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 비교 연구, 과학교육의 폭과 깊이 부족… 교사지침도 거의 없고 학교간 격차도
호주 학교들의 과학 커리큘럼은 폭과 깊이가 부족하고 교사들에게도 교육 내용 지침을 거의 제공하지 않아 선진국가들 학생에 크게 뒤처지는 학업 성과를 거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교 가능한 7개 국가를 대상으로 호주 과학 커리큘럼을 벤치마킹한 주요 연구에 따르면 호주는 다른 국가의 교육 시스템에 비해 교육내용이 절반에 불과하며 일부 필수 코스를 생략하거나 낮은 수준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주요 국가 시스템에 비해 몇 년 뒤늦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빅토리아(Victoria) 주의 과학 커리큘럼은 호주 전국에서 교육 내용이 가장 적다.
정부 교육정책을 위해 연구 작업을 수행하는 교육 컨설팅 회사 ‘Learning First’의 이번 연구는 과학교육 개발 및 검토의 전체 과정이 ‘놀랍도록 열악’(shockingly poor)했으며 혜택을 받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간 격차도 너무 벌어진다며 “커리큘럼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NSW와 빅토리아는 각 학교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조정하지만 이외 정부관할 지역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보장된 학습 콘텐츠의 기본 수준을 설정하는 국가 버전을 따른다.
NSW의 최신 과학 과목 강의 계획서는 일부 상위권 국가와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교육과정 업데이트 과정에 있는 빅토리아는 이미 부족한 국가의 교육에 비해 훨씬 적은 내용을 제공하는 실정이다.
NSW 학교들은 국제 시험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지난 20년 동안 부진했던 것을 해결하고자 주 전체 교육과정을 한 세대에 한 번씩 검토한 후 현재 모든 과목에 걸쳐 새로운 강의 계획서를 도입하고 있다. NSW의 각 학교는 호주 국가 커리큘럼이 아닌, NSW 교육표준기관(NSW Education Standards Authority. NESA)의 강의 계획서를 사용한다.
빅토리아는 내년도 새로운 과학 커리큘럼을 발표한 예정이다. Learning First의 벤 젠슨(Ben Jensen) 대표는 “다음 버전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며 “커리큘럼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빅토리아 주 교사들에게 맡기는 것(각 학교 자체적으로 커리큘럼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Learning First는 이번 연구에서 과학 커리큘럼 자료를 검토했다. 과학 과목의 경우 국가마다 광범위하게 일관되고 영어 등의 과목보다 쉽게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주 커리큘럼을 영국, 홍콩, 일본, 상가포르, 미국, 캐나다 알버타 및 퀘벡 주(provinces of Alberta and Quebec)의 커리큘럼과 비교했다.
그 결과 각국 과학 커리큘럼이 평균 74개의 주제를 다루는 반면 호주는 첫 9년 동안 44개 주제로 다른 국가가 강의하는 내용의 절번 정도만 포함됐다.
또한 강의 콘텐츠의 순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이것이 효과적인 교수(teaching)와 학습(learning)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NSW 주의 경우 개편의 일환으로 도입된 7-10학년 대상의 새 과학 강의 계획서에는 이전에 비해 50% 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과학 과목 상위 성적을 거두는 국가들의 커리큘럼과 일치했다. 빅토리아는 호주 국가버전보다 6%, 다른 국가 시스템의 평균 내용과 비교해서는 59%가 적다.
젠슨 대표는 “NSW의 새로운 과학 커리큘럼은 호주 국가 버전보다 훨씬 더 포괄적으로, 이전의 많은 결함을 해결했으며 이제 세계 최고의 시스템과도 비교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과정의 질은 학생들의 학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커리큘럼에 그 교육 내용이 없다면 사실상 학생들에게 해당 과목을 배우지 않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게 된다”는 우려를 전했다.
호주 커리큘럼 평가 당국인 ‘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 대변인은 “과학 교육과정은 공공 협의뿐 아니라 내용, 교육과정 및 교육 전문가의 피드백을 포함, ‘중대한 검토’를 거친 후 각 주 및 테러토리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검토 프로세스에는 국제 벤치마킹도 포함되었으며, 그 결과 호주 버전의 경우 전반적인 교육 내용의 폭과 깊이, 엄격성 측면에서 거의 동등한 것으로 평가됐다.
수학, 읽기, 과학 부문에서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생 평가 프로그램(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에 따르면 호주 학생들의 과학 과목 학업 성과는 2012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 치러진 PISA 평가 결과는 이달 5일(화) 발표될 예정이다.
호주 정책 싱크탱크 그라탄연구소(Grattan Institute)의 교육 프로그램 책임자 조다나 헌터(Jordana Hunter) 박사는 호주 교육 커리큘럼에 대해 “교사들로 하여금 공백을 메우도록 방대한 여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은 호주의 PISA 평가 하락을 가져온 요인일 뿐이지만 상위권 국가에서는 이 커리큘럼의 엄격성과 지식에 더 큰 초점을 두고, 수업 계획에 대한 학교 전체의 접근방식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호주의 커리큘럼은 대부분 과목에서 광범위한 방향을 제공하므로 교사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교실마다 품질과 적용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며 “도전은 과학에만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빅토리아 커리큘럼 평가 당국인 ‘Victorian Curriculum and Assessment Authority(VCAA)’ 대변인은 호주 커리큘럼이 개정된 VIC 주 10학년 교육과정의 다음 버전이 개발되었음을 밝히면서 현재 교육과정이나 향후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VCAA는 Learning First의 보고서가 나오면 검토할 것임을 전했다.
NSW 교육 당국은 제프 마스터스(Geoff Masters) 교수가 2년간 검토한 후 2020년 발표한 주 커리큘럼 변경이 ‘학생들의 학습 방법에 대한 가장 최근의 증거기반으로’ 교육 계획안을 다시 작성하는 로드맵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을 위한 NSW의 새로운 과학 과목 강의 계획서는 2024년 나올 예정이며, 7-10학년 계획서는 올 연말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NESA 대변인은 “커리큘럼 개발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하며, 지식을 전달할 수 있고 실용적이며 학습의 깊이를 촉진하고 학생들을 위한 최상의 결과를 지원하는 새로운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