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증명 요구 강화-수준 높은 영어능력 요구 등 정부의 엄격한 비자 정책으로
호주 내 해외 유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연방정부가 이달 학기 시작을 위해 신청한 수천 명의 해외 학생비자 신청을 거부하면서 호주 순이민이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이다. 연방 내무부의 학생비자 발급 승인은 20%가량 줄었다. 이는 20년 만의 가장 큰 변화이다.
호주 이민 프로그램에서 교육 부문은 이번 회계연도(2023-24년) 호주 유입 총 이민자 수를 37만5,000명으로 낮추고 다음해에는 25만 명 선까지 줄이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일 부문 삭감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내놓은 이민 전략(한국신문 2023년 12월 15일 자 기사 참조)은 국제학생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영어능력을 요구하고, 호주 입국 전에 학생신분이었음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동시에 호주에서 부족한 기술을 공부하지 않은 경우 학업 후 호주체류를 어렵게(비자연장 제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다만 정부는 유학생 수 제한이나 비자신청 수수료 인상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국제학생 수 제한, 즉 학생비자 승인 거부는 모든 대학이 똑 같이 체감하는 것은 아니다. 호주 내 각 대학의 재정 부문에서 유학생 학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학은 ‘국제학생 비자 승인 등급’이 낮은 사립대학들이다.
지난 2월 9일(금)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최신 관련 조사결과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호주 내 유수 대학 대부분은 국제학생 수가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정부가 요구하는 학생비자 발급의 엄격한 기준에서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연방 내무부 클레어 오닐(Clare O’Neil) 장관은 지난해 ‘장관지시 107’(Ministerial Direction 107)로 알려진 공식 지침을 작성, 관련 부서에 보내 학업 실적이 좋은 대학들에게는 국제학생 비자 승인에 우선순위를 주고, 문제가 있는 학교는 가장 낮은 순위를 두라고 지시했었다.
이는 정부의 학생비자 승인에 있어 유학생 실적이 좋은 교육기관 입학 신청자를 우선으로 하겠다는 방침으로, 그 동안 비자발급 거부 비율이 높았거나 비자조건 위반 사례가 많았던 교육기관 입학 신청자는 비자심사에서 낮은 순위를 받게 된 것이다.
호주의 8개 유명 대학(Group of Eight universities)은 이 새로운 시스템의 상위인 ‘1급’(tier one) 카테고리에 속하며 가장 낮은 우선순위인 ‘3급’(tier three)에 있는 그룹은 주로 사립 직업교육 대학으로 구성된다.
현재 호주에는 65만 명 넘는 국제학생이 있으며,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체류 연장을 위해 두 번째 교육과정을 신청하고 있다. 이처럼 다시 대학에 등록해 학생비자를 받은 학생은 15만 명에 이른다.
정부 관련 부서 수치는 지난 2005년 교육기관의 학과별 비자승인 비율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80% 아래로 떨어짐으로써 국제학생 입국이 기록적인 수치로 거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 학생비자 발급 건수는 11월에 비해 낮았다. 이는 이번 학기 시작을 위해 호주로 입국하는 국제학생 수가 적다는 신호로, 이전연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0% 낮았다. 지난 회계연도, 국제학생 비자승인은 37만 건에서 올해에는 29만 건으로 줄었다.
이 같은 학생비자 승인 감소 수치는 지난해 노동당 정부가 이민자 유입을 낮추고 모호한 비자 신청을 단속하겠다고 한 정책 변화의 첫 결과이기도 하다. 앞서 야당인 자유-국민당 연립은 노동당 정부가 은밀하게 ‘빅 오스트레일리아’(Big Australia)를 계획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야당 내각 이민부를 담당하는 댄 테한(Dan Tehan) 의원은 오닐 장관이 지난해 최대 규모의 국제학생 유치 및 해외 이민자 유입을 주도했다고 지적하면서 “노동당은 Big Australia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알바니스 정부가 들어선 이후 2년 사이 90만 명이 유입되고, 이 같은 해외 이민자는 5년에 걸쳐 162만5,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닐 장관은 “팬데믹 사태 이후 이민자 유입이 지나치게 많아 노동당 정부에서 이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현재 수치는 이런 변화가 효과로 나타나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장관은 “안타깝게도 청렴성 문제가 있는 고등교육 부문에서의 대폭적인 감소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로의 이민자 유입을 줄이는 또 다른 핵심은 이전 정부(자유-국민 연립)에서 수수료나 기술 테스트 없이 도입한 소위 ‘팬데믹 이벤트 비자’(Pandemic Event Visa)라는 특별 이민 프로그램으로, 이를 통해 10만 명 이상이 입국했다.
노동당은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종료했으며, 이로써 해당 비자로 입국했던 근로자의 60%가 자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는 연간 7만 달러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직종에 해당되기에 다른 카테고리의 비자로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자 부족에 대한 호주 고용주들의 경고를 감안할 때 정부의 기술이민 프로그램에 의한 비자 승인은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나 일반 관광객 수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사태로 인한 모든 제한 조치가 해제된 이후 호주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국제학생들이 돌아오고, 호주 업체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는 해외 인력으로 인해 지난 회계연도(2022-23년) 순이민은 51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보다 엄격한 이민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아 왔다.
오닐 장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간 이민자 유입 수치를 정상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전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이민이 중단되기 수개월 전인 2019년 6월까지, 호주의 연간 이민자 수용은 23만9,600명 선이었다.
한편 국제학생 관련 단체인 ‘Inter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of Australia’의 필 허니우드(Phil Honeywood) 최고경영자는 정부의 엄격한 학생비자 조치로 인도, 네팔, 파키스탄 학생들에 대한 비자 신청에 이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비자 승인 수치는 확실히 감소했지만 이것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확인하기까지는 몇 개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