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가사노동 불평등, ‘여성 경제활동 위축 요인’ 지목
호주 여성들이 매주 평균 5~14시간의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남성들은 5시간에 불과,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호주 사회학자 레아 루페너(Leah Ruppanner) 박사가 지적했다.
멜번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건강 및 웰빙의 격차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루페너 박사는 2016년 센서스(Census) 자료를 분석, 금주 화요일(11일) ABC 방송에서 여성의 평균 가사노동이 주(week) 33시간에 달했던 2006년도에 비해 10년 사이 반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남녀간 가사노동 시간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자들은 가사노동과 정신노동이 여성들의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근무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여가시간을 모두 포함한 삶의 전반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고방식에 따라 총 노동량에서 가사 분량이 커질수록 다른 경제활동은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조사는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여성들도 바깥 유급노동보다 무급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은 미혼일 때와 풀타임으로 일할 때에도 같은 상황의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남녀가 동거를 하게 될 경우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늘어나는 반면 남성의 노동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레아 루페너(Leah Ruppanner)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여성다움’을 ‘가정’과 연결시키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고착화된 남녀의 성 역할 배분은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가사노동에 한정시키고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다움의 조건에 화장실 변기 청소를 집어넣지 말라고 수십 년을 주장해오기도 했다.
호주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여성이 가장 많은 국가다. 특히 출산과 함께 수많은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겪는다. 둘째 아이의 출산은 대다수 여성들로 하여금 아예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호주 여성 3명 중 한 명은 연금도 없이 퇴직하고 있다는 게 루페너 교수의 지적이다.
가사노동은 단순한 집안 청소에서 나아가, 보다 넓은 범위의 책임을 포함한다. 또한 육아와 집안일 모두 정신적인 에너지가 요구되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시간에 쫒기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는 호주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루페너 교수는 “남녀의 가사노동을 동등하게 배분하는 제도적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육아휴가를 늘려 출산 후 더욱 증가되는 가사노동의 압박을 줄여나가는 것이 결혼한 남녀의 성역할 평등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루페너 교수는 이어 스웨덴 격언 하나를 인용했다. ‘이용하지 않으면 잃는다’(use-it-or-lose-it)라는 것. 그에 따르면,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남성 유가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부모휴가 제도에서 남성이 의무적으로 휴직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웨덴 남성들은 여성과 동등한 가사노동을 분담하게 됐다.
현대 남성들은 과거보다 육아에 더 많은 관심과 책임을 가지고 있어 이 같은 제도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증가시키고 남녀평등과 국가 경제 활성화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윈-윈’(Win-Win)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