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여권 소지 57%… “두려움-재정 문제-흥미 부족 때문”
전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가장 많이 마주치는 이들 가운데 독일, 캐나다, 미국, 호주인이 꼽힌다. 그만큼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최소한 호주인 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호주인 중 40% 가량이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회계연도(2017-18년)를 기준으로 호주인 가운데 여권을 소지한 이는 57%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적으로 여행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호주인들의 해외여행이 그리 많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어떤 이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 이거나 문화화가 덜 된 사람”이라며 극단적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행에 대한 흥미가 없거나 두려움 또는 재정적인 이유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큰 탓이다.
금주 월요일(18일) A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ABC Life’는 호주인들이 해외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심리학자의 분석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
여행을 가는 게 무섭다
심리학자 메레디스 풀러(Meredith Fuller)씨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지 않은 이유는 일과 가정, 재정, 그리고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저 여행갈 돈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며 “사람들은 여행이 쉽다고 생각하지만 재정 상황에 따라서 큰 지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풀러씨에 따르면 잘 알지 못하는 상황과 장소에 대한 불안감도 여행을 못 떠나는 이들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NSW 주에 거주하는 49세 앨리슨 위태커(Alison Whittaker)씨는 이 NSW 주를 벗어나 본 것이 인생에서 딱 한번 뿐이다.
위태커씨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자녀를 다른 이에게 맡겨도 될 즈음, 그녀는 퀸즐랜드(Queensland) 주의 위트트선데이 섬(Whitsunday Islands)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해외여행은 차치하고 집을 떠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해보지 않았다. 위태커씨는 “두려움이 있었고, 여행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딸이 17세가 되던 해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보낸 적이 있는데,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 두려움은 나의 순진함 때문”이라는 위태커씨의 말에 풀러씨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납치당할 것에 대한 우려,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하는 것과 통제력이 상실되는 것에서 그 두려움이 오는 것”이라며 “통제력이 상실된 상황 속에서 평소아주 익숙해진 사람들과 일상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타스마니아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는 론세스톤(Launceston)이나 호바트(Hobart)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호주통계청(ABS)에 따르면 2016년 동안 호주 전체 주(state) 및 테리토리(territory)를 통틀어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은 인구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타스마니아였으며, 다음으로 남부 호주(South Australia)와 퀸즐랜드(Queensland) 주가 그 뒤를 이었다.
풀러씨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구 한 쪽 끝에서 다른 쪽으로 간다는 생각 자체가 그저 큰일”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항공기 사고, 제한된 공간에 있는 것에 대한 밀실 공포증, 고소공포증 등과 같은 두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풀러씨는 “만약 흥미가 그다지 크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단지 두려움 때문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을 경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실제로 해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여행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여행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풀러씨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문화나 장소에 대해 그리 궁금해 하지 않는다.
브리즈번(Brisbane, Queensland)에 사는 23세 조셉 저렉(Joseph Jurek)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친구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는 그는 정작 자신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모두 다 똑같이 들린다”며 여행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조셉씨는 어릴 적 다윈(Darwin)에 살다 브리즈번(Brisbane)으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이후 해안 지역을 여행해 본 적이 있고, 다른 주로 떠나보기도 했지만 앞으로 해외여행에는 계획이 없다.
그러나 조셉 씨는 “파트너가 생기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누군가와 있다면 함께 경험해보기 위해서 가겠지만 혼자는 안갈 것 같다”며 “동기부여가 없다”고 설명했다.
풀러씨는 “그저 여행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정당화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꼭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으면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존중해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족과 떨어지기 어렵고,
몸이 건강하지 않다
가족이 생기면 여행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서 자신만의 삶을 즐기게 되면 부모가 싫어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는 게 퓰러씨의 설명이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도 여행을 막는 하나의 요인이다. 장소가 바뀌면 화장실에서 일을 보지 못한다거나 장시간 비행기에서 앉아 있으면 허리에 통증이 오는 경우, 많이 걷지 못하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겨운 경우가 그런 사례들이다.
여행,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위태커씨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해외여행을 못해본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위태커씨가 조만간 3주 동안 친구와 함께 타스마니아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모터바이크도 타고 신나게 즐길 것”이라는 그녀는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너무 큰 일”이라고 말한다.
풀러씨는 “여행은 하고 싶지만 자신을 주저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이것을 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여행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며 “그 장소의 향기, 바람과 햇살, 고대 역사를 걷는 일 등 모든 육체적이고 감성적인 것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풀러씨는 이어 “지금은 아니고, 집값을 다 갚은 뒤, 아이들이 다 자라면 20년 뒤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러나 나중 일이라도 이 계획을 적어두고 다시 생각해보고, 너무 늦게까지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호주인들의 해외여행 현황
-2017-18 회계연도, 여권을 소지한 호주인은 20대가 가장 많았다.
-2016년 NSW 주 거주민들은 전체 호주인 중 여행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34.5%로 가장 높았다. 반면 노던테리토리(NT)와 타스마니아(Tasmania)는 각각 겨우 1%에 그쳤다.
-서부 호주(WA)는 전체 주(state) 및 테리토리(territory) 가운데 여행을 즐기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아 인구 1천 명 당 532명이었으며, 반면 타스마니아는 1천 명 당 189명으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호주인들이 가장 자주 방문하는 국가는 뉴질랜드(New Zealand), 인도네시아(Indonesia), 미국이었다.
■호주인들의 여행 추세 변화
호주인들의 여행은 수십 년간 변화를 겪어왔으며, 해외여행이 보다 보편화되었다.
UTS의 데이비드 베어맨(David Beirman) 관광학과 교수에 따르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많은 호주 가정들이 유명 해변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에 따르면 저렴한 항공사의 등장으로 호주인들의 해외여행이 증가했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