나 역시 돌발 변수다.
이런 변수의 예측 불허와 비과학성 때문일 것이다. 전쟁, 평화, 핵, 통일과 같은 거창한 국가적 이슈가 학술적 연구와 이론보다 사실상 실무자와 경험가들의 점치기와 시나리오에 따라 춤추는 것을 보게 된다.
힘의 공백
내가 대학 때 배운 국제정치학의 기본 이론과 테마는 국제관계의 근본은 힘이어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힘은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힘의 공백(Power vacuum)이 생기면 강대국이 그 빈 데를 메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관계에서 각 국가가 추구하는 목표는 도덕(Moralism)이 아니라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며 철두철미 현실주의(Realism)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장치는 무력에 의한 세력균형(The balance of power)뿐이다. 그건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침략을 받았던 한반도의 사례가 잘 증명한다.
이런 역사적 실제와 현실 경험에 의한 정보와 지식의 취합인 이 분야 이론은 내가 대학을 다닌 70년 전이나 지금 한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럼에도 서두에서 언급한 이 분야의 중요성, 달리 말해서 우리의 경우 온 국민이 남북문제에 대하여 밤낮 가져야 하는 비상한 관심과 우려 때문에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북한 전문가들 모두가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텔레비전과 유튜브 화면 하나만 봐도 그렇다. 학자 말고도 과거 그 많은 남북회담에 한번 참석해본 정부 대표, 언론인, 휴전선에서 지낸 적이 있는 군 사단장들이 한반도 관련 연구소나 센터장 이름으로 출연하는 장면들이 그런 것 아닌가. 6.25전쟁 발발한 몇 주년이 돌아오면 의례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개인 회고록이나 인생 역전 이야기들도 그렇다.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풍부한 한반도 관련 보도와 영상과 자료와 논쟁들은 정말 중요한 한 부분을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이미 힘의 공백을 말했지만 작금의 남북관계 가운데 앞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큰 돌발 사태는 해방 정국에 이어 한반도에 다시 한번 올 수 있는 바로 그런 공백이다.
해방 전에 어렵게 항일 운동을 벌인 민족 투사가 많았다. 그러나 일제가 물러난 후 힘의 공백에 대비해서 국민을 계도한 지도자가 없었기에 4.3제주 참상과 극심한 사회 혼란 사태가 일어난 것 아닌가.
한반도 전문가로 알려진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랜코브 국민대학 교수는 시드니에서 한때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통일이 올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아마도 그는 독일 통일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그게 그렇게 간단할까. 그 돌발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작금의 한반도 연구나 보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 보인다. 특히 그런 사태에 대한 대비는 국민적 역량이 관건이어서 국민을 향한 심층적 교육 프로가 절실한데 그렇다.
1956년 헝가리 사태
개인적 견해이지만, 나는 북한 정권의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믿는다. 중세나 신라시대가 아닌 현근대사에서 북한과 같은 정권이 영원히 오래 간 적이 없다. 그러나 붕괴가 시작되면 독일식 평화 통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국경을 같이 한 막강한 공산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2.3학년 때인 1956년 헝가리에서 공산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유혈 폭동을 기억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소련군이 이미 주둔해 있던 병력과 함께 탱크 부대를 부다페스트에 곧바로 진격 시켜 많은 인명 사상을 낸 후 이 내란 사태를 마무리 했었다. 최근 북-러 밀착으로 한반도에도 그런 가능성이 커졌다.
그 힘의 공백 상태에서 이어질 몇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는 하나는 북한이 중국식 개방 모델을 받아드리는 평화적 정권 이양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란과 인접국 개입 상태에서 그 불똥이 남쪽으로 튄다는 가상이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길은 국민의 철통 같은 결속인데 지금과 같은 정치 세력 간 이해 충돌에 더하여 영호남 지역감정으로 4분 5열이 된 한국사회의 실정으로 봐 심히 걱정스럽다.
김삼오 / 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